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에서 보류됐던 ‘명예농업부시장 조례안’이 하루 만에 수정안 가결 후 29일 세종시의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을 두고 “의회가 집행부 거수기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상적으로 보류되거나 부결된 안건은 차기 회기에 통과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의회의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 상실 등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의회가 집행부의 허수아비가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위원장 고준일 의원)는 지난 27일 상임위 회의에서 농업부시장 관련 조례를 검토하고 ‘보류’ 결정을 내렸다.

“명예농업부시장의 설치 목적이 모호하고 자격과 역할·기능 등을 조례상에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세종시 농업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와 제도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때만 해도 의회가 집행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 일로 평가됐다. 의회와 집행부의 권력이 같은 ‘새정치연합’이어서 견제기능 상실우려가 컸지만 “할 말을 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보류 결정이 난 해당 안건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28일 긴급 통과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소집한 산업건설위원회는 관련 조례 수정안을 발의 후 급하게 통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본회의에서 속전속결로 통과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새정치연합 소속의 집행부가 배경으로 지목됐다. 이춘희 시장의 공약인 농업부시장 제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해당 조례 통과를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부 측은 당초 계획대로 9월 중 농업부시장 임명을 원했다. 농업부시장 제도 추진을 통해 농업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조례안 통과가 시급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농업부시장 ‘역할론’을 강조한 것이다.

집행부는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의원 개개인을 만나 이에 대한 당위성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류된 안건이 하루 만에 통과된 것을 두고 정치권 안팎의 비판 목소리가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회의까지 소집해 통과시킨 것은 집행부의 눈치를 너무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집행부가 원하는 대로 전부 해주는 곳이 의회냐”고 비난하면서 “관례까지 무시하면서 처리한 것은 의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처사이며, 또한 (의회의 집행부에 대한) 감시기능의 상실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집행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표시였을까. 29일 본회의장에는 해당 상임위원장인 고준일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행부의 요청대로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몇몇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 의원이 이번 일로 고심을 많이 하고 괴로워했다는 후문이다. 조례안이 통과된 29일, 고준일 의원과는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