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신 양사언이 태산에 오르지 않고 태산가를 읊었다면 성인의 시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1517년∼1584년)은 태산가(泰山歌)라는 시조에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노래했다. 양사언의 평시조이지만 태산의 높은 기상을 표현한 것이 공자(孔子)의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와 맹자(孟子)의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의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버금가는 글귀로 한국인이라면 대개가 알고 있다.문득 조선의 선비 양사언이 “중국 태산에 오르고 태산가를 지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기록을 보면 금강산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태산을 올랐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양사언이 태산가(泰山歌)를 태산에 올라서 불렀다면 군자(君子)의 시(詩)이고, 만약에 오르지 않고서 불렀다면 성인(聖人)의 시(詩)가 아닌가 싶다.
중국의 황제들은 등극을 하고 나면 태산 정상에 올라 봉선(封禪)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공맹고도(孔孟古道) 기행에서 곡부에서는 공자와 맹자를 알현하고 태산과 노산에서는 “태산복(泰山福) 노산도(嶗山道)”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탐방했다.태산등정에서 대표적인 등산로가 중천문(中天門)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의 당일코스로 태산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18반의 끝 위쪽에 남천문이 우뚝 솟아 있다. 남천문은 해발 1460m이며 남천문에서 왼쪽 방향은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오른쪽 방향은 옥황정(玉皇頂)이 있는 산 정상으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이곳 남천문은 원(元)나라 중통 5년에 포산도사 장지순(元 中统五年 1264年 布山道士 张志纯 创建)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그는 도사(道士) 왕중양(王重陽)의 제자이다. 남천문(南天門)을 통과하면 바로 그 앞에 미료헌(未了轩)이 나오는데, 순간 요란한 음악소리와 향 피우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문득 여기가 정상인 것처럼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향을 피워 복을 빌고 있다.
태산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으로 가기 위해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는 순간 천가(天街 : 하늘거리)라는 돌로 된 큰 문이 우뚝 솟아 장엄함을 더한다. 천가(天街)를 지나면 돌로 지어진 백운정(白雲亭) 정자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승중(升中)이라는 문(門)이 나오며 그 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는 오악진형산도(五嶽眞形山圖)의 비(碑)가 있는데 그 중에서 태산이 오악지존(五嶽之尊)이라는 문구와 오악(五嶽)에 대한 상징을 부호(符號)로 새겨 놓았다. 왼쪽에는 이곳 태산이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바위에다 섬세하게 수를 놓았으며 그 옆으로는 망오성적(望吳聖迹) 석방(石坊)이 있는데 이곳이 공자묘(孔子廟) 즉 태산에 있는 공자사당이다.중국에서는 공자를 우상화하고 있으며 공자의 사당이 곡부(曲府)에 있는 공묘(孔廟)에서와 이곳 태산(泰山)에 있는 공자묘(孔子廟), 그리고 북경(北京)에 있는 공자묘(孔子廟)가 대표적이며, 남경(南京)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공자를 숭상하는 사당들이 많이 있다.
이곳 태산에 있는 망오성적(望吳聖迹)은 공자(孔子)와 안자(顔子)가 태산에 올라 이곳에서 오나라의 도성 소주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 곳으로 성스러운 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기록에 보면 “공자와 안자가 태산에 올라 오나라를 바라보며 소주문 밖에 묶어놓은 백마를 보고, 공자가 안자에게 말하기를 “너도 오나라 성문을 보았는가?” 했더니 안연이 대답하기를 “보았습니다”. 공자가 또다시 묻기를 “문밖에 어떤 물건이 있는가?” “그 모습이 하얀 명주(모시)인데요.” 라고 했더니 공자께서 “내가 착각을 했구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공자의 말씀(지식)을 알아주는 안자(안회 또는 안연)를 보고, 공자께서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위 대화는 불교적 禪문답처럼 본질에서 겉을 말했더니 그 속까지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공자와 안자의 대담을 한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서 훗날 공자(孔子廟) 사당을 지었는데 들어가는 석방(石坊)에다 망오성적”(望吳聖迹)이라 칭하였다.
이곳 등산로를 천가(天街)라고 한다. 천가란 말 그대로 하늘의 거리로 즉 지상의 거리가 아니고 하늘에 있는 천상의 거리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려면 마지막 서신문(西神門)이 나온다. 같은 문을 내려오는 쪽은 동신문(東神門)인데 문 하나로 앞뒤 이름이 다른 이유는 지금도 아리송할 따름이다. 망오성적(望吳聖迹)이 유교(儒敎) 사당이라면 서신문(西神門)안은 도교(道敎) 사원 같은 느낌이다.
