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 고려 현종… 공주에 나셨다
천년 전, 고려 현종… 공주에 나셨다
  • 송두범
  • 승인 2024.02.08 20: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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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 지난 2일 고려현종 공주 방문 1013주년 기념식 가져
이야기 하나씩 모여 눈덩이같이 풍성한 공주의 미래 콘텐츠 만들어
고려 현종 공주 방문 1천년 기념식에 함께한 공주향토문화연구회 회원들

최근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고려 8대 임금 현종은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면서 지방제도를 비롯한 미흡한 국가 제도를 완성시키고, 불교문화의 진흥을 다진 인물일 뿐 아니라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세 딸을 왕비로 삼았다는 이야기로 공주에서는 유명하다. 

공주와 현종의 인연은 1011년(현종 2년) 제2차 거란침입시기에 맺어지게 된다. 거란군사들이 수도 개경을 향해 다가오자 나주로 피란하는 도중 1월 7일(올해기준, 양력 2월 16일)과 나주에서 개경으로 상경하는 도중 2월 4일(양력 3월 13일) 등 두 차례에 걸쳐 공주에 머무르게 된다. 공주는 수도 개경과 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일 뿐 아니라, 절도사가 설치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거란족 군사 40만 명이 개경으로 침입해 오자 현종은 강감찬의 제의로 적성-양주-천안-공주를 거쳐 나주를 향했다. 공주로 오는 도중 현종은 지방세력으로 부터 여러 차례 수모를 당했고 왕을 호종하던 신하들마저 도망가 버렸다.

공주 인근 파산역(巴山驛)에 도착하자 공주절도사 김은부가 공주사람들을 데리고 고마나루까지 영접을 나오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한겨울 급한 피란길이라 의복과 식량이 부족하여 심신이 지치고 불안한 상황에서 김은부의 접대는 현종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주에서 1주일을 지내고 거란군이 철병하자 현종은 개경으로 환도하기 위해 공주에 이른 것은 2월 4일이었고, 약6일간 공주에 머물렀다. 공주에 머물면서 현종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지었다.

일찍이 남쪽에 공주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선경(仙境) 영롱함이 길이길이 그치지 않도다.

이렇게 마을 즐거운 곳에서

군신(君臣)과 함께 모여 일천시름 놓아 본다.

고려현종임금일천년공주기념비

현종의 이 시는 가장 오래된 공주관련 시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공주 관아 동천건물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천태종을 개창한 고려승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현종의 손자)은 공주동헌에 걸린 현종의 시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옛날 현종께서 시 한수를 남기시니,

지금에는 영물이 되어 특별히 보호하네

눈을 씻고 바라보며 무엇을 기원할까.

별처럼 빛이 나서 억년의 터전 되기를...

현종은 공주에서의 인연으로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딸 3명을 왕비로 맞았는데, 이는 고려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 딸 원성태후, 둘째 딸 원혜태후, 셋째 딸 원평왕후 등 세 딸과 원성태후의 아들들은 덕종(9대)과 정종(10대), 원혜태후의 아들은 문종(11대)이 되었다.

또한 원혜태후의 딸은 덕종의 비, 원성태후의 딸은 문종의 비가 되었다. 김은부의 딸 셋과 외손녀 2명이 왕비, 외손자 3명이 국왕에 오르면서 무려 4대 임금 51년간 국왕의 장인으로, 국왕의 외조부로서 긴 영화를 누렸다.

공주사람들은 천 년 전 고려현종의 공주방문을 기억하기 위해, 2011년 3월 11일 공주 한옥마을에 ‘고려현종임금일천년공주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공주시와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 2010년부터 학술심포지엄, 나주시 시민답사, 기념비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시민모금 등을 통해 방문객이 많이 찾아오는 공주 한옥마을에 현종기념비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2024년 2월 2일 이 기념비 앞에서 고려현종 공주방문 1013주년 기념식을 공주향토문화연구회와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 주최로 개최하였다. 기념식은 참석자들이 ‘현종아리랑’을 합창하고, 나태주 시인의 ‘천년의 강물을 건너’라는 시를 함께 낭독한 다음, ‘현종이 지은 시’를 낭독하는 순으로 진행하였다.

천년, 천년이라 하셨나이까/오색 빛 구름에 싸여/일곱 빛 가마타고 오신 임/천년 강물을 건너 머나 먼 나라/고려의 현종 임금님/뒤이어 조선의 인조 임금님/어서 오소서 웅진 땅 여기/빛과 기쁨을 주신 두 분 임금님/천년의 강물을 다시 건너/오늘에도 오시고 다시 천년/천년 뒤에 또 웅진 땅에 오소서(나태주 시인의 천년 강물을 넘어).

비록 천년이 지난 역사이지만, 시민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역사도시 공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이 응당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가 모여 눈덩이 같은 공주의 풍성한 미래콘텐츠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송두범, 행정학박사. 전 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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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철 2024-03-01 21:21:38
이복형제들끼리 결혼했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