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님! 이 사진, 대특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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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의소리
  • 승인 2024.02.0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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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홍 칼럼] 대특종, 전주교도소 탈주범 대청호 자살사건

일선 취재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온 전재홍 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가 칼럼 '사진은 말한다'로 '세종의소리' 독자 여러분들을 만난다. 대전일보, 조선일보 사진부를 지켜오던 그는 강경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근대 건축물 사진에도 심취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을 해냈으며 한남대에서 건축공학을 연구,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전주교도소 탈주범들이 대청호반에서 벌인 자살극 장면은 해외에서도 인용할 만큼 대특종으로 기자정신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취재현장에서 촬영한 숨막히는 순간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물 사진을 통해 사연과 의미를 전달하는 글을 쓸 예정이다. /편집자 씀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탈주범 신광재가 쓰러지며 손에서 권총이 풀리고 있다. 사진 아래에 자살한 박봉선의 운동화가 보인다.<br>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탈주범 신광재가 쓰러지며 손에서 권총이 풀리고 있다. 사진 아래에 자살한 박봉선의 운동화가 보인다.

때는 1990년 12월 28일 오전.

전주교도소를 탈옥해 대전에 온 죄수 3명은 용전동 고속터미널에서 검문하던 경찰관의 목에 칼을 대고 위협해 실탄이 든 권총을 빼앗았다. 이들은 대청호로 도주했고 경찰은 이들을 뒤쫓았다.

어민의 배를 타고 대청호 물 건너로 도주한 이들에게 경찰 헬기가 자수 권유방송을 하자 범인들은 신경질적으로 권총을 발사했다. 이에 놀란 헬기가 급선회해 사정권 밖으로 도피했다. 권총이 실제 발사되는 현장은 리얼, 그 자체였다.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경비에 사용되는 작전용 고무보트 두 대가 멀리서 현장으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경찰이 지원을 요청한 것 같았다. 범인들을 진압하기 위한 경찰 10여명이 물가에서 방탄조끼를 챙겨 입고 권총에 탄환을 장전하며 보트를 기다렸다.

범인들과의 거리가 700~800m에 달해 사진을 찍으려면 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진압작전 현장을 취재하려면 당연히 경찰이 타는 작전보트를 타야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트가 접안하는 물가로 내려온 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 자기검열이 작동되었다. 보트에 오르면 경찰이 “권총이 발사되는 현장이 위험하니 배에서 내려요”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리얼한 현장사진을 찍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타야만 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맨 마지막에 자석에 이끌리듯 배에 올랐다. 그들은 조용했다. 우려했던 경찰들의 제지가 없어 진압 현장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탈옥범들은 지체없이 머리와 가슴에 각각 방아쇠를 당겼다. 유일하게 자살 순간을 찍은 사진은 AP, AFP통신과 교토통신을 타고 전 세계 언론사로 전송되며 세계적인 특종을 한 것이다. 이 사진들로 한국기자상 대상, 보도사진전 금상, 서울언론상, 이달의기자상을 받았다

포토저널리즘의 전설, 쓰러지는 순간의 왕당파 병사 사진을 찍은 로버트 카파도 있지만, 나 또한 현장에서 사람이 죽는 순간을 찍어 낸 운 좋은 사진기자임이 분명하다. 아들이 취재한 사자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절을 찾은 내 어머니께서 등을 달아 주며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훗날, 경찰을 출입하는 후배로부터 진압 경찰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권총이 실제 발사되는 현장을 보고도 “보트를 타려는 기자에게 기가 눌려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나의 현장접근 시도는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앉아 있는 박봉선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고 있고 신광재는 경찰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봉선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고 쓰러지자, 권총을 주워 든 신광재가 자신의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자살한 박봉선을 수습하는 진압 경찰들.
대청호변 도로에서 후배가 망원렌즈로 찍은 탈주범 진압현장. 필자가 왼쪽 상단에서 촬영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먼저 자살한 박봉선이 누워 있고 신광재의 자살 순간이 잡혔다.

 

전재홍, 상명대대학원 사진학과 졸업(석사), 한남대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박사), 조선일보 기자, 대전일보 사진부장, 중부대 사진영상과,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겸임교수, 2024 대전국제사진축제 총감독, 이메일 : docu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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