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가 전해준 감동의 편지
사랑이가 전해준 감동의 편지
  • 남호순
  • 승인 2018.01.2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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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보람초 남호순 교사 "교사는 아이들의 꽃 피우는 밑거름"
   보람초 남호순 교사

학교를 처음 옮기고 나서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 작은 학교에서 여러 해를 같이 보낸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선생님이 적응을 해야 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이 되곤 한다. 기피학년이라는 6학년을 지원했는데, 5학년이 되었다니.

5학년에는 올망졸망 8명의 아이들 중에 ‘사랑이’가 있었다. 새 학교로 발령 받고 사랑이에 대해 유독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ADHD이면서 사회성과 도덕성이 유독 부족하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행사에서도 돌발 상황이 많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은 사랑이. 잘하고자 하는 욕심은 많지만, 욕심에 맞게 수행하지 못할 때 불안과 좌절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랑이...

1년 동안 ‘잘 해보자’ 다짐하며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쉽게 사랑이를 찾지 못했다. 내가 너무 많은 선입견을 가졌던 건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다리를 심하게 떨고, 시도 때도 없이 트름을 해대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랑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구에게 사정없이 장난을 걸면서도 친구들의 표정은 읽지 못하고 혼자서 낄낄 좋아하는 사랑이를 발견하고는 한숨이 지어졌다.

‘일 년 동안 너와 참 힘든 시간이 많겠구나!’

첫 진단 평가가 있던 날. 첫 시험 시간부터 불안하지 계속 손을 물어뜯고 다리를 떠는 사랑이가 보였다. 1교시 국어, 2교시 사회는 그럭저럭 잘 지나갔다. 3교시 수학시간,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는 사랑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존 3학년과 4학년을 같이 보낸 친구들은 자주 보던 일이라는 듯 한 번 고개를 돌리더니 아무 일도 없는 듯 시험을 봤지만, 올해 전학을 와서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아이들 3명과 나는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가 많이 불안해 보였다.

“시험을 누가 만든거야? 어떤 00가 만든거냐고? 이런 걸 도대체 왜 푸는 거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는 종이를 찢기도 하고, 의자를 들었다 놓았다 행동도 하고, 눈물을 보이며 손톱을 물어뜯는 사랑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손을 잡아주며 “괜찮아. 네가 많이 힘들구나. 다른 친구들도 다 어려워 해. 힘들면 꼭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진정하는 듯 보이다가도 내가 뒤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행동들이 반복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험을 힘겹게 마칠 수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부터 나의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여러 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랑이와 그 옆에서 계속해서 부딪치고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던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보듬어서 이끌어가야 할까...

그렇게 1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사랑이의 문제행동, 정서불안, 낮은 도덕성과 타인 공감. 끊임없는 학생들과의 마찰, 학부모의 민원, 그리고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랑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학생의 담임교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해가 더 흐르고 사랑이가 졸업하는 날.

“사랑이가 꼭 전해드려야 한다고 하네요. 편지도 썼어요.”

사랑이 부모님이 나에게 편지와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그새 사춘기가 되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몸도 마음도 참 많이 자랐구나...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한다. 교사인 나는 그 아이들이 자신만의 향기와 색을 가진 꽃을 피우기 위해 밑거름이 되어주고, 햇빛이 되어주기도 하고,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비가 되어주기도 한다. 또 그 아이들이 자기만의 꽃을 피워낼 것이라고 굳게 믿어 주는 것도 나의 몫이라 생각한다.

힘들었던 그 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이에게 왜 예쁜 꽃을 피우지 못하냐며 더 기다려주지 못하고, 사랑이만의 꽃을 피워낼 것이라고 믿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또 키가 크고 색이 알록달록한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던 그런 꽃은 외면하지 않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사랑이 때문에 많이 힘든 한해였지만, 덕분에 시작한 상담교육대학원 공부도 잘 마쳤고, 교사로서 성장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루를 일 년처럼 살게 했던 녀석이지만 요즘에도 문득문득 요 녀석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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