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찰츠부르크, 그리고 샐러리(?)
염전노예, 찰츠부르크, 그리고 샐러리(?)
  • 조한수
  • 승인 2014.02.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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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 칼럼]맛이 좋은 '세상의 소금'이 필요한 현실

온 나라가 소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계 올림픽 소식으로 관심이 뜨겁다.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 나라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각 종목에서 경기하는 모습에 필자를 비롯한 온 국민들은 마음의 성원을 보내며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온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고 있는 지금도 저 남쪽 전라도의 이름 없는 곳으로 염전의 노예로 팔려나가 사랑하는 가족과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 반짝 사회 이슈화되더니 이내 신문 지상에서는 가끔 저 구석 자그마한 기사로 지나쳐 버릴 뿐이다.

‘염전 노예’라는 것은 필자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예로부터 소금이라고 하면 우리의 생활과는 떨어질 수 없는 아주 친근한 보물인데,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던 악행이 일삼아지는 결과로 얻어지는 소금이라는 데에 경악하게 된다. 물론 전라도 1천25개의 모든 염전이 그러한 악행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고 당연히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 많은 염전 안에서 지금도 약 2천 449명의 근로 종사자들이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힘없고 못 배워서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들이나 일부 지적 장애자들을 먹이 감으로 삼아서 이들을 속여 노예로 팔아버리고, 노예로 사 들여서 갖은 착취와 고역을 일삼는 악덕 염전 운영자들과 이들과 연계한 무리들을 찾아내어서 이러한 무리들에 대해선 대한민국이 법이 살아있는 법치국가라고 한다면 낱낱이 수사하여 엄벌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노예로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힘없는 이웃들을 살려내야 할 것이다. 소금은 예로부터 우리의 생활에서는 필수적인 것인데, 이러한 국내 소식으로 인해 요즘에는 소금 먹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어간다. 그래서 소금을 땅에 쏟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소금은 인류 최초의 양념일 뿐 아니라 인간의 식사를 너무나 극적으로 변화시킨 매개물이다. 따라서 이 귀중한 양념을 ‘쏟아버리는 행위’를 예로부터 ‘매우 불운한 징조’로 연관시켜 생각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소금을 우연히 쏟았을 경우, 옛날 사람들은 소금을 약간 집어 왼쪽 어깨로 다시 던짐으로써 그 불운을 무효화시키려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한다. 고대 수메르인이나, 이집트인, 그리고 앗시리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이 그러한 미신적인 생활 풍습을 지켰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인들은 소금을 양념과 상처를 치료하는 약으로 귀하게 사용하였기에 소금과 관련한 여러 문화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한 예로 로마의 작가인 페트로니우스라는 작가는 그의 작품인 [Satyricon]이라는 책에서 예의없고 무례한 로마 군인들에 대한 비난으로 ‘소금받을 자격도 없는 무리’라는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salarium'이라고 불리는 특별급여를 받았는데, 이것은 소금을 사기 위한 급여였다. 이것이 이후에는 명사화 되어서 영어에서는 ’샐러리= 급여(salary)' 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로 유명한 음악도시인 오스트리아의 ‘찰츠부르크’라는 도시 이름도 소금과 관련된 이름이다. 오스트리아의 할슈타인과 할슈타트에는 기원전 6500년까지, 유럽의 대륙에서 발견된 최초의 소금 광산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찰츠부르크 근처에 있는 이 동굴들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이렇게 소금 광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가 찰츠부르크였기에 사람들은 이 도시를 ‘소금의 도시’ 즉 ‘찰츠부르크’라고 이름을 지어 지금까지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은 인류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소금은 물을 정화하기도 하고 쉽게 부패하는 생선과 고기를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는 방부제와 맛을 내는 양념이었으며, 어느 때는 이 소금으로 화폐를 대신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이 소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이 소금을 사용했다. 그리고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역시 이 소금을 사용했다. 물론 그리스 사람들이나 로마인들도 그들의 제사에 소금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러한 소금을 귀하게 생각하여 이를 쏟게 될 경우에는 불운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도 이 소금을 재료로 삼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가?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서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마태복음 5장 13절)라고 가르치시기도 했다. 이는 소금과 같이 반드시 필요하여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맛을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소금은 그 자체로 짠 맛을 낸다. 그 짠 맛이 다른 음식에 붙어있을 때에는 그 짠 기운으로 음식의 맛을 다르게 변화시키고 나아가 금방 변질될 것 같은 음식에 대해서도 방부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으로서 ‘서로’ 또는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중국산 소금보다는 국내산 특히 신안의 소금이 가치 있는 맛있는 소금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들이 이러한 가치있는 소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마 전, 세종시 안에 있는 한국영상대학교라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젊은 청년들이 그곳에서 각종 기술과 학문들을 익히기 위해서 기대에 찬 모습으로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학교에 와서 등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세종시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저들에게 있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맛볼 미래의 맛있는 소금을 보기 때문이다.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시 '주님의 교회'목회 사역 중cafe.daum.net/churchinsejong

 이러한 맛있는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이 귀한 소금을 함부로 쏟거나 땅에 버리는 어리석은 우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맛도 없는 저급한 소금 같지도 않은 가짜소금으로 모든 사람의 입맛을 이상하게 만드는 죄악도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내일이란 시간에 쓰일 맛있는 소금을 구하러 나가야겠다. 어디에 이러한 소금이 있는지 수소문해 보아야겠다. 누가 이러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지, 누가 이러한 소금을 파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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