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사회 위해 헌신한 한 평생, 지금도 진행형"
김준식, “사회 위해 헌신한 한 평생, 지금도 진행형"
  • 황우진 기자
  • 승인 2020.06.03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인] 한국 다문화사업운동 창시자 환경운동가 김준식 대표
세종에 살며 국가발전의 원동력되는 행정수도 완성 운동 전개
김준식 세종시민감동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무위자연' 사상을 강조하면서 공익을 위해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성경은 노자의 도덕경과 같다는 생각에 이 책 두권을 항상 책상에 같이 놓고 봅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자연과 함께 어울려라'. 이것이 제 인생 철학입니다.”

이번 ‘세종인’에는 '가이아' 김준식(70) 세종시민감동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취재했다. 그는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이미 적잖게 알려졌지만 '세종인' 을 통해 진짜 속내와 인생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호(號)로 사용하는 '가이아'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으로 범상치가 않았다. 이미 언론에서 글을 많이 보았고 개인적으로 가까운 터라 지난 달 28일 점심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인생이야기를 들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영월입니다. 6.25가 발발한 해에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며칠되지 않아 산모인 어머니와 저만 남고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갔답니다. 차마 발길을 뗄 수 없던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구사일생으로 저와 어머니를 구했는데, 아버지가 저를 피신시키고 미처 5분도 되지 않아 우리집이 폭격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말씀을 아버지로부터  수백 번도 더 들으면서 자랐어요.“

도입부부터 이야기는 특별함 이상이었다.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인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인생 70 고희(古稀)에 밝히는 생의 첫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 비극의 역사 6.25동란 70주년. 그가 세종인 대상으로 선정된 것도 우연치 않은 일로 느껴졌다.

그는 평생 우리나라와 아시아인을 위해 YMCA(기독교 청년회) 활동을 했고, 이제는 세종시민으로 살며 세종시를 위해 일하고 있다.

인도 중부 오르챠지역 '불가촉천민마을'을 방문해 마을주민들과 마을발전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

식사 후 자리를 그가 일하는 민주화 계승사업회 사무실로 옮겼다.

껌팔이. 구두닦기 소년들을 위해 교육 생활복지 헌신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해 졸업 후 첫 직장을 서울역 근처 성남교회 사회복지관 총무로 일 했어요. 당시 서울역 주변은 껌팔이, 구두닦기 아이들이 많았는데, 주민등록도 없고 셋방에서 사는 아이들을 모아 기초학습 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야학, 무료진료사업, 노동운동 지원 등이 첫 직장에서 한 일입니다.”

‘첫 직장’의 일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처럼 영원한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다. 일흔의 나이였지만 40여 년 전 일을 생생이도 기억해냈다.

그 후 대전YMCA로 자리를 옮겨 ‘미8군 대전이전반대운동 집행위원장’을 맡아 대전이전을 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6.10항쟁기념일을 앞두고 현재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하는 그를 특별히 취재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아주 적절헸다는 생각이 취재 도중 들었다. 

“미8군 대전이전 반대운동의 성공비결은 대전 시민 90%이상이 강력히 반대운동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민주화교수협의회에서도 대전전체가 미군기지촌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고 전 세계에 홍보해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1996년까지 대전YMCA 사무국장으로 MBC와 ‘금강살리기운동’을 하여 금강휴게소를 저지시키는 등 대전환경운동의 중심 축을 담당했다.  또한 1990년 지방의회 구성 이후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신문 방송토론의 진행자로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6년에는 경기도 광명 안양YMCA 사무총장으로 발령을 받아 경기도시민연대 대표, 지속발전가능위원회위원장 등을 맡아 일했다.

2004년 ‘세계YMCA동맹 다문화사업’으로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세계YMCA동맹사무총장인 이수민 목사의 제안으로 사업국장을 맡아 한국인 최초로 외국인들을 위해 다문화 일을 시작했어요. 후에는 ‘사단법인 세계선린회’를 따로 발족해, 중국 연변,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국제개발원조사업을 하고 국내에서는 외국인노동자,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 문화, 컴퓨터 교육을 하며 지구촌학교를 운영했어요.”

그가 시작한 다문화사업은 당시 유일한 외국인들을 위한 사업이었고 ‘성동외국인 문화센터축제’는 국내 모든 방송이 취재하는 열풍을 일으켰다.

아시아 각국에서 이주한 주부들과 다문화자조모임을 결성하여 다문화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수료식 했다

“그때부터 노무현 정부는 청와대에 외국인정책위원회를 만들고 재한외국인지원사업을 시작했어요.”

그의 다문화에 대한 노력으로 총리실 산하에 15개 부처장관이 참석하는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한국다문화인식개선종합대책’이라는 국가정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제 다문화는 온 국민의 화두가 됐지요. 다문화 종합대책의 수립으로 전국민이 다문화 수용성교육과 인권교육을 받고...”

그는 다문화정책의 전문가로 활동하며 (사)아시안프랜즈 법인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 국제개발NGO사업을 하다가 65세 나이로 퇴임했다.

퇴직 후 세종에서 ‘제2의 인생무대’를 펼치다

“세종에 처음 와서 새샘마을 5단지 노인정을 만들고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어요. 또 보람동 주민자치위원장도 했네요. 지금은 세종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를 설립해 민주시민교육사업과 웰다잉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과 ‘웰다잉’에 대한 구체적 활동에 대해 물었다.

“민주시민교육은 인문학강좌와 청소년교육활동으로 시민 행복을 ‘업’ 시킬 수 있는 교육이고, 웰다잉은 잘살다 잘 죽는 방법에 대한 교육활동입니다.”

'잘살다 잘 죽는 방법'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세종민주화계승사업회에는 ‘대한웰다잉세종지부’가 있고 세종시 노인대상 웰다잉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50시간 교육으로 보건복지부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입니다. 이미 20명의 강사가 배출됐는데 건강하고 품위 있고 행복한 노인이 되기 위한 각종교육과 상담을 하는 노인인권운동입니다.”

‘잘 살고 잘 죽는다.’ 아하 ! 이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사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도덕경 도법자연(道法自然) 도(道)도 자연을 따른다’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코로나19로 인류의 욕심이 온통 사회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요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고언은 전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로 생각되었다.

지방분권세종회의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해 행정수도완성특별위원회 위원들과 총선공약반영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인생이야기 속에는 줄곧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 환경보호운동, 민주화운동, 웰다잉운동 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됐다.

마지막으로 '시민감동특별위원회'의 활동과  ‘6.10항쟁 세종시민주화운동기념사업’에 대해 물었다.

“이번 기념식은 딱딱한 형식을 벋어나 시민이 행복한 문화행사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6.10일 오후 7시 호수공원 무대섬에서 행사를 하는데 노래. 춤. 합창. 연주 등 문화공연으로 시민 모두가  참석해 행복한 시민의 자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세종시민감동특별위원회의 활동은  이야기를 쓰기에 너무나 많은 내용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어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행정수도 완성은 세종시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전체의 염원이 되어야한다”고 역설하는 선생의 열정이 모든 국민의 가슴 속에 파도를 일으키고 세종시민 모두의 특별한 감동으로 이어지기를 고대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