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이중적인 PTSD, 그리고 현대사회에서의 모순
오늘날의 이중적인 PTSD, 그리고 현대사회에서의 모순
  • 세종의소리
  • 승인 2024.04.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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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4학년 이상준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4학년 이상준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4학년 이상준

“와, 나 진짜 PTSD 올 것 같아”. “아, 이거 너무 PTSD야”

서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먼저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위와 같은 문장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본인이 직접 저런류의 말을 언급한 경험이 있는가? 우리가 만약 누군가에게 위와 같은 성격의 질문을 듣거나 직접 물어보았다면, 대다수의 독자들이 필자의 질문의도에 대해 어느정 도는 공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PTSD’라는 단어 자체는 생활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PTSD’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PTSD란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약자로, 번역을 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뜻하는 단어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람이 전쟁이나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의 기억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발생 후에도 지속적인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위와 같은 전문적인 설명과 전해지는 무게감과는 다르게 오늘날의 현대인, 즉 우리에게 있어서 ‘PTSD’라는 단어의 의미와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고 단순한 편이다. 덧붙여 설명해보자면, 그저 우리가 싫어하고 그다지 낙관적으로 기억되지 않았던 경험 내지 상황을 ‘회상’하는 범주만으로도 충분히 여겨진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의 일상 속에서만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 아닌 TV 방송,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일반적인 포털의 스포츠 및 연예 기사 등에서의 가벼운 사용 빈도 역시 결코 적지 않다.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과 편견만이 존재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오늘날의 ‘PTSD’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시각은 현대인들에게 그렇게까지 무겁고 심각하게 해석되지는 않는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익숙하게 사용이 되며 자주 들을 수 있는 것과 별개로 ‘모순’이 존재한다. 실제로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나 편견은 여전히 낙관적이지 못하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PTSD’라는 의미 자체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음에도 말이다.

필자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 라는 단어의 의미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아픔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인간이자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위와 같은 현상들을 마주할 때마다 매우 유감스러운 감정이 생긴다.

우리 모두는 각자 강도만 다를 뿐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들만의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간다. 아픈 기억 및 경험이 있고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픔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 좋은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일반적인 ‘우리’와 다른 범위로 간주한다는 것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필자는 보다 더 올바른 현대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아픈 기억’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특정 한사람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고. 실제로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왔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현대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우리만의 ‘색안경’이 존재한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늘 생각하고 또 고민한다. 보다 더 바람직한 현대사회와 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이제는 우리가 왜 이러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색안경’을 끼며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다 같은 ‘우리’가 아닌 다른 범주로서 정의를 내린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와 원인을 냉정히 되짚어보고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그리고 그들이 어쩌다 그러한 ‘아픔’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공감을 시도해보며 그들의 ‘시야’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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