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예술, 그토록 몰랐느냐"
"우리 문화예술, 그토록 몰랐느냐"
  • 임영호
  • 승인 2016.04.1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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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칼럼]'한국 미 최고 안내서'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한국의 전통 예술미는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말할까?

유튜브 조회 수가 20억이나 된 싸이의 노래나 뮤직비디오가 나온 그 밑바탕은 무엇일까? 한국미는 그저 자유분방함일까?

아니면 한국의 자연이 아름답기에 따로 우리 조상들이 예술미라는 것을 굳이 필요치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 분이라면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미의 본바닥에 흐르는 선과 색, 음률의 흥겨움을 샅샅이 읽어 우리 것의 건강하고 정직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분.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선생이다.

선생은 일제하 고등학교 시절 고유섭 선생의 권유로 박물관에 발을 디딘 후 반평생을 청자니 백자니 회화니 불상이니 하는 우리 문화유산과 늘 함께 하셨다.

선생의 유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우리 문화에 대한 격조 높은 글로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독자의 사랑을 받는 책이다.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샀으나 읽지는 못했다.

그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관한 책인 줄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선생이 살아생전에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문화재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논문도 썼지만 일반시민을 위한 에세이도 썼다. 그 중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후학들이 골라서 우리에게 선 보인 것이다. 

사무치는 고마움을 한가득 표현
선생은 평생 한국미를 음미했다. 아니 푹 빠졌다.  눈과 코 모든 육감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한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에 대한 사무치는 고마움을 한가득 표현하였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 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안양문·조사당·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핼쑥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p 271 )  

이 책의 제목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 글을 읽고 영주 시골구석 부석사에 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시사철 풍경을 본 사람들이 한 둘 이었겠는가? 알아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뒤통수를 세게 친다. 정신 차려라.

우리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어째서 그렇게도 몰랐느냐? 마음이 하나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정양모 관장의 마음처럼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흔연하고 기쁨이 넘치고 감동적이고 설레게 한다.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예술의 마음씨
선생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그 표현력이다. 그림 한 점도 자기 한 점도 찬미하는 것 마다 표현이 다르다.  정말 이처럼 절절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 이외에 또 있을까? 감히 형언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감히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표현으로 혜곡은 우리의 예술미를 말한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있는 분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그저 옮겨 적어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배흘림 기둥<사진 오른쪽>
그는 한국의 예술은 한국의 강토나 강산의 몸짓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 이야기와도 같다고 했고 담담하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 그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도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예술의 마음씨라고 말했다.

온아한 미덕과 꾸밈없고 수수한 기능과 구조
그는 한국의 주택에 대하여 소박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그렸다. “일본의 주택처럼 아기자기 하지도 신경질적인 짜임새나 구조적 기교미를 자랑하지도 않고, 중국의 집처럼 호들갑스럽지도 번잡스럽지도 않으며 절대로 장대함 따위는 꿈꾸지 않는다.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풍광과 그 크기가 알맞다. 하늘을 향해 두 청사 끝을 사뿐히 들었지만 날아갈듯 한 경쾌함도 아니요, 조잡한 듯 하면서 온아한 미덕과 질소(質素, 소박함)한 기능과 구조가 이 지붕 밑에 한국 사람들의 담담한 마음씨를 담기에 참으로 격이 맞다”(p 21)

   창덕궁 연경당

우리 건축의 대표작, 창덕궁 비원에 있는 연경당(延慶堂)의 아름다움을 한국인의 마음처럼 절절하게 표현했다.

“연경당의 아름다움은 봄보다 가을이 좋다. 가을소리 빗소리에 낙엽이 촉촉이 젖는 하오, 인적도 새 소리도 끊긴 비원을 찾으면 빈숲을 등진 연경당은 마치 젊은 미망인처럼 담담하고 외롭다. 알맞게 무겁고 미끄러운 기와지붕의 곡선, 사뿐히 고개를 든 두 처마 끝이 그의 지붕 밑에 배꽃처럼 소박하고 무던한 한국의 마음씨들을 감싸 안고 있다.” (p 75)

천하제일 고려비색
혜곡 선생은 우리의 미술 중에 무엇이 제일 한국적이냐 할 때 우선 도자기를 들 수 있다고 했다. (......) 그의 우리 도자기에 대한 찬사는 생각보다 길다.

“길고 가늘고 가냘픈 그리고 때로는 도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따스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곡선의 조화, 그 위에 적당히 호사스러운 무늬를 안고 푸르고 맑고 총명한 푸른 빛 너울을 쓴 아가씨, 이것이 고려청자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숙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 놓는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도 희기만한 빛. 여기에는 흰 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있다. 말하자면 방순한 진국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시대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p 22)

   백자 달 항아리

이 글을 읽고 송나라 학자 태평노인이 그의 저서 '수중금'에서 천하제일이라고 칭찬한 고려비색(翡色)의 신비를 지닌 국보 68호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 과 너무나 순정적인 흰 빛깔과 둥근 맛으로 무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백자 달 항아리'를 보고 또 봤다.

소탈함과 생략, 해학미의 그림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하면 서민감정과 해학미를 잘 표현한 단원김홍도를 생각한다. 솔직히 아는 게 그것 뿐 이다. 선생은 우리 선조들의 회화작품 하나하나 마다 자기 마음을 표현했다. 다른 나라의 그림과 비교하여 작지도 크지도 않은 우리만의 매력이 있음을 강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
조한다.

