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문학관이 꼭 들어서야 합니다"
"세종시에 문학관이 꼭 들어서야 합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2.08.14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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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시인 이은봉, 고향에 돌아와 동인지 창간으로 이바지
시인 대접하는 일에 최선 다하겠다... 문화활동 공간 많이 필요
이은봉 시인은 세종시에 문학관이 들어서 문화예술인들이 창작활동과 교류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문학관이 들어서고 문화상이 만들어져 문화예술이 풍성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종 토박이로 동인지 ‘세종시마루’를 펴내고 있는 이은봉 시인(69)을 11일 오후 4시 에비뉴힐 6층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공주에서 편입된 장기면 당암리 ‘막은 골’(杜谷) 출신인 그는 고향을 세종에 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명이었다.

대뜸 그는 “인근 대전에는 제2문학관 건립 계획이 있는데 세종시는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로 척박한 환경을 지적하면서 “전임시장 임기 말에 문학관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아직 별다른 얘기가 없다”며 문학관 설립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 상의를 해오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라며 “세종시가 만들어가는 도시인 것처럼 문학도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문학관과 함께 세종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비(詩碑) 건립도 필요하고 시낭송회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시낭송회가 이뤄지고 문학강의 등 시민 정서를 풍성하게 만드는 다양한 활동의 중심에 문학관이 위치해야 한다는 말로 문화도시 세종에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재차 각인시켜주었다.

그는 최민호 세종시장이 동화 저술, 색소폰 연주 등을 거론하면서 “최 시장께서 작가로 살고 싶고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시장이 용기를 가지고 문화예술인을 위한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세종문화재단 구성원에 지역 예술인들이 너무 없어 소통이 안 되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그간의 정책 설명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강연을 통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한다. 

이은봉 시인을 만난 11일은 ‘세종시마루’ 아홉 번째 출판을 위한 편집회의가 있었다. 오전에 회의를 마쳤으니 올 하반기 중에 새로운 작품들이 세상에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회원 45명이 연 회비 20만원씩 내서 운영되는 이 잡지는 이 시인의 말을 빌리면 ‘한강 이남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작품을 발표하고 시집을 발간해주고 서평에다 조촐한 출판기념회까지 해주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잡지이다.

그는 이를 ‘시인 대접을 해준다’고 표현했다. 통권 8호까지 냈지만 3호 때부터 신인상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한남대 수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한 이길섭 시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당암초등학교 4학년 때 시가 뭔지도 모르는 가운데 ‘돗자리’라는 시를 썼던 기억이 먼 훗날 시인으로 성장하게 된 복선(伏線)이 됐다.

젊은 시절 유명한 ‘삶의문학’ 사건이 민중교육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됐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행적은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 때는 신문팔이로 지원에 나섰고 숭전대학(현 한남대학교) 재학 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교수들로부터 민주와 정의의 개념을 올바르게 정립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유복하게 컸지만 정의감을 많았다”는 이 시인은 “젊은 시절은 광주항쟁을 시민 전쟁으로 평가할 만큼 독재에 저항하는 생활을 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은봉 시인이 주관하는 동인지 '세종시마루'는 격조 높은 잡지로 세종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 

사회적 이상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일 때 가능한 일이라며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로 사회적 이상주의를 부정하기도 했다.

광주대학교에서 교편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줄 곧 지역문화 발전에 힘을 쏟았다. 대전문화재단 산하 대전문학관장을 맡은 것도 이 같은 사명감 때문이었다.

이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며 “세상이 일을 시키면 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겼다. 시인이나 작가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는 게 보람도 있고 공부도 된다는 말도 곁들었다.

이은봉 시인과의 대화는 저녁자리까지 이어졌다. 거기에서는 진보세력에 발을 들어놓은 과정과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주변의 도움,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 등등 잡다한 얘기를 나눴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시인을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일”이었다. 세종시마루를 통해 시인들에게 놀이 공간을 제공하고 여기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시집을 발간하는 등등의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1983년 '삶의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등 6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가톨릭 문학상, 시와시학상, 질마재 문학상, 송수권 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 전문 잡지 '세종시마루'와 시집들
시 전문 잡지 '세종시마루'와 시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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