태산의 정상에서 중국무술의 태극권이 생각났다. 왕종악의 태극권보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太极拳释名》 (太极拳 一名长拳,又名十三势。长拳者:如长江大河,滔滔不绝也。十三势者:掤、捋、挤、按、采、挒、肘、靠,進、退、顾、盼、定也。掤、捋、挤、按,即坎、离、震、兑四正方也;採、挒、肘、靠,即乾、坤、艮、巽四斜角也,此乃八卦也。進、退、顾、盼、定、即金、木、水、火、土,此乃五行也。合而言之,曰“十三势”) 간단히 풀이하면 태극권(太極拳)은 장권(長拳) 또는 십삼세(十三勢)라 한다. 장권은 흐르는 물과 같이 끝임 없이 이어지며, 십삼세(十三勢)는 붕(掤), 리(捋), 제(挤), 안(按), 채(採), 열(挒), 주(肘), 고(靠), 진(進), 퇴(退), 고(顾), 반(盼), 정(定)이다. 태극의 원리는 음양 오행팔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즉 붕리제안 채열주고는 팔괘의 근거와 진퇴고반정은 오행의 근거를 두며 이것을 십삼세라 한다.태극권보(太極拳譜) 저자인 왕종악 선생은 태극권의 전체내용을 십삼세로 명확히 하였고 권법과 권리를 모아 이론의 형식을 통일시켰다.
내가 볼 때 태극권 수련에 있어서 위 내용만 읽을 줄만 알아도 초보자가 아니며 이해만 할 수 있으면 태극권 고수 대열에 들 수 있다. 태극권에 원리인 음양, 오행, 팔괘를 응용 할 줄 알면 산중에서 수련을 하면 “산중 도인”이며, 마을에서 수련을 한다면 “마을 도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태극권을 보았을 때 겉모습만 본다면 태극권의 진수를 접하기가 곤란하다.
태극권 동작의 원리는 도교적 바탕에 있다면 명칭의 원리는 유교적 근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태극권에 기본원리인 붕리제안 채열주고는 도교적 음양오행에 근거를 두고 “붕리제안”을 다른 명칭으로는 람작미(攬雀尾)이다. 태극권(太極拳)은 투로(套路)에서 “식”(式)으로 종목을 구분하고 있으며 24식태극권, 42식태극권, 88식태극권, 등의 명칭은 한문의 특징인 기본문맥(4언구)으로 구성되어 있다.서신문(西神門)을 통과하면 벽하사((碧霞祠)가 있는데 이곳은 벽하원군(碧霞元君)을 모신 사당으로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딸이라고 한다. 옥황정에는 말 그대로 옥황상제를 모신 사당이다. 마지막 같은 돌계단을 오르면 그 유명한 대관봉 (大觀峰) 즉 천하대관(天下大觀) 기태산명(紀泰山銘)나온다. 대관봉(大觀峰)을 당마애(唐磨崖)라고도 하는데 당 현종이 개원지치로 28년간의 태평성대를 기원하였으며 태산에서 봉선을 하고 기념을 하기 위해서 그 과정을 내용을 바위에다 금빛으로 새겨놓았는데 그 글귀가 무려 1008자라고 한다. 바위에다 새겨놓은 글씨는 섬세성을 직접보질 않고서는 말하기가 곤란하며 그 장엄함을 맹자(孟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응용하면 약자에게는 용기를 주고 강자에게는 위엄과 사상을 높여주는 인상이었다.
그래도 오르고 또 올라야 태산정상인 옥황정이 나온다. 여기서 부터는 무턱대고 올라가면 아니 된다. 왼쪽으로 올라가야 옥황정이 나오는데 계속 오르면 오른쪽으로 가는 수가 있다. 너도나도 마지막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입구가 혼잡하여 잘 보이질 않는다. 물론 갔다가 되돌아 정상으로 가는 경우가 있겠지만 태산정상에서 혹시 헤매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르는 이에 귀감을 던져 본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오악지존(五嶽之尊)이라는 바위 글을 보지 않고서 태산(泰山)에 올랐다고 할 수 없다는 말에 줄을 서서 사진촬영을 하고 바로 옥황정으로 향하였다. 옥황정(玉皇頂)은 해발 1545m로 생각보다는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옥황정에 올라 옥황상제를 모신 사당에 절을 올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렇게 높은 정상에 우물샘 모양이 있는데 주변이 온통 열쇠 꾸러미로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이래서 나왔구나’라며 중얼거렸다.
태산은 오르는 이에 따라 입구에서 중천문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공자가 입산한 천외촌서부터 등반을 한다면 너무도 힘들어 이렇게 높은 산은 없을 것이라고 혀를 내두를 것이다. 다시 한 번 태산을 등반하다면 공자가 올랐던 그길로 올라갈 것을 다짐해본다.
끝으로 태산 정상 주변에는 볼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왜 태산에 올라야 하는가? 이유는 ‘태산복(泰山福) 노산도(嶗山道)’라는 글귀처럼 “복을 받으려면 태산에 오르고, 도를 닦으려면 노산에 오르라” 라는 데 있다. 산에 오르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태산은 복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꽉 차있다고 한다. 나 역시 태산에 오르는 이유가 복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면서 하늘거리를 거닐다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이제 복(福)을 받았으니 나도 모르게 발길은 도(道)를 닦으러 노산(嶗山)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