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될 수 없는가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될 수 없는가
  • 조한수
  • 승인 2013.11.22 10: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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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의 세상과 놀다]권위는 책임있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중국 <사기>의 유림전에 보면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중국 한나라 시대의 6대 황제인 경제(景帝: BC 157-141) 때에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라는 아주 강직한 학자이면서 시인이 당시 사이비 어용학자로서 비열하고 힘 있는 권력에게 아부를 잘하였던 같은 산동 사람인 공손홍이라는 사람에게 직언한 말에서 나왔다. 원고생이라는 자는 직언을 잘하는 대쪽같은 선비로서 당시 시대에 야합하며 살던 사이비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시대의 왕따였다.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던 젊은 공손홍에게 원고생은 오히려 그를 격려하면서 그의 폐부를 찌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 학문의 바른 도리가 심히도 어지러워져서 각은 속설이 유행하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결국 유서깊은 학문은 하나의 사설(邪說)로 전락하여 학문의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가 없으니 자네같은 젊은 학자들이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학설이 굽히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나”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그동안의 무례함을 깨닫고 훗날 원고생의 수하생이 되었다는 고사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 ‘곡학아세’라는 말이 모든 지식인들에게도 꼭 들려져야할 조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움과 직위’는 하나 같이 깨달음과 자기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 자신이 깨닫고 거기에 맞는 위치에서 행동할 때에는 배운 바에 의한 합당한 책임있는 마음과 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에서는 그러한 책임있는 의식과 행동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공무원 사회에서의 공직자들이나 또는 일반 사회에서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배운 바대로 제대로 행동하지 않고 그저 시대에 편중하여 그때그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약한 자에게는 오히려 자기 힘을 자랑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현실이다. 자꾸 남의 나라 이야기하면서 비교하여 필자 자신도 속이 아프지만 우리의 치부를 도려내어 새로운 살을 돋게 하자면 할 수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남의 나라 이야기 좀 하겠다.

독자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차가 속도를 위반했다고 해서 속도위반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를 상상 해보았는가?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이 주차를 위반했다고 해서 의원 차를 견인해 가고 벌금 딱지를 붙여서 기어코 벌금을 떼어가는 상황을 상상을 해보았는가? 대통령이 개인적인 사적 업무로 공항에 나가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에 일반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가?

내무부 장관이 이민국 직원에게 전화해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할 때에 거기에 당당히 맞서서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면서 소신있게 자신의 업무를 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필자가 살았던 뉴질랜드에서의 일이다.

십 수 년 전, 당시 수상이었던 헬렌 클라크 수상은 아주 지독한 럭비 경기의 광팬이었다. (필자도 여기에 포함한다. - 럭비가 축구보다 이토록 박진감 있고 재미있는 경기라는 것을 아마 독자들도 알게 되면 푹 빠질 것이다.) 공무를 마치고 경기를 보러 가는데 시간이 좀 늦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상의 전용차 운전기사가 엄청나게 속도를 내서 간신히 제 시간 안에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미친듯이 달리는 차를 지나가는 경찰차가 발견하고 그 차를 추적하여 경기장까지 좇아와서 수상 앞에서 사정을 확인한 후에 직접 수상이 보는 앞에서 그 운전기사에게 속도위반 딱지 무려 1,500 달러짜리를 부과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권위와 권위주의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국가로 공공질서 유지와 법 집행에 예외는 없는 나라로 유명하다.
또한 필자가 살던 지역의 아주 유력한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자기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를 태우고자 주정차가 안 되는 도로 위에 차를 세우다가 이를 발견한 경찰로부터 주정차 위반 딱지를 받았는데, 당시 이 국회의원은 자신은 공무적인 일로 왔기에 주정차 위반이 아니라고 항의하면서 벌금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경찰과 시민들이 그 학교에 가서 사정을 알아보니 공무적인 일은 결코 없었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결국 그 의원은 거짓말까지 보태져서 국회에서 의원으로서 품의를 상실했다는 질책과 함께 그가 맡고 있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사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필자의 이야기인데, 필자가 뉴질랜드 영주권 신청을 하고 수개월을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 날, 이웃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나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동네 노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노인들 중에는 당시 내무부 장관 사위를 두고 있는 필자의 집 앞에 살던 ‘데피니’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나의 이야기를 그 장관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줄 수 없냐고 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효성이 많은 이 장관사위는 내 서류를 맡고 있던 해밀톤 지역의 이민국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 직원은 아주 말단 공무원이었다. 그 직원에게 내 서류를 갖고 있냐고 물은 뒤, 속히 처리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가 되었다. 그 직원은 장관에게 ‘당신이 장관이면 장관이지, 이 일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고 당신이 맡고 있는 일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이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가 내 서류를 고의적으로 더 잡아놓고 버틴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이민성에서 영주권을 그 직원으로부터 받을 때, 직접 그가 내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그러한 나라에 살고 있는 자체가 너무도 감사했다. 공의가 살아있고 각자 자기 위치에 대해서 책임을 갖고 행동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감동스러웠고 고마왔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는(구약성경 아모스서5:24)’ 사회의 모습이라고 믿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는다. 지금까지 필자가 한 모든 이야기들은 지구 밖 화성의 이야기도 아니고 저 천상의 천국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살고 있는 이 지구촌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나라가 될 수 없을까? 이러한 것을 바라는 필자가 너무도 나이브한 자인가? 나는 답답하고 참담한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 안에서 숨을 쉬면서 이 질문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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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3-11-28 22:01:22
오늘 성경(삼하19)을 읽다가 바실래 노인을 생각했습니다. 왕의 곤경 중에 도움을 준 것 때문에 왕이 보은으로 권하는 호화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미련없이 사양하고 물러서는 바실래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