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김덕수 공연을 봐야 할까
우리는 왜 김덕수 공연을 봐야 할까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7.09.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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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세종시에서 4회 공연 예정, 사물놀이를 봐야하는 세가지 이유
   김덕수와 함께 하는 여민락 콘서트는 올 가을에 세종시에서 네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사진은 첫번째 '난장을 트다'에서 60년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동을 소개하는 모습>

올 하반기 세종시 문화행사 중 눈여겨 봐야할 공연은 무엇일까.

세종축제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고 각종 문화단체에서 기획한 행사가 선보이는 등 가을 세종은 공연과 행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가운데 ‘김덕수와 함께 하는 여민락 콘서트’가 단연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공연을 마쳤지만 빼곡하게 들어섰던 시민들이 60년 광대 인생 김덕수에 대한 관심을 입증했다.

세종시 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김덕수와 함께...’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지난 14일 세종시청 여민실에서 펼쳐진 첫 번째 이야기 ‘남사당, 난장을 트다’에 이어 오는 10월 12일 ‘사물놀이’가 세종호수공원 수상 무대 섬에서 열린다.

세 번째 이아기는 ‘시나위’다. 경기 남부·충청도·전라도·경상도 서남부 지방에서 굿을 할 때 즉흥적으로 연주했던 것으로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 가락의 기악합주 음악이다. 만추(晩秋)가 시작되는 11월 16일 오전 11시 세종시청 4층 여민실에서 시민과 함께 즐기게 된다. 말 그대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마지막은 젊은 감성을 곁들인 일렉트릭 사물놀이다. 흥(興)을 끌어내는 사물놀이의 신명에다 자극적이고 템포가 빠른 전자음악을 더한 퓨전 음악이 명품도시 세종시에서 선보이게 된다. 시나위가 펼쳐지고 엿새 후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다.

김덕수와 한울림 예술단이 준비한 공연에 관심을 끄는 건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공연 ‘남사당 – 난장을 트다’에서 김덕수가 얘기했듯이 전통 음악의 완성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김덕수는 대전 출신으로 1957년 추석 다음 날 조치원 장터에서 의용소방대 창설 기금마련 공연을 했다.

김덕수는 우리끼리 즐기던 사물놀이를 세계화시키면서 한국의 전통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인물이다. 그는 징의 경우 어느 민족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음을 가졌다고 독창적인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했고 장구, 또한 비슷한 것은 많지만 세계가 서로 교류를 하면서 우리의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지엽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는 인근 대전에서 태어났고 조치원 난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공연에서 김덕수는 “60년 전 추석 다음 날 조치원 시장에서 의용소방대 창설 기금 마련을 위한 난장을 열었다” 며 “이 지역은 제 영혼이 숨 쉬는 예술의 고향”이라고 연관성을 부각시켰다. 대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도 강조했고 충무체육관 터파기 공사 현장에서 상모를 돌리면서 소고를 치는 깜찍한 무동의 동영상도 공개했다. 7살 때 모습이다.

마지막 이유는 이 공연이 기업의 사회성을 실천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세종시에 많은 건설회사들이 엄청난 돈을 벌면서 지역에 환원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세종시를 발판으로 도급랭킹을 확 끌어올린 회사도 이곳에는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 곳에 분양을 했던 ‘미래와 가치’가 이번 공연에 협찬을 했다. 협찬사 입장에서는 많은 시민이 함께 하는 풍성한 행사이면 다음에 다시 후원할 생각을 갖지 않을까.

이 회사 박문수 회장은 “여민락 콘서트를 통해 세종시민에게 받은 성원을 문화 나눔으로 돌려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 며 “세종시의 문화예술발전에 도움이 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인병택 세종문화재단 대표는 “김덕수와 함께 하는 콘서트는 전통을 소제로한 것이어서 친근감이 크다” 며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품격있는 공연을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첫번째 공연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춘희 세종시장, 서금택, 정준이 세종시의원, 협찬사 '미래와 가치' 박문수 회장, 인병택 세종문화재단 대표 등이 맨 앞 줄에서 세종시민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김덕수는 1952년 대전에서 태어나 부친 김문학으로부터 예인의 기질과 재능을 이어받았다. 7살 때 전국농약경영대회에 무동(舞童)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송순갑,양도일 선생으로 장고와 쇠가락을 사사받았다. 국악예술 중,고등학교를 나와 뉴욕에 본부를 둔 아시아 소사이어티 등 전 세계 50여개국을 순회공연했다. 2007년 은관문화훈장과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2016년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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