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후 책상 정리를 하느라 부산하고, 선생님께 티 내지 않으려고 소곤소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바빠 보이던 아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하루의 일과를 체크하던 바쁜 내 손길이 멈추고 책 한 권 들고 교실 앞에 선다.
“자 그럼 읽어볼까?”
세종으로 근무지를 옮긴 첫 해, 오랜만에 학급담임을 맡게 되면서 세종의 첫 제자들과 어떤 한 해를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들이 5학년 생활을 통해서 배웠던 작은 것 하나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답은 예전 담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이었다. “책 많이 읽어라!” 가 아닌 책을 통해 내가 느꼈던 기쁨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5학년이니까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꿈꾸는 다락방」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하루 10분.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이 한 학기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27명의 아이들과 책 한 권을 다 읽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속에서 꿈을 이룬 많은 사람들을 함께 만났다. 우리는 꿈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때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이 아프기도 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하루 3명씩 책의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나눈 아이들에게 우리 모두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응원했다. “○○야, 너의 꿈은 뭐니?”, “난 동물사육사가 될거야.”, “○○야, 넌 꼭 멋진 동물사육사가 될거야.”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도 먼저 책 읽어달라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한 학기를 보내면서 어느새 자신의 꿈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작은 목소리로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큰 소리로 “소화기내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아이.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잘 읽어보자”라는 내 이야기에 “선생님, ○○ 꿈이 아나운서에요. ○○보고 읽어보라 하세요” 라고 서로를 추천하는 아이들. “우리반 피구 4반이랑 붙는대.
그 반 정말 잘하는데 지면 어떻게 하지?”라고 외치는 친구에게 서로 나서서 “걱정하지마. R=VD몰라?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기는 모습을 떠올려”라고 격려하는 아이들. 학기 초 의욕 없던 모습에서 만화가라는 꿈을 정한 후 쉬는 시간 틈틈이 만화 그리기 맹연습을 하는 아이. 처음에는 나 혼자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이었는데 서점에서 선생님과 같은 책을 사 왔다며 같은 곳을 펼치고 내 목소리에 맞추어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고 감사했다.
우리반 아이들이 한 학기동안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 권의 책을 다 같이 읽은 효과에 대해 떠올려 본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권했다면 지금과 같은 아이들의 모습이 나올까?좋은 책을 읽어 받은 감동이 변함없이 꾸준하게 이어지기는 어렵다. 힘들어 내가 책의 내용을 잠시 잊고 있을 때 옆에 친구의 말 한마디로 기억을 되살려준다. 좋은 책을 나누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또 그 안에서 나름의 개성을 살려 각자의 꿈을 분명히 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2학기에도 난 또 책을 읽는다.
“선생님 탈무드 읽어주세요.”
“ 어? 지금 바쁜데……. 그래 읽고 시작하자!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얘들아! 함께 책 읽던 우리를 기억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