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3.1 만세운동, 지금 정립해도 늦었다
세종의 3.1 만세운동, 지금 정립해도 늦었다
  • 이재민
  • 승인 2024.02.29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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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칼럼] 세종시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3.1 만세운동' 이야기
정책적으로 해야 할 일 산적… 잠들어 있는 이야기 발굴, 기록해야

이번 칼럼의 원고는 특별히 삼일절을 맞이한 나름의 ‘번외편’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간 문화도시로서 세종시가 한글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난 칼럼에서부터 연재해 왔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삼일절을 맞이하여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세종시의 3.1운동은 3월 13일 연기군 전의면에서 시작하여 4월 말 정도까지 이어졌다. 사실 세종시 내 전의, 동면, 전동면, 서면, 조치원 등 대부분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나, 오늘 칼럼에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몇 가지 지점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전의면의 3.1운동이다. 전의면의 3.1운동은 신정리에 사는 이수욱(李秀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한 이수욱은 이장희, 추득천 등과 함께 3월 6일 전의면으로 돌아와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수욱을 중심으로 17명의 애국지사는 150장의 태극기를 제작했으며, 3월 13일 전의장터에 방문하는 시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전의면의 만세운동은 3월 13일, 장이 서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날을 선택하였지만, 시기적으로 매우 빨랐다.

세종시 기준 첫 만세운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천안, 청주, 그리고 현재 세종의 소정면과 전동면 등 많은 지역에 큰 울림을 주었다. 현재 전의역 앞에는 만세운동 길이 조성되었으며, 애국지사 17인을 기리는 조형물이 제작되어 있다.

다음은 조치원의 만세운동이다. 조치원의 만세운동은 3월 29일 즈음하여 이루어졌다. 홍일섭(洪日燮), 맹의섭(孟義燮), 김재형(金在衡) 등이 주도했으며, 약 3,5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매우 격렬했다. 조치원 전통시장(현, 세종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만세운동은 조치원이라는 지역성과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하는 충청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횃불을 들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인데, 이는 그만큼 강직하고, 굳건한 의지를 상징한다는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횃불 운동은 충북 청주의 강내, 강외 지역으로도 이어지며, 충청 전역으로 전파되어 독특한 충청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영화 <박열>에서 최희서 배우가 맡았던 역할이며,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로 알려져 있다. 한글 이름은 박문자(朴文子)로서, 1912년 충북 청주군 부용면 부강리(현, 세종시 부강면)에서 살게 되었다.

친할머니의 딸, 즉 고모가 자식이 없어 후미코를 양자로 들임으로써 같이 살게 되었는데, 지역의 유지층으로서 삶을 사는 고모에 비해 후미코의 삶은 행복하지 못하였다.

부강면에서의 생활을 통해 부모로부터 버려짐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의 인색함과 권위주의, 구박과 폭행, 많은 집안일 등 매우 고된 삶을 살았다. 후미코는 1919년까지 부강에서 삶을 살았는데, 아마 7년간의 조선 생활 중 3.1운동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기억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후일 재판에서 후미코는 3.1운동에 관한 깊은 공감과 설렘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를 보면 독립운동을 ‘남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6년 후미코가 자살(물론 이를 둘러싼 의혹이 있다)한 이후 박열의 가족들에게 유골이 인도되었으며, 2003년 박열의사기념공원이 조성되면서 현재 경북 문경에 있는 박열기념관 입구에 영면하고 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됨으로써 그녀의 삶이 헛된 삶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세종시에는 많은 독립운동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정책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산적하지만, 먼저 지역에 잠들어 있는 이 같은 이야기부터 발굴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될 때, 역사에 관한 올바른 교육과 지역성을 반영한 콘텐츠 구현 등 제반 활동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이러한 작업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이재민,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영남대(석사), 국립안동대(박사),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연구교수, 세종시 세종학진흥위원회 위원, 세종시 도서관정보서비스위원회 위원, 충북 무형문화재 위원회 전문위원, 콘텐츠문화학회 편집위원장, 이메일 : jaym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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