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성완종, 그리고 이완구 '무죄'
아~ 성완종, 그리고 이완구 '무죄'
  • 최민호
  • 승인 2016.09.29 08:45
  • 댓글 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안타깝고 아쉬웠던 과정"

이완구 전 국무총리 2심 판결은 무죄였다. 충청권 총리로 기대와 희망을 가져다 주었던 이 전 총리의 낙마 사건은 안타까움을 지역민에게 가져다 주었다. 항소심에서 무죄판결로 어느 정도 명예는 회복됐지만 아직 최종심을 남겨놓고 있다. 이 전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낙마와 함께 단명했던 최 전 실장은 재판과정을 줄곧 지켜보았다. 2심 판결 후 참모로서 아쉽고 안타까웠던 점을 기고로 보내왔다. 최 전 실장은 현재 배재대 석좌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편집자 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몽테스퀴에가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으로 분립하여야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대국가라면 예외없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리가 되었다.

연약한 사람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만나면 잡아먹혀 버린다.
두 마리의 호랑이를 만나면 두 호랑이가 서로 싸워 이긴 놈에게 결국 잡아먹혀 버린다. 하지만 세 마리의 호랑이를 만나면 호랑이끼리 서로 견제하고 으르렁거리면서 무사하게 된다는 비유가 3권분립이다. 여기서 사람은 인권이요, 호랑이는 권력기관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무엇이 제대로 기능하여야 나라를 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구국의 세 기둥으로 교육과 사법과 언론을 꼽아보았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고 성완종씨가 유서에서 폭로한 내용이 증거로 채택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판단과 함께 1심과는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사진출처 : KBS 화면 캡처>
교육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교육이 무너지면 도덕이 무너진다.

사법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간해 주는 것이다. 사법이 무너지면 아무리 교육이 아무리 올바로 가르쳐주어도 이를 담보해주지 못하니 사회는 곧 무너지고 만다. 언론이란 교육과 사법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감시하고 계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론이 무너지면 사회는 방향타를 잃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세 기능은 서로가 견제하며 보완함으로써 사회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3권 분립 못지않게 이 세 기둥은 현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3대기능이 된다.

한때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고 성완종 회장의 정치자금 사건...성완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완구 총리에게 3천만을 주었다는 녹음을 남겼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이를 부인하며 만일 자기가 돈을 받았다면 목숨을 끊겠다고 국회에서 답변하였다. 서로의 진실 공방이 오가면서 결국 국무총리를 사임하고 이완구 총리는 피고인의 입장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1심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러나 2심은 무죄...
아직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아 있으니, 진실규명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속속들이 지켜보았던 입장에서 만감의 감회는 매우 착잡하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형사재판사에 매우 중요한 판례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OECD국가로서 세계에서 12위권에 드는 선진 주요 국가의 국무총리가 죽으면서 3천만을 주었다는 녹음진술만으로 진위여부에 불구하고 그 막중한 총리직을 사임해야 하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진술한 진술이 모두 진실을 말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앞 다투어 보도한 언론의 내용에 따라 국민들은 실로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이에 따라 노도와 같이 형성되는 여론중 보도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어디까지 져야 하는가.

이완구 전 총리의 사건은 이러한 민감하고 막중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법정에서의 진술과 자료를 통해 하나하나 진실을 밝히게 되었지만,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언론보도내용 중 심대하게 영향력을 미친 것 중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완구 총리에게 비타500박스로 돈을 전달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완구 총리가 고 성완종 회장과 연락도 없었고, 친분관계도 없었다는 발언은 이총리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서로 빈번한 연락이 없었음도 밝혀졌다.

한때, 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켰던 이 총리의 거짓말과 비타500박스는 존재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총리에 관한 유언이 과연 진실을 말하는가에 있어서 1심은 여러 정황으로 그렇다고 인정했지만, 2심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교육은 모든 혐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법은 오로지 진실과 양심에 의해 판결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언론은 공정과 직필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한다.

이완구 전 총리는 재판을 받기 전부터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현직 총리의 지위에 있는 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어렵다는 이유가 컸다. 교육의 원칙도 사법의 천명도 총리라는 지위에 굴복하고 말았다. 언론은 관련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실히 전달하였다고 하나, 거기에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치명적인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1894년 프랑스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흔들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알프레드 드레퓌스. 그는 유태인으로 프랑스 육군 포병 대위였다. 그는 독일에 비밀문서를 넘겨주었다는 이유로 국가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것은 부당한 재판이었다. 지식인 에밀 졸라가 이 부당함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당시의 시민 여론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유태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오히려 에밀졸라는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자유, 평등, 박애라는 3대 슬로건을 건 인권 혁명의 발상지 파리에서, ‘나는 무죄다’라고 외치는 드레퓌스에 대해 ‘유태인 죽여라’라고 외치는 함성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비엔나의 유력한 신문인 ‘신자유신문(Neue Freie Presse)’ 파리특파원이었던 유태인 테오드르 헤르츠는 유태인들의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였고, 그 결심이 시온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은 작은 사건에 불과할 수 있는 드레퓌스의 재판에서 연유된 작은 흐름이 세계를 움직인 거대한 역사가 된 것이다. 3권분립을 주장하고 실현하였던 몽테스퀴에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또 다른 세 기둥, 교육과 사법과 언론의 역할은 이렇게도 큰 역사적 변화를 초래시켰다.

인간은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우고 가르친다.
사법은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사실을 심리하며 판단한다.
언론은 정확성과 공정성에 생명을 걸고 펜으로 칼을 이긴다.
드레퓌스와 에밀졸라와 테오드르 헤르츠 같은 인간이 있어 역사는 변화하지만, 드레퓌스도, 에밀 졸라도, 테오드르 헤르츠도 피 흘리는 어려운 가시밭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걸어 나갈 때의 고통과 비참함은 실로 가혹한 것이었으리라.

되도록 어떤 사람도 이러한 고초를 겪지 않도록 3권의 분립과 나라의 세 가지 기능이 올바로 작동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그럴수록 또 한사람의 희생자가 눈에 어른거리며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다.
고 성완종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한정윤 2016-10-05 16:06:31
아랫글 중에 두 사람 !
제대로 정신 차려라 !
이완구 총리의 무죄는 그냥 거저 나온것이 아니고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 졌는데 그걸 억지로 아니라고 하니 한심하다.
산수책에 1+1= 2라고 되어있고 그것이 진실인줄 모르더냐 ?

천안사람 2016-10-04 20:54:16
조동범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완구 총리는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것이지요.
삼척동자도 알만한것을 철부지들은 여론몰이에 동참한다.
부화뇌동하는 일부 충청인들이 있어 충청도가 욕을 먹는다.
좁은 국토에서 지역을 논하는것 자체가 우습지만. .
냉철한 머리로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 .

충청인 2016-09-30 08:24:17
충청인으로써 챙피하다. 죽은자는 말이없다. 어차피 이나라는 권력이 있는 산자의 법아닌가. 무죄는 무슨 이미 유죄다.

조동범 2016-09-29 15:04:07
이완구 총리가 부패척결을 단행하면서 첫 타켓이 성완종이 었으며, 따라서 성완종은 이완구를 매우 증오했을 것이다 만일 이완구가 성완종으로 부터 검은돈을 받았다면 부패척결 첫주자를 성완종으로 세웠을까?

세종인 2016-09-29 14:56:09
잘못된 것을 사법부가 바로 잡았다. 그걸 믿어야지 여론재판을 할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