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는데...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는데...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2.07.10 11:5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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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 권력무상 느끼게 하는 영평사의 아름다운 연꽃

   영평사 연못에 핀 백련. 부처님의 세계를 대표하는 꽃이지만 사부 대중에게는 권력 무상을 느끼게 하고 있다.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환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 밖에 없어라’ <이문조>

시궁창에서 자라지만 어느 한 곳에도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
‘탐진오욕’(貪瞋汚辱)과 중생의 썩은 물을 정화하는 부처의 세계, 그리고 한꺼번에 잎을 떨어뜨리는 연(蓮)은 중생의 욕망을 비우는 부처의 마음이다.

장군산 영평사.
세종시 출범으로 공주에서 특별자치시가 된 영평사 여름은 연꽃과 함께 세종시로 넘어왔다. 주지 환성(幻惺) 스님이 이미 전국화 된 가을 구절초 축제에다 초여름 볼거리 마련을 위해 고즈녁한 산사 공터에 심어놓은 연꽃이 차례차례 피면서 지고 있었다.

“백련을 텃논에 심은 지 7년이다. 꽃이 아름다워서 그냥 옆에 두고자 한 것이었다. 같은 울안에 있어 보니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잎의 넉넉함에 흠뻑 빠진 것이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맹맹이 콧구멍 같던 마음이 넉넉해져 가슴이 더워짐을 느낀다”

스님은 ‘연’(蓮)과의 ‘연’(緣)을 ‘넉넉함’으로 이었다. 태어나면서 씨앗을 품고 나온 ‘연’은 어쩌면 원죄를 얘기하는지 모른다. 그 씨앗이 선악을 구별할 수는 없지만 세속에 찌든 행자의 끝길에는 악의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스님은 그래서 넉넉함과 여유를 위해 백련을 가까이 둔 모양이다.

   대웅전의 가지런한 기와가 배경이 되면서 꽃이 한층 더 돋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부대중의 눈에는 그냥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 덧 씌워진다. 세월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만고(萬古)의 진리다. 참으로 쉽고 누구나 알아듣는 말이다. 그런데 왜, 권력만 잡으면 세월을 이기고 꽃은 영원히 필 것으로 착각을 하는가. 그 통 속도 결국 세상속인데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작은 힘만 있어도 그걸 활용하려는 썩은 공직자들 행태,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휘두르려고 하는 속성은 다를 바가 없다.

최시중, 정두언, 이상득...
권력이라는 칼날을 잘 못 잡은 탓이다. 이제 정권 말미에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비리’라는 죄목으로 굴비엮인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런 연꽃답지 못한 모습을 5년마다 재방송해야 하는가.

선진 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핵심이다. 즉, ‘톨레랑스’(tolerance)다. 서구사회에서 300년간 서서히 이뤄놓은 선진화를 우리는 50년 만에 압축 성장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불어 정신도 동반 상승해야 하는데 그 밸런스가 깨어졌다. 돈이 먼저가고 정신이 한참 뒤 쳐졌다. 그래서 우리를 두고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배려는 곧 여유다.
본디 우리는 배려가 많았다. 춘향의 아름다움을 선조들은 ‘물속에 핀 연꽃’(水中之蓮花), 또는 ‘구름 사이에 떠 있는 달’(浮雲間之明月)로 표현했다. 직설적이지 않고 상상의 여백을 주는 멋이 담겨져 있다. 그게 곧 산수화의 흰 공백에서 주는 여유다. 그걸 선조들은 풍류로 즐기면서 소중하게 가꿔왔다.

   꽃망우리를 터뜨리기 직전 백련.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산업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에 그것이 없어졌다. 테크닉만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임계점에 우리 사회가 서 있다. 이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배려를 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부대중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 그게 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하다.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곳이 바로 권력에 오염되어 있는 정치권이다. 장애인을 우선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얕보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선진사회다. 그게 연꽃이 상징하는 세계다.

진흙 속에서 살면서 더럽혀지지 않는 꽃.
썩은 물을 정화해서 꽃으로 승화시키는 연.
꽃잎을 한꺼번에 미련 없이 쏟아버리는 백련.
그리고 부처의 씨앗을 중생에게 전해주는 연꽃.

그 꽃이 영평사에서 지금 피고지고 있다.
‘굴다리 동네엔 미움 없는 마음만으로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산다’는 시구절이 살갑게 다가오는 산사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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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권 2012-07-12 09:30:52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붉은 꽃을 찾거나 향유하고 계신 분들은 영평사 백련의 모습에서 많은 반성이 필요할 듯합니다.

멋쟁이 2012-07-11 11:12:32
연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뼈속 깊숙히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말기 때면 꼭 등장하는 후진국형 정치인뇌물수뢰비리 그들집에 연꽃 한포기씩 선물로 보내는 국민운동이 어떨까요?? 아니면 여의도 정치1번지에 연꽃문양을 도배하고 연꽃연못을 긴급히 만들어서 자나깨나 연꽃에 의미를 생각하며 의정활동에 임하는것이......

예뿐여우 2012-07-11 10:51:16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사진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소현 2012-07-10 14:55:59
어쩜글을이렇게예쁘게표현하셨을까
잠시글과꽃에 취했습니다

김이영 2012-07-10 14:30:00
너무아름답고 편안해지네요
영평사 한번가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