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향 모습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옛 고향 모습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4.02.13 09:3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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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금남 출신 작가 강혁...'더미'로 표현하는 작품세계

   금남면 용포리 출신 작가 강혁은 목각인형, 즉 더미를 소재로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독특한 표현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목각인형은 표정이 전혀 없는 구체관절(九體關節)로 이뤄져 있지만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더미(Dummy), 즉 ‘목각인형’을 소재로 독특한 작품 활동을 해 온 강혁씨(36)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에 이르는 통로로 선택한 더미의 매력을 설명하면서 “여태껏 공부해온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시점에 만난 더미(Dummy)는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도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그가 ‘세종의 소리’를 찾아온 것은 12일 오후 4시쯤이었다. 어머니 홍성희 여사와 함께 방문하면서 엽서 두장 크기의 팜플릿을 가지고 왔다.

서울 성북동 갤러리 ‘버튼’(Button)에서 지난 7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생애 첫 개인전 ‘그들만의 세상’을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엣칭 기법으로 만든 올빼미 같은 형상 속에 어김없이 그가 즐겨 그리는 ‘더미’가 눈 알 속에 박혀있었다.

작가 강혁이 운명처럼 만난 ‘더미’는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2009년, 일곱 살이 되지 않는 아이들 속에서 발견한 순수성 때문에 첫 인연이 되었다.

“5세부터 7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쟤네들처럼 순수하게 좋은 그림을 배울 수가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 동심 세계로 돌아가서 편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보자고 한 게 바로 ‘더미’를 찾게 된 것입니다.”

‘더미’는 표정은 없지만 몸으로 말하는 이른바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가능한 목각인형과 작은 것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큰 덩어리를 뜻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두 가지 모두 들어가 있다. 작은 목각 인형들이 더미를 이루면서 큰 형상을 만들어 낸다.

“...작가가 그리는 더미 랜드의 구성원인 개성 없는, 획일적인 모습으로 대량생산된 목각 인형은 인간조차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조차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오늘 날을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를 은유한다...”

미술평론가이자 평생 반려자인 오경미씨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해설했다. 특히 오씨는 ‘서로 다른 규모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더미의 모습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원의 불균등, 동등하지 않는 출발선 등으로 인해 삶의 질을 동일하게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작품 속에 ‘더미’를 잘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강혁 작가가 만년필을 이용해서 그린 '더미' 작품들. 구성 요소가 작은 '더미'들로 이뤄져 있다.
작가 강혁의 작품세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대인의 세상이야기를 다룬 ‘더미 랜드’와 ‘더미 산수화’ 그리고 ‘더미 에칭’이다. 산수화는 미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초가을 낙엽이 지는 것에 영감을 얻었고 에칭은 만년필로 그리는 기법에서 오는 한계, 즉 농담(濃淡)표현을 극복하기 위해 섬세한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칭 수법을 도입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되었다.

강혁은 금남면 용포리 유일한 주유소 ‘대평 주유소’의 큰 아들이다. 대전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잠시 동안 목원대를 다녔다. 거기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인연을 만났다. 그림에 대한 남다른 소질은 어릴 적부터 드러났다.

어머니 홍성희 여사(60)의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백지에 집에 오시는 손님을 그렸는데 너무 흡사했어요. ‘아, 그림에 소질이 있구나’하고 그 때부터 알았어요.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책을 만드는 데 삽화를 그리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혁이는 엉뚱한 끼가 있다’고 말씀할 정도였어요.”

그게 인생 방향 설정의 계기가 되었다. ‘잘하는 걸 하게하자’는 것이 곧 창의교육이 아닌가.

군 입대, 대학 입학, 그리고 재수 등을 통해 목원대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만난 한 지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6개월 준비하고 바로 합격했다. 단숨에 합격은 선천적 재능이 그만큼 돋보였다는 뜻이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노교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인 전수천 교수는 당시 60세였다.

“매우 유명한 분이었어요. 학생들이 교수님을 선택하기로 되어 있는 한예종에서 그 분을 모신 것은 젊은 교수님들에게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노교수님은 은퇴하면 그렇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교수님께서 설치미술에 독보적인 존재이셨고 저, 또한 그걸 하고 싶었습니다.”

2005년도 미국 동부에서 서부지역으로 흰 천을 두른 열차 14동이 횡단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 때 기획을 한 분이 전수천 교수였고 강혁씨는 보조자로서 참여했다. ‘미국 땅을 캠퍼스로 보고 움직이는 드로잉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한예종 동문인 평론가 오경미씨(36)와 결혼을 한 이후 그는 ‘더미’를 만났고 그게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또, 2011년에는 ‘더미’ 산수화를 우연히 미국에서 착안하게 되었고 ‘더미 에칭’, 역시 농담(濃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으로 도입했다.

“만년필로 종이에다 그리다보니 일러스트같고 회화적인 맛이 적었어요. 그래서 에칭을 통한 판화 작업을 하면 원하는 느낌의 작품이 가능할 것 같아 이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지난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성북동 갤러리 '버튼'에서 '그들만의 세상' 작품 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 만년필이라는 서양의 도구로 동양적인 표현을 한 작품을 엄선해서 선보이고 있다. 캐릭터 ‘더미’를 가지고 인생, 사회, 환경, 정치적인 비판까지 작품 속에 담았다.

“한적한 시골이었던 고향에 행복도시가 건설되면서 어릴 적 보아왔던 풍경들이 없어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을 ‘더미’로 표현을 하고 역사적인 세종시 건설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고향과의 연관을 이렇게 설정하는 그에게 대중 서적으로 단행본 출간을 출판사로부터 제의받았다. 게다가 디자인 성이 강한 그림으로 인해 가구, 와인제품 등에서 상표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얘기도 들었다. ‘더미’의 독특함과 동·서양의 융합한 작품이 두드러진 탓이다.

대전시 유성구 반석동에 최근 작업실을 낸 작가 강혁에게 세종시만큼 큰 변화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연락처) 010-9938-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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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2014-02-18 18:00:01
강혁작가님 넘 대단해요..이모한테 얘기는 많이 들어서 괜스리 친근하게 느껴지네요..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이 되세요..화이팅!!!!

홍성일 2014-02-18 17:29:44
혁아~~
전시회 넘 좋았어. 그림에 문외한이어도 너의 설명과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띵~~ 했단다.
어릴적 너의 행동들이 지금의 발자취였음을 새삼 느끼며....작품을 통해서 대화할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 고마웠고, 세상에 버려진 모든 것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단다. 힘든 길이지만 묵묵히 너의 길을 응원하마.화이팅!!!

박장연 2014-02-14 18:49:35
강혁작가님! 자랑스럽습니다.
순수하고 독창적인 작품활동 부탁드립니다.^^

박재광 2014-02-14 14:04:54
강혁작가.... 음.... 기분조으다.... 울 동창이 뉴스를 장식하고...
더욱 번창하고 정진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이 되길 기원 합니다.

정필수 2014-02-14 13:36:48
금남에 자랑이다...세종을 빛내는 사람이 꼭 되어주세요 작가님^^
오경미 평론가님 평론또한 예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