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성탄절은 너무 시끄럽다
지금 성탄절은 너무 시끄럽다
  • 조한수
  • 승인 2013.12.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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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조한수 개혁교회목사, "예수님 탄생의 교훈은 겸손"

   베들레헴 탄생 교회
온 세계민이 기뻐하고 찬송하는 예수님의 성탄절이다. 우리 한국은 서방 나라들과는 달리 기독교 문화국이 아니라서 대체적으로 조용한 것 같다. 물론 젊은이들은 연인들과 혹은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즐기느라 바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이제 나라와 민족,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계민들이 즐기는 그런 세계축제의 날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 오심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일까.

예수님 오실 때의 상황은 지금과 같이 그분이 오심을 환영하거나 기뻐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누구도 관심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경학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도 구약 성경의 미가서 5장2절에서 예언을 통해서 메시아 탄생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장소까지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은 모두 마음을 닫고 당시의 기득권에 달라붙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다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이로는 멀리 저 페르시아 지역에서부터 별을 보고 찾아온 지금의 천문학자격인 이방인 박사들과 천사들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달려온 베들레헴 입구 격인 보아스의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몇몇 비천한 목동들 뿐이었다.

필자는 실제 지난 3주전에 예수께서 탄생하신 지역인 베들레헴을 여행을 하였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무려 9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해발 770m 정도의 산 위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사실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아버지격인 다윗 왕이 태어나서 자랐던 고향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예로부터 ‘다윗의 동네’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다윗 왕의 후손이 나타나 다시금 새로운 나라를 이룩하고 자신들의 번영을 이룩해 줄 메시야로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오랜 역사 동안 끊임없이 예언되어온 내용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은 전적으로 오랫동안 예언되어온 구약에서의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고자 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당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약성경 누가복음서 2장에서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로마로부터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지금의 대한민국과도 같이 온 정국이 안정되지 못하고 시끄럽기만 하였다. 더욱이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숙부이면서 양부(養父)였던 시저의 뒤를 이어서 로마의 공화정을 종식하고 케샤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을 원로원으로부터 얻은 뒤, 로마를 강력한 왕권제로 바꾸어서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어 온 제국을 강력한 군사력으로 다져나가고 있었던 시국이었다.

그는 모든 제국의 여러 곳을 행정적으로 재편성하고 과세를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래서 각 식민지역에서 황제를 대신해서 통치하고 있던 총독들로 하여금 제국 안의 모든 사람의 인두세를 거둬들이게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칙령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예리한 주목을 받고 있었던 식민지역이었다.

그들은 다른 지역보다 반란을 잘 일으키고 있었기에 거기에 맞는 강력한 자가 총독으로서 관할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로마의 아부꾼인 헤롯이란 대왕이 있었지만 그의 통치는 식민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인근 시리아 지역의 총독으로 나가있는 유능한 장군이요 무자비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구레뇨라는 인물을 선정하여 그에게 이스라엘의 인구조사 및 세금 문제를 해결하도록 맡겼던 것이다.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크게 반발하였다. 그 이유로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고 있었던 유대인들로서는 큰 경제적 부담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황제의 명으로 인구조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스로 로마 황제의 신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가 되었기에 의식이 있는 자들로서는 호적을 등록한다는 것은 치욕이었던 것이다. 셋째로는 종교적인 이유에서이다. 즉 로마의 이방인 황제를 하나님을 대신한 왕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수선한 정국에서도 요셉과 마리아는 아무 반대없이 순응하였다. 그들은 요셉의 본고향인 베들레헴에까지 그 멀리 나사렛에서부터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베들레헴에는 이들이 머물만한 여관방하나 없었다. 그래서 여관주인이 그나마 마련해준 장소가 나귀의 숙소인 작은 동굴 안에 마련된 마구간이었다.

여기서 예수께서 탄생하셔서 나귀의 구유 안에 누이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로마의 통치를 이용하여서 자연스럽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 오신 메시야로서의 예언을 이루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신 방법에 대해선 세상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오셨다. 그가 오늘날과 같이 성탄절의 떠들썩하고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으로 오시기 위해선 분명 저 예루살렘의 왕궁이나 아니면 베들레헴의 유력한 가정에서 큰 축하의 박수와 함께 오셨어야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는 납득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사람도 관심도 두지 않는 비천한 자리인 구유 안에서 태어나셨고 그의 탄생을 축하한 사람도 비천한 목자들과 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이었다. 그렇게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사시다 그렇게 이스라엘과 로마의 죄수라는 이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로부터 화려하고 요란한 그런 것과 그분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베들레헴 입구인 보아스의 들판 전경
그런데 지금의 성탄절은 너무 시끄럽다. 그분과는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더 흥청거리며 즐거워하고 소리 지른다.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교훈은 비천함과 겸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부유한 것을 좋아하고 남을 짓밟고 서야 하는 성공을 좋아하며 남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화려함을 좋아하는가? 예수님은 낮고 비천한 구유에서 탄생하셨음을 생각해 보자.

지금의 베들레헴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그곳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의 갈등 속에서 인위적으로 10m높이의 긴 장벽을 마을 한 가운데에 세워놓아 하루아침에 그곳에서 수 천 년을 살아오던 팔레스타인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분단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전 세계인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베들레헴을 그리는 성탄 시즌이지만, 이곳의 밤은 고요하지도 않았고 거룩하지도 않다. 역설적으로 2000년 전 아기 예수께서 전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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