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동심 세계 그린 동화"
"순백의 동심 세계 그린 동화"
  • 임영호
  • 승인 2014.02.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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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독서길라잡이]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1942년 초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Saint Exupery,1900,6.29~1944,7.31)는 흰 냅킨에 장난삼아 그림을 그렸다. 함께 식사하던 출판업자 커티스 히치콕이 생텍쥐페리에게 뭘 그리는 것인지 물었다. 생텍쥐페리가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한 어린 녀석이지요.” 히치콕이 그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어린 녀석 말입니다. 이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어린이용 이야기로 말이지요.”

1943년, 이 책《어린왕자, Le Petit Prince》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이것은 장르로 따지자면 순백의 동심의 세계를 그린 동화에 속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어른들에게 더 맞는 책이다. 초등학교 때 읽었다면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그린 평범한 책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 들어 마음으로 읽게 되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인생철학책이다.

이 책의 화자, ‘나’ 비행사는 소년이었을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 봤는데 어른들은 그 그림을 ‘모자’라고 보고 “뭐가 무섭냐?”고 말한다.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소년은 다시 코끼리가 보이도록 보아 뱀을 그렸다. 그제야 어른들은 그 그림을 이해했다.

어느 날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비행사 ‘나’는 이상한 복장의 어린아이를 만난다. 그 소년은 아주 작은 집 채만한 소행성의 왕자였다. 그는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하자 보아 뱀을 그려 주었는데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은 자기에게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 소년은 비행사의 그림을 이해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결국은 양이나 염소 대신 상자를 그려주고 그 안에 양이 있다고 말하자 만족하였다. 물론 어른들은 상자속의 양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보이는 것 이외에는 보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장미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고쳐주려고 소행성에 장미를 두고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그 어린왕자로부터 여섯 개의 별나라 이야기를 듣는다. 오직 권위만 내세우고 군림하기만 하려는 군주, 남들이 박수쳐 주기만 바라는 허영심 많은 사람, 무엇이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자책만 하며 술만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 우주의 5억 개 별이 다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소유와 존재의 개념을 모르고 헛된 욕심만 있는 상인, 이론만 알고 행동이 없는 지리학자, 기계적으로 1분마다 한 번씩 켜고 끄는, 자신을 기계처럼 다루는 점등인 등을 나열하면서 인간의 잘못된 가치관을 꼬집는다.

어린 왕자는 우연히 아름다운 장미가 가득 피어 있는 정원을 보았다. 지금까지 자기가 가진 단 하나의 장미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5천 송이나 있으니…. 부자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초라해져서 그만 풀밭에 엎드려 울고 만다. 그때 여우가 나타났다.

어린 왕자는 ‘자기는 지금 슬프다’며 이리 와서 함께 놀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여우는 아직 길들여 지지 않아서 함께 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를 길들여 달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당신은 자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 는 뜻이다.

“내게 너는 아직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어. 그래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도 수많은 다른 여우와 비슷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확연히 달라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너만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저기 봐! 밀밭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쓸모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 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하지만, 너는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녔어. 따라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은 금빛이니까 너를 기억나게 해줄 거야. 그럼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야.”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 시가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 행복해지겠지.”

이제 어린왕자에게 다시 장미꽃들을 찾아가보라고 권했다. 그럼 네 꽃이 이 세상에 단하나 뿐이며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우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 비밀하나를 가르쳐 준다.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 바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처럼 중요한 거야. 하지만 너는 이 진리를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게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하니까. 네 장미꽃을 책임져야 한다고”

사막에서 고장난지 여드레 째 되는 날, 사막을 걸으면서 어린왕자는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한 송이 꽃 때문에 별들이 아름답고, 어딘가에 사막의 여행자들의 희망인 ‘샘’을 숨겨놓고 있기 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운 거라고 말한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보물이 집에 묻혀 있으면 그 집은 매력으로 가득 차 있듯이, 집이든 별이든 사막이든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이라고.

어린왕자는 떠나기 전 이제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전과 달라진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별 중 한 별에서 ‛나’에게 길들여진 《어린 왕자》가 살기 때문이다.

“밤이면 별들을 쳐다보세요.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수가 없네요. 그게 더 나아요. 내 별은 아저씨에게 수많은 별 중의 하나가 될 거예요. 그럼 아저씨는 어떤 별을 바라봐도 즐거울 거예요…….”

“밤마다 아저씨가 하늘을 바라볼 때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요. 또 내가 그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라고요!”

《어린 왕자》의 작가는 책의 끝머리에 어린 왕자가 지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으로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 그림을 자세히 봐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이 있으면 꼭 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에 그곳을 지나가게 되거든 급히 지나쳐버리지 말고 바로 저 별 아래에서 잠시 기다려 보라. 그러다가 꼬마 신사가 나타나서 웃거든, 그리고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녔고 그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거든, 당신은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내가 마냥 슬퍼하고 있지 않도록,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나에게 한 마디 기별해주길 바란다.”

이 책《어린왕자》는 서문에서 어린이에게 용서를 구하면서까지 나치 치하에서 고생하는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 책이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지베리보다 22살이나 연상이었지만 둘은 서로를 아끼는 절친 이었다. 이 책을 쓰던 저자는 당시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피신하여 그나마 안전하게 지냈지만, 레옹 베르트는 프랑스 동부 산악지방으로 피신해 외로움과 추위, 배고픔에 떨고 있었다. 생텍지베리는 그 참혹한 상황에 빠진 친구를 기억하며 이 책을 썼다. 아낌없이 주는 아름다운 우정이다.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책을 덮어도 여운은 끝나지 않았다. 저녁 10시이다. 창문을 열고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본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이 나를 보고 웃고 있을 것 같다. 나도 그에게 길들여진 것일까? 겉모습에 치우친 성공보다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깨우쳐 주는《어린왕자》가 언제나 내 곁에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주저 없이 질문하고 집요하게 답을 얻어내는《어린왕자》와의 대화가 잠자는 내 마음을 흔들어, 항상 깨어 있었으면 한다. 읽을 분량은 작지만 그 보다 몇 배 더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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