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정통이냐 퓨전이냐
사극, 정통이냐 퓨전이냐
  • 박예성
  • 승인 2020.02.22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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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칼럼]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2학년 박예성
배재대 박예성 군

사극은 과거의 다양한 시대상을 다루며 완전히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그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나라 사극은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등 고대 및 전근대 시기의 먼 과거를 다루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제1 ~ 제5 공화국 시대 등 가까운 과거를 다루기도 한다. 전자의 대표 사례는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이 있고, 후자의 사례는 <공화국 시리즈>와 <야인시대>가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당시 상황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정통 사극’이라고 부른다. 정통 사극은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적절히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극은 엄연히 ‘극’이므로 딱딱한 정사만으로는 극을 매끄럽게 진행하기에 부족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야사를 엮어 극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했는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KBS에서 방영된 <용의 눈물>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사례로 남아있다.

이러한 정통 사극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역사 왜곡과 고증 오류들을 거듭하기 시작했고, 이런 이유로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증은 좋아도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있지도 않은 역사를 새로 만든다던가, 정통을 표방한다면서 고증도 하나도 맞지 않고 가상의 인물도 마구 등장시켜 역사 왜곡의 정점을 찍은 사례도 있다. 결국, 정통 사극은 2016년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을 끝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정통 사극의 빈자리는 ‘퓨전 사극’이 채우고 있다. 퓨전 사극은 정통 사극과 달리 정사를 자세히 따르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더 많이 따르며, 대부분 실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 여기서 정사의 내용과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극의 뼈대가 아닌 극에 사실적인 느낌을 부여하는 조미료에 불과하다.

하지만 <용비어천가 시리즈>와 같은 예외도 있다. <용비어천가 시리즈>는 SBS에서 방영한 대하 퓨전 사극 시리즈로 작품은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이 있다. 이들은 실제 역사 인물들을 주연으로 세우고 그들의 일대기를 따르되 가상의 인물들도 등장시키고 작가의 주관적인 이야기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용비어천가 시리즈>는 역사를 왜곡했다면서 비판받는 정통 사극들과 비슷한 것이 많지만, 처음부터 ‘대하 퓨전 사극’을 표방했기 때문에 이런 특징에서 나오는 비판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퓨전 사극은 과거 배경에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역사적인 사실은 아예 따지지 않고, 배경만 과거 조선 시대고 아예 새로운 인물에 새로운 이야기를 다룬 ‘신(新) 퓨전 사극’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트렌디 사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사극 같은 경우 비현실적인 요소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시간 여행이 있으며 <옥탑방 왕세자>, <퐁당퐁당 LOVE>가 있다.

정통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퓨전 사극에 대한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사극은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 당시의 무거운 분위기, 위엄있는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퓨전 사극은 무거운 분위기나 엄숙한 분위기는 거의 보이지 않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더 많이 보이며 대부분의 이야기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정통 사극 마니아 중 일부는 퓨전 사극을 보면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히 따르지는 못할망정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연애나 하고, 주인공을 미화하고 권선징악만 추구하는 것은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에 불과하다’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퓨전 사극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지만, 퓨전 사극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도를 넘은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통 사극이 좋다고 하더라도 퓨전 사극의 가치를 무시하고 앞서 언급한 예시처럼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정통 사극을 욕보이게 하는 것이다. 퓨전 사극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고, 각각의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요즘 사극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퓨전 사극이 대세다. 하지만 사극이라는 장르의 기초적인 의도는 단순히 과거에 살았던 어느 특정 인물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퓨전 사극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역사를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정통 사극이 다시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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