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부부싸움
  • 강신갑
  • 승인 2013.02.22 0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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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시인 강신갑의 시로 읽는 '세종']세상에서 부부싸움 안 하고 살아가는 ...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야 하는 제한 구역


부부싸움

  
세상에서 부부싸움 안 하고 살아가는 부부가 있을까요? 어떤 이는 말했지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며 비 온 뒤에는 땅이 더 굳어지는 법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맞는지 그른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 집은 요즘 부부싸움 중인가 봅니다. 왜
"중인가”
라고 하느냐면 나는 그렇지 않은데 아내는 그런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아내는 출근하는 날이었지만 나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샤워를 하였더니 갈증이 났습니다.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곰팡이가 핀 듯한 빵이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난 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물 중 좀 오래되었다 싶은 것들을 골라 큰 그릇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화단 한 자리를 파고 묻어버렸습니다.
 
저녁이 되어 아내가 직장에서 퇴근하여 돌아왔습니다. 간소복으로 갈아입은 아내는 세면장에서 대충 몸을 씻고 나더니 식사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애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방으로 뛰어온 아들이
"아빠! 아빠가 냉장고 안에 있던 반찬 같은 것을 치우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응, 내가 치웠는데 왜 그러니?"
더이상 대꾸도 없이 부엌으로 사라지는 아들 녀석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저녁상이 차려지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내 떠들썩할 텐데 조용했습니다. 아내에게서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습니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까 혜원이가 나보고 냉장고 어쩌고 하던데 왜 그랬어? 그리고 자기의 근엄한 표정이 아주 색다른 풍경이네."
그러자 아내의 말문이 터지면서 직격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냉장고뿐만이 아니라 집 안 청소도 당신이 알아서 하셨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빨래도 좀 하시고요."
사실 나는 냉장고를 청소한 대가로 아내한테 칭찬은 못 받아도 최소한 수고했다는 말은 들을 줄 알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니, 내가 가끔씩 빨랫거리를 모아서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도 하고 있는데?"
라고 하자 아내가 받아쳤습니다.
"세상에 어느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고 찌개 거리 쉰 김치며 어제 사다 넣어놓은 검은 반점의 빵이랑 얼려놓은 곶감까지 내다 버린대요?" 
나는 하느라고 한 일이 이렇게 되자 계면쩍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마음도 달래고 이 정도쯤에서 수습해야 되겠다 싶어
"내가 잘 몰라서 그랬으니 인제 그만 노여움을 풀어, 응? 이거 미안하게 됐구먼.”
하고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토라진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주방에 관한 일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믿고 있는가 봅니다.
 
언젠가 내가 찬장에 별로 쓰지 않는 그릇이 많이 있기에 
"뭐하러 저렇게 공간만 차지하게 진열해놓느냐?"
고 중얼댔더니 아내는 그 그릇을 소중한 보물 보듯이 쳐다보면서
"너무 신경 쓰시지 말라"
는 태도를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도 그런 일에 내가 참견할라치면 몹시 못마땅해합니다. 아이들한테도 그러는 편입니다. 아내는 바쁠 때면 마당을 쓸게 하거나 집 앞을 치우는 일은 주로 아들에게 시킵니다. 그리고 설거지나 빨래를 걷어다 개는 일은 거의 딸에게 시키곤 합니다.
 
텔레비전 심야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입니다. 잠자리에 함께 들었지만 오랜만의 나의 팔베개 제공도 뿌리쳤습니다. 불편한 잠자리를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도 아내는 벙어리 행세를 했습니다.
“다녀올게.”
하고 출근인사를 건넸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습니다.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부부싸움은 시간이 약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 부부의 이러한 냉각기는 언제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냉장고 청소사건이 그동안 소홀히 대했던 아내에 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렇게 냉랭한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부부 상호 간의 올곧은 뜻이 존중되는 가정을 위해서는 격의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냉장고를 청소하기 전에 전화라도 해서 아내의 의견을 들어볼걸”
하고 후회도 해보았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아내 본연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부부간에도 알 수 없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더불어 살아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만날 순간이 기다려집니다. 나의 진실한 마음을 얼른 전하고 싶습니다. 당장 전화로도 내 뜻을 표현할 수 있지만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는 아내가 어떠한 상태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서 아내의 눈을 마주 보면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비 온 뒤에는 땅이 더욱 굳어지는 법이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다."
라고 말했듯이 나의 가슴은 지금 아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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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아요 2013-03-02 22:02:23
이렇게도 새심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사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완연한 봄 기운보다 더 포근한듯합니다. 이런 온기가 사모님의 반짝 꽃샘 추위를 사르르 녹여드렸으면 좋겠네요. 좋은 소식 기대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