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내전상태, 박근혜 책임져야"
"심리적 내전상태, 박근혜 책임져야"
  • 김선미
  • 승인 2017.03.08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미칼럼]대통령 박근혜의 죄, "국정농단보다 더 나쁜 나라 두동강 낸 죄"
   김선미 편집위원

심리적 내전 상태, 대통령 승복 약속하고 메시지 전해야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빠르면 하루 이틀 후, 늦어도 다음 주면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운명은 물론이고 나라의 앞날까지 좌우할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분위기로는 헌재 결정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극심한 국론 분열, 혼란을 피할 수 없을 듯하고 이에 더해 테러 위협까지…나라 전체가 이미 수개월째 심리적 내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지만 정말 물리적 내전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넘어선 공포감에 전율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뿐 일까. 광장의 소리를 빙자한 저 광기어린 폭력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평생 보수정권 보수신문 보수종편 지지한 아버지의 항변

3·1절 평소보다 태극기를 달지 않은 집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집도 그 중 하나다. 국경일이면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듯 아침 일찍 태극기를 다시던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께서 3·1절 아침, 태극기 다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이유는? 태극기가 너무 ‘천박’해져서 달지 않겠다고 하셨다. 상스럽고 살기등등한 막말과 테러를 방불케 하는 아스팔트를 피로 물이겠다는 폭력적 위협이 난무하는 광장에서 태극기가 ‘장식품’처럼 나부끼는 것이 보기 싫으셨던 것이다.

태극기를 망토처럼 휘감고 대통령 변호인단이라는 사람이 법정에서 태극기를 펴드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아버지 보기에는 태극기를 천박하게 취급하는, 태극기를 희화화하는, 태극기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성조기의 등장이다. 탄핵에 반대를 하는 것은 좋은데 왜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흔드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셨다.

아버지가 진보적 마인드를 가지신 분이냐고? 진보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다. 평생 보수 정권을 지지하셨고, 보수 신문을 구독하시고, 보수 종편을 시청하시는 분이다. 급기야 친박 단체 사이트에 죽창에 태극기를 매단 죽창 태극기까지 등장했다.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보수를 완전히 궤멸시켜”

“박 대통령은 최순실에 의해 부정부패한 것도 죄를 받아야할 것 같지만 더 큰 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완전히 두 동강내고 있다. 이것은 국정농단보다 더 큰 죄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였고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발언이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보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대한민국을 두 동강으로 절단 내고 본인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 같다”며 “매 주말 수십만의 태극기 부대를 불러 모아서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수를 궤멸시킨 죄’, ‘나라를 두 동강 낸 죄’. 죄의 무게로 따진다면 전자보다 후자가 백배 천배 더 무겁지만 ‘보수를 궤멸시킨 죄’ 역시 소홀히 여기기 힘들다. 평생에 걸쳐 보수정권을 지지해온 우리 아버지와 같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낙담케 한 죄를 어찌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편 네 편 가른 대통령, 자신이 내세운 원칙, 약속마저 배신

‘나라를 두 동강 낸 죄’ 는 구구하게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서 보듯 내 편 네 편으로 극명하게 갈라왔고, 청와대가 탄핵반대 집회와 과격시위를 지휘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걸 보면 대통령 박근혜에게는 오래 전부터 한 쪽은 이미 ‘우리 국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70년대 독재정권과 권위주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고, 국정 운영 능력은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품격과 품위는 갖춘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상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던 약속과 원칙을 스스로 배신한 것은 물론 조언을 구하는 주위의 인물들마저 합리적 보수들 보다 독기와 천박함으로 뭉친 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품격마저 의심케 한다.

 

헌재 결정에 불복? 대통령의 품격과 품위를 보고 싶다

탄핵 반대 집회가 날로 수를 불리고 과격해지고 있음에도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탄핵 심판 이후 승복 여부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 심판 결정에 대해 70% 이상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게 건전한 상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선고가 내려지기 전 국민들에게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승복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핵 인용시 헌재 결정에 불복하고 물리적 테러도 불사하겠다며 특검과 헌재를 겁박하는 열혈 추종자들에게 ‘승복하라’고 ‘승복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당장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든 온전히 임기를 마치든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품격이다. 나라를 두 동강으로 절단 낸 데 대한 마지막 참회의 기회이다. 대통령의 품위를 보고 싶다. 설마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조짐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한낱 기우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