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탄생과 너무 닮은 태자 이야기
예수탄생과 너무 닮은 태자 이야기
  • 조한수
  • 승인 2013.11.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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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 칼럼]우경화로 치닫는 이웃 일본을 조심하라

요사이 대한민국의 외교가 일본을 제외하면서 서로의 신경전이 더욱 날카로워지는 느낌이다. 더욱이 일본은 아예 미국을 등에 업고 ‘집단적 자위권’이란 명목을 내세워서 그들의 재무장과 침략의 발판을 차근차근 쌓는 행위를 보면,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은 일본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거나 또는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너무도 어설프게 아는 정도에서 대하는 태도들이다. 이것은 상당히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서도 매우 위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익계열에서 발행된 역사교과서의 일제의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기술되고 있는 내용은 그야말로 나라를 통채로 그들에게 내주겠다는 태도로 보일 뿐이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간 걱정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주변 국가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2차대전의 악질적인 영웅(?)들을 위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기를 쓰면서 가서 참배를 하고 또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럼 이들이 그렇게 고귀하게 여기는 ‘신사(神社)’는 무엇인가?

얼마 전, 필자는 일본의 천황제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그들의 역사적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의 교묘함에 놀아나 결국 뒤통수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그들의 신사(神社)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일본의 정신은 신도주의(神道主義)에서 시작된다. ‘신도’란 일본에서 발생한 전통적인 종교적인 관습들로 이러한 관습들을 뒷받침해 주는 그들의 삶의 태도 및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이다.

신도의 기원은 고대 일본인의 ‘가미’(神)에 대한 신앙과 이에 대한 제사의식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가미’란 신격(神格) 혹은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일본의 고유적인 표현으로 아주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다. 여기엔 자연현상, 경이적인 자연물, 신화적인 인물, 역사적인 위인, 조상들의 영,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를 가리켜서 일본인들은 ‘가미’로 숭배를 하였고 일본에는 이러한 ‘가미’로 섬기는 신의 수가 무려 80만 혹은 8백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가미’라는 말은 고대인들의 공통 신앙형태였던 자연숭배와 조상숭배에서 나온 다신교적인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가미’에 대한 신앙이 고대 일본의 천황권의 강화와 함께 천황의 조상신으로 여겨졌던 ‘천조대신’을 중심으로 한 신화적 인물이나 영웅들을 신사(神社)에 봉제하여 숭배하는 신앙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참고로 그들이 천황을 그토록 신성화하는 역사적 배경을 먼저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천황제의 절대적 신성화는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어우러지게 되었는데 이때가 백제의 성명왕(聖明王) 30년, 즉 일본의 흠명황(欽明皇)13년(약 520년 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신성하다고 여기는 ‘금석물어(今昔物語)’ 즉 ‘금석 이야기’가 흠명황과 관련하여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왜 이들이 천황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신으로 그토록 숭배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금석 이야기’라는 태자의 탄생 이야기가 기독교의 성경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와 너무도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흠명천황 31년 황녀를 비로 삼았다. 32년 봄 정월 15일 밤에 용모가 찬란한 금색의 승려가 나타나 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구세(救世)의 소원이 있다. 바라기는 후(后)의 배를 잠시 빌려 달라, 비가 묻기를,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구세의 보살이다. 내 집은 서방에 있다. 비가 대답하기를, 내 배는 때가 많고 더러운데 어찌 귀인이 머물 수 있겠습니까? 승려는 말하기를, 나는 더러운 것을 가리지 아니한다. 다만 바라기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비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사양하지 아니하겠습니다. 명령대로 복종하겠습니다. 한즉 승려는 기뻐하는 얼굴로 비의 입에 뛰어 들어갔다. 비는 놀라 깨어나니 목에 무엇을 삼킨 것 같은 감이 있어 이상히 여기며 부군인 황자에게 말하였다. 황자는 대답하기를 네가 낳을 아이는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리라 하더니, 과연 임신이 되더니 8개월이 되었을 때에는 아이의 뛰는 소리가 비의 귀에 들리어 황자와 비가 이를 기이하게 여기었다. 민달천황 원년 정월 초하룻날에 비가 궁중에서 산보하다가 마굿간에 이르러서 별안간 산기가 있어 거기서 해산하였다. ......이것을 본 황자와 시관들이 모두 놀라 뜰 밖에 모일 때 문득 붉고 누른 빛이 서방으로부터 와서 전각 안에 두루 비치더니 얼마 있다가 사라졌다. .......민달천황이 머물러 있는 궁궐에 별안간 이상한 소식이 들려 오므로 곧 달려오니 전각 밖에 빛이 비치어 있었다. ..... 비는 이를 받고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었다.”

일본의 서기 ‘유고천황조’에는 성덕태자가 40세 되는 613년에 일어난 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편강산을 거닐다가 굶주려 길가에 쓰러진 거지를 만났다고 한다. 그는 음식과 입을 것을 주었다. 다음날 사람을 보내어 그의 형편을 살피게 했는데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태자는 그를 후히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 뒤에 그곳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무덤이 열리고 시체는 없어졌고 태자의 웃옷만 관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태자는 그를 가리켜 그야말로 참 사람이며 성인이라고 감탄하고 웃옷을 자기가 다시 입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내용으로 위장된 황실 신화가 지금의 천황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도는 고래로 일본의 정치권력 내지는 황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였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신도는 천황을 절대신으로 여기는 천황제 국가의 지도정신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었고 일본의 지배통치의 원리로 채택되었다.

그 후 신도는 일본정부의 보호와 육성하에 급속히 발달하여 국수적 토착종교로서 명실상부한 국교적 지위를 확립해 갔다. 태평양 전쟁 등 각종 침략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국민들의 전의를 고양시키고자 신도사상에 입각한 교육과 신사참배 강요 등을 통하여 천황과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점령지마다 수많은 신사를 건조하고 참배를 강요했다. 이러한 해외 신사의 본질은 일본이 지배하는 땅에 일본의 신이 강림한다고 하는 이른바 국체의 교의에 입각한 종교침략 내지는 식민지 민족의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지금도 신도주의에 의하여 움직이는 일본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의 우방인 미국이 이러한 그들의 종교철학에 의한 통치이념을 알리가 없다. 당장 눈앞에 있는 자신들의 이익에 우선해서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 온 국민들은 이러한 그들의 뿌리깊은 신도사상에 입각한 침략 정신을 잘 간파하여 간교하게 밀고 들어오고자 하는 그들의 숨은 야욕에 대해서 말려들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고 우리 스스로도 이에 맞서는 지혜와 힘 그리고 지식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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