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용운, 다시 태어난다
소설가 백용운, 다시 태어난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7.04.14 10: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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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문학 가치 찾던중 생전 작업실 발견, 창작공간으로 재생
   조치원이 낳은 소설가 백용운의 작업실이 발견돼 회갑을 맞은 '백수문학'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사진은 13일 작업실 앞에서 만난 백수문학 회원들, 뒤에 보이는 흰색 집이 그의 작업실이다.>

“백수문학의 뿌리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곳이 조치원이 낳은 소설가 백용운의 작업실이었습니다.”

올해로 갑년(甲年)이 된 조치원 문학동인지 ‘백수문학’(白樹文學)을 이끌었던 소설가 백용운의 흔적이 지역문화의 뿌리로 발견되면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고뇌로 작품을 썼던 작은 공간이 조치원읍 침산리 조치원역 뒷길에서 확인돼 문화예술 분야에 활용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 백용운의 작업실은 지역에서 흔치 않는 동인지 ‘백수문학’의 역사성을 높이 평가한 653 예술상회 이종현 대표가 우연히 발견, 후학들에게 알려지면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을 앞두게 됐다.

이 대표는 1956년에 창간돼 올해 회갑을 맞은 조치원 최고(最古) 동인문학지의 가치에 인정, 전통과 뿌리를 활용한 창작 프로그램을 개발해 세종시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에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조치원이 낳은 소설가 백용운의 실체를 알게 됐고 입으로 전해오던 그의 작업실을 조치원읍 침산 1길 1에서 찾아내 회갑을 맞은 동인지에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서 너평 크기의 작업실은 천정 석 가래가 그대로 드러나 자연미를 더해주었고 1989년 4월 상량(上樑)문이 쓰여져 있었다. 벽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깔끔했으며 외벽은 시멘트로 칠해진 평범한 양옥집 문간방이었다.

백 작가는 고향 만주에서 피난오던 1950년부터 약 10여년 간 살았고 이후 뒤쪽 약 30m떨어진 곳으로 이사, 2007년 작고할 때까지 평생을 조치원읍을 지켜왔다. 이사 가서 오래 동안 거주했던 집은 이미 흔적조차 없어 이번에 찾아낸 문간방이 유일한 작가의 산실이자 흔적인 셈이다.

이 공간에는 백수문학 아카이브 구축과 함께 동인지와 관련한 개인 소장품을 수집 전시하고 학술회의와 백일장, 시낭송회, 그림 전시 등을 통해 백용운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다.

13일 오후 2시.

   동아일보 1985년 12월 9일자에 실린 백용운의 사진, 뒤켠으로 조치원 역이 보인다.

침산 1길 백 작가의 체취가 남아있는 작은 방에 백수문학을 이어가는 후배들이 모였다. 5대 회장인 박용희, 시인 김일호, 장석춘 등이 만나 창작 거점 공간으로 활용방안과 운영계획을 논의했다.

박용희 회장은 “조치원에 계시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중앙문단과 꾸준히 연락을 취하면서 지역 문화를 일으키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후배들에게 전해준 분”이라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정리해드렸던 기억이 생생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재조명되어서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백수문학 뿌리를 찾아나선 653예술상회는 오는 11월까지 최종 자료집 발간을 목표로 이달부터 월별 프로그램을 확정, 외국작가 초청 워크 숍 등 계획을 실행해나갈 예정이다.

백용운 작가는 1930년 만주에서 태어나 19세 때 조치원으로 피난왔다. 1953년 조치원 전매서에 근무하면서 이곳에서 정착했으며 1956년 ‘심우지’ 신춘문예에 소설 ‘섣달 그믐날’, 시 ‘통일을 선물로 달라’로 입선, 등단했다.

농협에 근무하면서 조치원단위농협을 만들어 지역 농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게 했으며 문인협회 조치원 지부장, 예술단체총연합회장 등으로 문화예술계를 이끌기도 했다.

강금종, 홍재헌, 동우근씨 등과 함께 만든 ‘백수문학’ 발행인으로 지역 문단을 책임졌고 ‘상두놀이’, ‘꺼우리 방즈’, ‘고가’ 등이 TV문학관과 베스트셀러 극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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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문학 편집인. 2017-04-16 18:26:23
첨언>

1.
백수 문학의 출발은 1955년 동인이 결성되고 1956년 창간호를 발간한 동인지였으나, '1988년' 반 년간 정기 간행물로 정부에 정식 등록(세종 사 00001호)되며 동인지 시대를 접고, '황금찬' '성기조' '윤조병' '박재삼' '나태주' '리헌석' '임 보' '신 협' '이광복' '복효근' '윤보영' 등, 전국의 유명작가들이 발간에 참여해 오다, 2017년부터는 '계간지'로 전환되어 첫 발간을 앞둔 '전국단위 종합 문예지'입니다.

백수문학 편집인. 2017-04-16 18:25:41
2.
해당 장소는 이미 '백수문학회' 회원들에 의해 고증되어 있던 장소였고, 임종 시 까지 기거하시고 'TV문학관'에 극화 방영 된 단편<고가>의 배경이던 실질적 생가는, 선생 사후 개인에 매각되어 현재 공터로 방치되고 있는데. 두 장소를 연계한 '백수 문학관(가칭)' 건립 필요성을 '침산리 재정비 사업'의 계제에 시청 해당 부서에 건의하셨으나 현재까지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