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해야지"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해야지"
  • 강수인
  • 승인 2012.11.20 08: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사랑하는 친구에게 하고픈 한 마디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켓데이'(market day)라고 불리는 실제 시장에서의 거래를 체험하고 있다.
며칠 전 마트에 갔었는데 바로 앞에서 외국인 한명이 물건 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마트 계산원이 물건을 어디에 담을 것인지 묻자 머뭇거리다가 눈치껏 플라스틱 백(plastic bag)을 달라고 했다. 사실 외국에서는 비닐봉투를 플라스틱 백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고 또 마트가 워낙 크고 용어도 간단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알아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계산원은 도대체 뭘 원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고 외국인은 당황해했다.

뒤에 있던 나는 얼른 비닐봉투라고 알려 주었지만 화가 난 계산원은 면전에 대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야 한다”며 오히려 소리를 높였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슈퍼에 다닐 때 나도 똑같은 그 외국사람 입장이었다. 월마트나 쌤즈와 같은 큰 마트에 갈 때마다 모르는 말을 할까봐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잘못 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늘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 발음이나 생소한 단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처음 무언가를 설명하듯이 차근차근 알려줬고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림을 그려가면서까지 이해시켜 주었다.

그들이 기다려주는 그 과정을 통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읽을 수 있었다. 기다림, 참 쉬운 일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서 혼자 걷기까지는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뒤집고 웃으며 붙잡고 일어서는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지만 사람은 이렇듯 미숙하게 태어나 엄마와 함께하는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엄마는 아이를 매일 보면서 기다림을 배우고 아이는 엄마를 통해 사랑을 느끼며 함께 살아감을 배운다. 이렇듯 어렸을 때만 해도 엄마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감사함으로 행복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엄마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세상에 나가서 경쟁해야만 되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마음의 문을 하나하나 닫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머리가 커서 또는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둘러대지만 아이들은 어릴 적 받았던 사랑의 감정으로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발 짝 뒤에서 그 아이를 키우던 첫 마음을 기억하며 아이 나름대로 꾸려 나가고 있는 인생을 그대로 봐주고 격려해주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끼리 끈끈한 정을 쌓아가며 의연한 모습으로 아이를 믿어 줄때 아이도 엄마의 마음속으로 더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바꿀 수 없으니 상대방이 맞춰 주기를 바란다. 이는 부부관계, 부모 자식관계, 친구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방적인 관계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관계 맺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그 일방적인 관계를 못하겠다고 나서면 속이 좁다, 이해심이 부족하다, 예민하다는 말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기 일쑤다.

   직접 재배한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우리의 직거래 장터와 같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
관계가 소중하다면 말하는 법과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능력이 다름을 인정해야 획일화된 평등의식과 조바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똑같은 인간과 인간으로 의견을 묻고 들어 주는 토론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상대방이 자기 일을 스스로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경복궁에는 두 그루지만 마치 한 나무처럼 가지를 뻗고 잎이 자라는 나무가 있다. 서로에게 햇빛을 쏘일 공간과 바람이 지나갈 틈새를 배려한다. 우리도 사랑한다면 이처럼 끊임없이 보면서도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존중해 주면서 기다려줘야 하지 않을까.<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잔잔한 가족 얘기를 주제로 한 글을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라고 있다./편집자 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서희 2012-11-23 10:01:33
상대방의배려가 좀부족했던것같군요
그분도바로후회했을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