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3.1절, 그리고 뻔뻔할 일본
아~ 3.1절, 그리고 뻔뻔할 일본
  • 심은석
  • 승인 2014.03.01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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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칼럼]애국 선열들이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후손들은?

   심은석 충남경찰청 정보과장
삼월의 첫날이다. 새봄이 시작된다. 영어의 어원, 마치( March)처럼 힘차게 행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계절이다. 추운 겨울을 이긴 매화는 눈속에서도 꽃을 피웠다. 충절의 혼이 서린 내포의 너른 들녘에도 봄 빛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95년 전 애국선열이 일제에 맞서 조국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기미 독립운동의 날, 삼일절이다. 민족대표 33인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 배포하고 200만 명의 조선 동포가 방방곡곡에서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펼쳤다.

“오등(吾等)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 하노라. 온 세계에 인류 평등의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고 후손들에게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누리고자 한다. (중략)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 새봄의 따뜻한 기운이 우리 독립을 펼치는 형세이니 떨치고 일어나라. 양심과 진리가 우리와 함께 있다. 시작이 곧 성공이다. 밝은 빛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일제의 당시 축소 은폐된 기록에 의하면 1,542회 시위에 2,024,000명이 비폭력 평화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민간인 7,509명이 학살되고 15,96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46,948명이 검거, 투옥되고 민가 715채, 교회 47채가 방화 전소 되었다고 한다. 화성 제암리에서는 마을 주민 23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불살라 학살한 만행을 저질렀다. 선교사들에 의해 일부 알려졌던 제암리 학살사건은 발안, 수원 화성지역 주민들의 3.1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잔인한 보복학살이었다.

일본측 주장대로 "조선에 주둔한지 얼마 안되어 현지 상황에 익숙치 못한 일부 군인들이 일본인들의 희생에 흥분하여 일으킨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민간인 토벌 작전이었다. 척후병을 미리 보내 제암리 주민들의 퇴각로를 차단한 것이라든가, 제암리 기독교와 지도자 명단을 미리 파악하고 소집하여 집단 살해한 것은 계획된 범행이었다. 제암리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나마 언더우드, 테일러등 선교사의 노력덕분이었다. 선교사들은 "끌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펴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사건들을 은폐, 축소 하려던 일제의 기록임을 참고하더라도 악랄하고 잔학함에 치를 떤다. 충청의 애국열사 유관순은 옥중에서 모진 고문에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면서 유언을 남겼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순국하면서 저리 의연한 애국충정에 머리가 숙여진다.

3.1운동을 통하여 한민족은 빼앗긴 나라에 대한 울분과 독립의지를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해에 수립하였다. 만주, 간도, 국경지역에서는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에 불을 지폈다. 국내에서는 단합된 민족역량을 바탕으로 각계 각층의 항일 민족운동을 고양시켜 조국광복을 기약할 수 있게 하였다. 중국등 인접국가들의 항일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592년 4월 13일, 왜적은 20만을 동원하여 우호적이고 평화로웠던 조선을 침략하였다. 7년 전쟁동안 한반도는 철저히 유린 되었다. 침략 전 170만결의 전국 토지는 54만결로 농업기반은 파괴되었다. 10만 명의 민간인이 끌려갔다. 사료들에 따르면 ‘4월에 적이 항복한 우리 백성을 모조리 죽이고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기록과 유성록이 쓴 징비록의 기록에는 ”서울에 와보니 모화관부터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시체가 산을 이루어 가까이 갈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서울 인구 10만명이 3만8천명으로 줄었다는 기록이다. 당시 인구의 3분지 1은 사망, 실종 되었다는 추정이다.

한민족은 반만년 역사중에 931회의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그 가운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한 것은 신라 때 20회, 고려 때 515회, 조선 때 178회 등 714회를 침범하였다. 우리는 조선초 왜구 토벌을 위해 근거지였던 대마도를 정벌하여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은 것이 유일하다. 당시 토벌 때에도 인명을 중시하여 많은 문물을 전해 주며 혜택만 주었다. 적장도 그대로 살려주고 민간인 학살이나 포로로 끌고 온 잘못은 없었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정유재란처럼 한반도를 철저히 유린한 일본이 저지른 참상에는 치를 떨게 한다.

조선은 임진왜란 300년 후에 준비없이 다시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고 한민족은 핍박 받았다. 역사는 반성과 준비없이 반복되고 있다. 반만년동안 저지른 침략과 만행을 기록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본은 오늘날 과거를 부정하고 한국을 우롱하고 있다. 일본 위정자들은 진정으로 사과하거나 반성하지도 않았다.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면서 그들이 저지른 위안부 문제 등 잔악한 범죄를 정당화 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극우화 되면서 과거 망령을 다시 새김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까이 있으며 먼 나라, 한민족에게 아픔과 비극을 안겼던 일본은 진정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기를 바란다. 중국, 동남아등 많은 이웃나라들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으면 당연히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진정한 문명국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의 성숙한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일본 센가쿠 지진 피해 때 고통받는 일본인을 위해 국민성금을 모아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일 무역 수지 적자에도 3대 무역국, 일본과의 교류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나라,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일본인이 많은데 왜 그리도 과거의 망령에 잡혀 국제적 고립을 자초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를 용서하고 진정한 이웃으로 일본을 바라보도록 일본 위정자들의 인식 전환을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은 3.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얼마 전 초등생 50%가 설문조사에서 3.1 운동을 잘 모른다는 보도도 있다.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어디 있는가? 95번째 맞이하는 삼일절,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아직도 3.1 독립 만세운동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순국하신 애국 선혈들의 절규가 3. 1 독립 만세소리 되어 들려오지 않는가? 오직 국가이익만이 국제 질서를 만드는 냉험한 동북아 정세의 틈새에서 한민족은 남 북 분단의 아픔 속에 안전과 평화, 국민행복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필자 심은석은 초대 세종경찰서장으로 역임하고 현재 충남경찰청 정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주 출생으로 공주사대부고, 경찰대학 4기로 졸업하고 한남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7월 시집 '햇살같은 경찰의 꿈'을 출판했고 한국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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