허만석이 쌓은 조천 제방, 지금은 벚꽃 천지됐다
허만석이 쌓은 조천 제방, 지금은 벚꽃 천지됐다
  • 윤철원
  • 승인 2019.04.11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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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조치원과 허만석, 그리고 벚꽃 이야기...치수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
세종대왕, 허만석의 애민정신 담겨있는 역사적 유적...그 위에 핀 벚꽃 "눈이 부셔요"
조치원읍 조천 변에 핀 벚꽃은 옛날 연기현감 허만석이 쌓은 제방이 오늘 날 후손들이 즐겨찾는 장소가 되는 긴 역사적 복선이 깔려 있다. 자료사진
조치원읍 조천 변에 핀 벚꽃은 옛날 연기현감 허만석이 쌓은 제방이 오늘 날 후손들이 즐겨찾는 장소가 되는 긴 역사적 복선이 깔려 있다. 자료사진

'복사꽃은 소프라노

벚꽃은 메조소프라노

두 나무가 나란히

노래를 부르다가

바람 불면 일제히 꽃잎을 날리며

춤을 춥니다.

나비와 새들이 가던 갈을 멈추고 구경꾼이 됩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손뼉 칩니다.'

마치 조치원의 봄 풍경을 노래한 듯한 '복사꽃과 벚꽃이'라는 이해인 님의 시다.

요즈음 조천제방에 벚꽃이 한창이다. 지난 주말부터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으니 이번 주에 절정을 이룰 것 같다. 올해로 서른세 살 된 벚나무들이라 그런지 꽃핀 모습이 더욱 흐드러져 보인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소개된 천택(川澤)편의 성공사례가 바로 벚꽃 터널을 이룬 조천제방이다.

동국여지승람(1486)과 목민심서(1818)에

『연기현감 허만석이 현 북쪽 15리 청주경계 하천에 큰 제방을 쌓았다. 공사를 하는 동안 청주사람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지만 이를 물리치고 제방을 완공하여 1,000여경의 논에 물을 댈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그 공적을 지금까지 칭송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보다 앞선 1427년(세종 9년)7월 21일자 세종실록에는 세종대왕께서 안변부사 김효성과 연기현감 허만석에게 “요즈음 가뭄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하니 기근을 구제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은 허만석이 세종시대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과 연기현감으로 부임하여 청주경계에 쌓은 제방이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성공한 치수사업의 모범사례였다는 것을 전해 주고 있다.

조천교에서 천안방향으로 약 500m지점까지 4차선 도로구간이 당시 허만석이 쌓은 제방이다. 그래서 도로명도 '허만석로'라고 붙였는데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 조치원 평리, 상리지역이다. 조선시대 청주목 관할이었던 이곳에 조치원장이 4,9일 열렸다는 기록이 동국문헌비고(1770년)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조치원 장은 적어도 250년 이상 된 전통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천 제방의 역사성이 '허만석 로'라는 거리명을 만들어 냈다.

지난 주말부터 조천제방에 1년에 한번 보는 장관이 연출되기 시작했는데 때 맞춰 열린 '조치원 봄꽃축제'가 대성황을 이루었다. 상춘객중에 시내버스로 20분 거리의 신도심 시민들이 많이 오신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과 함께 신구도심이 서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이런 행사가 좀 더 자주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치원의 봄에 벚꽃만 있겠는가.

벚꽃이 질 무렵이면 분홍복사꽃과 새하얀 배꽃이 만개하여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한다. 그때도 오셔서 조치원의 봄꽃을 감상하시길 바란다.

여하튼 허만석이 쌓은 조천제방의 벚꽃은 이번 주까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봄 내음이 그리운 분들이여!

벚꽃이 흐드러진 조천제방에서 상춘(賞春)의 낭만을 즐겨보시라!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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