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수많은 로빈슨 크루소 존재한다
현대사회, 수많은 로빈슨 크루소 존재한다
  • 김충일
  • 승인 2024.04.15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일칼럼]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무인도에서 생존과 도전 이야기
도덕적, 육체적 한계 극복하고 믿음, 물질적인 자급자족 통해 안정 찾는 섬의 지배자

“ 인생이란 정말 얼마나 복잡한 운명의 직물인가!”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중에서)

인공지능(AI)과 고도 디지털 매체의 급격한 도래는 기존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MZ 세대는 지금은 없는 일을 찾아 만들어가며 새로운 스타일로 살아갈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데, 이런 세계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새로운 세계의 지도나 나침반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 이런 두려움들이 <로빈슨 크루소>를 만지게 한다. 무엇보다 로빈슨은 짐짓 새로운 세계 지도를 만들어 보고자 모험과 항해, 도전을 감행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책 제목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문장 형 제목’을 가진 아동 문학 형태의 해양소설인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이 작품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가 60세 가까이 되어 발표한 후 300여 년 동안의 세월 속에서 중판·번역·번안·축약 등으로 거의 700여 종으로 발간되었다. 다양하게 변이 된 스토리-텔링의 형식인 만화·팬터마임·오페라·영화 등으로도 각색되어 알려졌기 때문인지 우리들에겐 읽지 않았더라도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오래된 미래’같은 이야기이다.

"The Life and Strange Surpriz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 Who lived Eight and Twenty Years, all alone in an un-inhabited Island on the Coast of America, near the Mouth of the Great River of Oroonoque; Having been cast on Shore by Shipwreck, wherein all the Men perished but himself. With An Account how he was at last as strangely deliver'd by Pyrates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가 그것이다.

줄여서 『로빈슨 크루소』라 불리워지는 이 작품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재미있게 읽히는 ‘무인도 표류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나, 사실 이상하고도 놀랄 만한 모험과 자기 탐색과 규율, 규칙적 노동을 통한 생존과 도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게다가 청교도의 신앙관과 생활관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으며, 모험을 꿈꾸며, 삶의 의미와 자아탐구에 나선 ‘근대인의 씨앗’이 발아를 기다리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서 인간이 처한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며, 변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로빈슨은 고립된 환경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이 도전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에 대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의 가치와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자기로부터의 혁명적 인간관’의 단초를 제공하는 <근대인>의 첫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근대인 탄생>의 서사공간은 주로 고립된 무인도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펼쳐진다. 이 배경은 로빈슨이 자연과 맞서며,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내면의 힘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섬은 단순한 생존의 장소를 넘어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 자아실현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섬’이라는 장소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상기시키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무인도에서 이십년 넘게 있게 되면서 로빈슨은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이 있는지, 자신이 알고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과연 사실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면서 오히려 삶에 대한 다면체적 관점의 전환을 갖게 된다.

`섬’은 고립과 단절, 외로움의 공간이다. 관계를 잃어버린 사람들, 군중 속에서 고독한 현대인들을 자기만의 섬에 갇혀 사는 존재로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섬’은 참 다양한 의미의 겹을 지닌 낱말이기도 하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섬, 무인도는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 작품 속에 그려진 로빈슨 크루소의 행동, 성격은 한 개인을 넘어서고 있다. 하여 섬은 로빈슨 크루소의 물적인 영토이자, 사유의 영토이며, 시대가 구현된 영토가 된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은 외딴섬에서 28년을 홀로 살았다고 하지만 인간이 그런 시간을 혼자 견딜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이 나온 지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고독은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인 듯싶다. 현대 사회에도 수많은 로빈슨 크루소들이 존재한다. 특히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을 생각하면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는 어쩌면 낭만적인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디포가 설정한 ‘섬’은 사람이 없는 무인도의 개념을 넘어 선다. 로빈슨의 섬은 일체 간섭 없는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주체국가가 된다. 그 영토 속에 기독교 렌즈로 무인도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찍힌다. 무인도에 홀로 있으면서도 외로움은 느끼지만 절망은 하지 않는다. 주체적 근대인으로서 버틸 수 있는 동반자적 힘은 신이다.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든 강박과 갈등을 해결해주는 매개체로 신과 성경이 등장한다. 그의 신심(信心)은 무인도에서의 고독과 고난의 체험을 통해 깊어진다. 하여 스스로의 경험과 힘으로 깊은 신앙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은 “로빈슨이 홀로 살아가며 도덕적,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종교적인 믿음과 물질적인 자급자족을 통해 위안과 안정을 찾고 섬의 지배자가 되는 동시에 스스로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 발전과 성숙을 그려내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로빈슨 크루소는 활력과 재치 넘치는 창의력으로 가득 차, 모험을 즐기는 현대적 자본가의 전형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승리를 거둔 주인공이 몸으로 체득한 근대적 개인주의와 서구 열강의 힘에 의한 심리적 억압의 근원과 도덕적 문제를 극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란 정말 얼마나 복잡한 운명의 직물인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정세가 달라지면 그 달라진 상황에 따라 얼마나 어지럽게 변하는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이 되면 미워하기도 하고, 오늘 원하던 것을 내일이 되면 싫어하기도 하고, 오늘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일이 되면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생각만 해도 몸서리를 치게 될 수도 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많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왔다가는구나’라는 생각의 편린(片鱗)들이 날리는 봄날의 꽃바람 속에서 춤을 춘다.

그리워할수록 지지 않는 얼룩처럼 불편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밤의 정적(靜寂) 같은 이별은 ‘그 섬’에 다시 한 번 가슴 속의 새들을 풀어놓기 위해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가 보다. 한 때 그대를 가두었던 로빈슨 크루소의 섬은 더 멀리 떠나가 있는지도 모른다. 툭툭 끊어지는 수평선 바다를 건너는 새들에게 쉴 곳은 없는가. 긴 여행 끝에 제 무게를 허공에 던져버리고 추락하는 빛 속에서 섬을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로빈슨 크루소씨, 굿-바이!

김충일, 문학박사, 북-칼럼리스트, 호수돈여고 교장, 건양대, 한남대, 우송대 대우 교수 역임, 대전 시민대 인문학관련 특강강사, 중도일보 '춘하추동' 연재, 대전 연극제, 대전지역 베스트 작품상 심사위원 이메일 : mogwoo630@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