“한국의 회화는 중국그림이나 일본그림에서도 볼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기교를 넘어선 방심(放心,자유스러움)의 아름다움, 때로는 조야(粗野,거칠고 막됨)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소산(疏散,흐트러짐)한 감각은 한국 회화의 좋은 작품 위에 항상 소탈한 아름다움으로 곁들여져 정취를 돋우어 준다고나 할까. (......)

우리는 공통적인 소방(疏放,마음을 놓음)과 야일(野逸,그대로의 모습),생략과 해학미 등 독자적인 감각을 간취할 수 있다. 장식적으로 발달한 일본그림이나 권위에 찬 중국그림과 좋은 대조가 되는 것이다.”(p 24)

이 책의 그림 중에서 청나라 한 지식인이 한국 산천을 보고 나서 비로소 정선 겸재의 산수화가 신필임을 알았노라고 말했다는 정선의 '낚시하는 노인'과 산수화와 풍속화의 거장이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신선도를 잘 그린 김홍도의 8폭짜리 '군선도병', 구수하고도 익살맞은 서민생활의 풍경을 담은 김득신의 '파적도', 순정적이고도 앳된 얼굴의 한국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참 좋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 미륵보살반가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무엇일까?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절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빚어낸 '미륵보살반가상'을 보라. 선생의 말씀처럼 너그럽고 고요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조촐한 입매에서 풍기는 담담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이내 평화스러워진다.

선생은 우리의 조각품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삼국시대의 조각 작품에서도 그 독자적인 감각을 드러내 주었다. 일본교토의 고류사에 있는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의 원만한 자태, 그리고 호류사에 있는 백제관음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사심 없이 무조건 그 앞에 꿇어 앉아 이마를 조아리게 한 위대한 한국의 정신이다.

(......) 신라라는 나라는 야무진 화강석을 사뭇 떡 주무르듯 한 나라였다. 경주 박물관에 놓인 가지가지 돌 조각들, 그 중에서도 내남리 출토의 석조 삼존불의 부드럽고 욕심 없는 미소를 보라. 이것이 신라 돌의 예술이다. 고졸(古拙, 예스럽고 소박함)의 미와 추상의 미가 멋진 해화(諧和, 서로 잘 어울림)를 이룬 한국고대의 조각들은 너무나 고고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p 26)

순박하고 편안한 기품의 방치례
선생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결코 호화스럽다거나 기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허욕과 아첨이 없는 것, 단순하고, 화려한 듯 보여도 소박한 동심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 했다. 우리 민속공예의 장식무늬가 바로 그렇다.  안방에 있는 나전칠기 장식장이나 사랑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탁자를 보라.

“한국의 방을 꾸미는 일인 방치레는 부귀를 갖추었다고 해서 호사스럽지만 도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류사회 일수록 화미(華美)하다 하기 보다는 질소(質素)담박한 기품을 으뜸으로 삼아왔다. 검은 오동가구에 무쇠장식을 곁들인 조선적 담소의 멋이 이러한 방치레의 지체에서 생겨났으며, 가난한 초가지붕 밑에서도 으레 순박하고도 편안한 순리의 아름다움이 깃들인 방치레의 숨은 정성이 스며있었다. 서재를 가진 지식인들은 그들대로 한아(閒雅)한 문방의 분위기를 만들기에 마음을 썼고, 사랑방을 가진 부형들은 사랑방의 품위를 자신의 품위처럼 소중히 할 줄 알고 있었다.” (p 33 )

   나전칠기장식장

냉철한 사회비판의 눈초리
탈이 국보라면 믿지 않는다. 하회탈 '양반'은 국보 121호다. 탈만큼 서민사회의 애증과 탄식이 섞여져 있는 것이 있을까? 선생의 우리 탈들에 대한 애정표현은 끝이 없다. 

“유심히 보고 있으면 그 지지리 못 생긴 모습들이나 거칠게 다루어진 손질이 용하게도 이렇게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굿거리나 타령 같은 속곡(俗曲), 기껏해야 영산곡(靈山曲)같은 가락에 맞추어서 짚신바람에 추어온 이 탈 놀이에는 아마 권위니 아첨이니 하는 따위의 잔신경이 당초부터 필요치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 토속적인 사투리의 잔잔한 맛과 여기에 얽힌 해학과 풍자의 아름다움, 그리고 때로는 서글픈 시정 이야기들이 그들의 냉철한 사회비판의 눈초리 속에서 소설처럼 도란거리고 있는 것이다.”(p 45 )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내내 한국미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를 생각했다. 혜곡 선생의 직관과 필력은 대단하다. 그의  눈길과 붓끝에서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과 안목이 나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소박, 담담, 백색, 순리, 온아, 은근 등.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코레일 상임 감사위원(현),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그런 감성이 스며있는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한국미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말처럼 좋은 예술품은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해야 보는 눈이 열린다. 정말  이 책은 가슴에 품을 만한 훌륭한 책이다. 그 가슴으로 우리 문화재를 보아야 한다. 조상님에 대한 죄송함을 조금 덜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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