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맘 때면 걱정거리가 생긴다. 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맘은 굴뚝같은데 그저 빈손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나 하는 심정이 솔직히 가볍지 만은 않다. 요즘 뭐를 주고받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아예 꿈도 꾸지 않지만 말이다.
미국에도 스승의 날이 있다.
그 날 제일 중요한 게 마음이 담긴 편지다. 거기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글이 담기는데 워드작업으로 한 메마른 글씨가 아닌 자신이 직접 써서 준다.
그리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편지에 20달러 안쪽의 상품권을 넣는 경우도 흔하다. 카페 이용권, 도서구입권 등등 내용도 다양하다.
그렇게 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받아 주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선생님은 자기에게 선물을 준 아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쓴다. 내용은 대부분 그 선물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선물에 대한 감사와 학생에 대한 칭찬과 격려 등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우리나라는 스승을 부모 보다 더 존경해야 하는 대상으로 섬기곤 했다. 군사부 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위아래가 분명치 않고 그렇게 처신하지 않으면 상것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했다.
참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영어는 존칭어가 없고 미국은 윗사람에 대한 예절이 없다고 해서 미국을 상것이라고 비난하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상것 취급을 했던 나라에선 스승에게 감사의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이 부담 없이 오고가고 있고, 군자 국가라고 자부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될 뿐만 아니라 혹여 했다간 되레 죄인 취급을 받으니 참 아이러니다.
한참 전에 소위 촌지라는 것이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 치맛바람과도 무관치 않았는데 선생님의 마음먹기(?)에 따라 자녀의 학업성적이 결정되던 시절에 나왔던 얘기인 것 같다. 그래서 촌지다 치맛바람이다 하는 것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게 난리를 피우고서야 이제 좀 잠잠해졌다.
지금은 초등학교 성적이 순위를 매기는 것도 아니고, 또 선생님 마음먹기에 따라서 학생의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다. 선생님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제도가 필요하단 얘기도 나오고 학교폭력의 원인을 추락한 교권에서 찾기도 한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미풍양속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것은 선생님의 위치와 역할을 잘못이해한데서 비롯되었단 생각이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체로서 존경받고 그 직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선생님을 자기 자녀와의 관계에서 이해하려 했고 미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의 날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은 마음의 편지와 선물(gift card)은 정말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아이들로 인해 사명의식이 더 새로워 질 것이고, 아이들은 감사할 줄 아는 표현 방법을 배우며 선생님의 편지로 인해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이 생기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결국 작지만 이런 작은 표현이 교육을 더욱 산교육으로 만들며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모든 것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에서 끝난다.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당신이 있어 즐겁습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합니다’와 같은 말을 습관적이라도 자주 하게 된다면 우리의 주변은 참으로 많이 변하게 될 것 같다.
이런 인간관계는 학교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학교현장에서는 이런 기대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매년 오는 날이지만,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올해는 학교 폭력으로 얼룩진 교육현장이 감사와 격려의 장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