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사람, 왜 택시 안에서 우산털까"
"배운 사람, 왜 택시 안에서 우산털까"
  • 최태호
  • 승인 2017.04.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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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최태호 중부대 교수, "이기적인 사람되는 걸 배우는 걸까"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필자에게는 운전기사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다. 가끔 이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들은 정말 움직이는 ‘시사평론가’ 집단이다. 대선이면 대선, 총선이면 총선, 모든 것이 이들의 시각과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에 있는 의원들의 이야기보다도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훨씬 정확할 때가 많다. 아마도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다양하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상식이 많이 쌓여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상식뿐만 아니라 시사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며칠 전의 일이다. 예와 다름없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에 모범기사 한 분이 대뜸 “교수님께 할 말이 있슈” 하였다. 놀란 토끼처럼 바라보았더니 웃으면서 “배운 사람은 뭔가 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내가 뭘 잘못 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분은 주로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골을 운행하면서 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시간 맞춰 시골에 들어갔다가 손님이 없으면 그냥 나온다고 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궁벽한 곳에는 꼭 필요한 제도가 아닌가 한다.

그분의 말씀 중 시골 할머니들은 비가 오는 날 택시를 탈 때면 타기 전에 우산을 탈탈 털고 승차한다고 한다. 그리고 운전기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표현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여대생들은 비를 맞지 않으려고 택시 안까지 들어와서 겨우 우산을 접는다고 한다. 바닥뿐만 아니라 의자에도 물이 묻을 때가 많아서 불편하다고 한다.

시골 할머니와 여대생 중 누가 많이 배웠으며, 배운 사람은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대학에서 지식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인성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필자를 힐난한다. 필자는 농담 삼아 잘못했다고 하고 사과하였지만 내심 부끄러움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말이 사실이다. 학교에서는 맞춤법과 한국어교수법만 가르쳤지 아이들에게 ‘술 마시는 법’, ‘연애하는 법’ 등을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다. 신입생들 데리고 MT갔을 때 주도(酒道)를 한 번 강의한 것 빼고는 인성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물론 ‘대학생활과 인성’이라는 과목이 있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기에 바빴다.

모범운전기사의 이야기는 갈수록 태산이다. 택시 안에서의 대학생들의 애정행위에 대해 장황하게 연설을 하였다. 좋으면 모텔에 가서 애정표현을 하든지 할 것이지 왜 택시 뒤에 앉아서 지나치게(?) 애정 표현을 하느냐고 하였다.

하기야 필자가 처음에 대학 강단에 섰을 때만 해도 여학생들은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요즘은 여학생들이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는 모습을 자주 본다. 교내 팔각정에서 남녀학생이 누구 입이 더 큰지 확인하고 있는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택시 안에서 그렇게 심하게 애정행위를 할 줄을 몰랐다. 너무 심하면 호되게 나무라고 택시비 안 받고 내리라고 한단다. 부모 앞에서도 그러느냐고 호통을 치면 오히려 성질을 낸다고 한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필자가 자라던 시대와 지금은 천양지차로 변했다. 과거를 이야기하면 늙은이라고 한다. 추억에 젖어있어도 늙은 사람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고 본받아야 한다. 나이 먹어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는 수많은 이야기를 모으면 한 편의 소설은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 가장 필자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이 시골 할머니와 여대생의 이야기였다. “배우지 못한 할머니는 운전기사를 배려하고 후에 타는 손님을 배려하는데, 왜 배운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냐”고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설마 나의 제자들도 그럴까 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이제는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배려하고 소통하는 방법과 토론하는 수업을 더 많이 해야겠다. 좋은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잊었던 현실을 돌아본다. 지식이 가득 찬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사고로 가득 찬 제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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