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시 공주, 과연 정체성 유지할까?
교육도시 공주, 과연 정체성 유지할까?
  • 송두범
  • 승인 2024.02.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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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 백제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교육도시로 역할
도약위해 교육도시 정체성 유지 여부에 대한 성찰 필요한 시점
1922년 개교한 충남유일의 인문계 고등보통학교(현, 공주고등학교)

백제왕조가 무령왕 13년(513년)에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일본에 보내 유학을 가르친 기록을 보면 웅진시대 백제교육이 신라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성종 2년(983년)에 공주목(牧)이 설치되었고 이후에도 목으로 존재하여 공주는 고려시대에도 충청도의 주요 행정중심도시로서 기능하여 교육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공주는 1602년 충청감영이 옮겨오면서 충청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었고 공주향교, 충현서원, 창강서원, 명탄서원, 도산서원, 용문서원, 서당 등이 설치·운영되었다.

개화기에는 충남최초의 민족계 사립인 공주사립소학교(1989년, 공립공주보통학교로 개편, 현 중동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선교계 사립학교인 영명학교가 Williams(우리암) 선교사에 의해 설립(1906년, 현 영명중고등학교) 등이 전국적으로도 매우 이른 시기에 설립되었다.

일제의 강제병합 이전부터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이 적용되던 시기(1910.10.1~1922.2) 공주에는 유치원 1개교, 초등학교 6개교, 공주농림학교(1910년 설립, 현,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1개교가 신설되었다.

1922년 2월에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 이후 광복이 될 때까지 공주에는 22개 초등학교와 3개의 중등학교, 1개의 사범학교가 새로 설립되고 기존의 영명학교가 영명실수학교로 변경되었다.

1922년 한국인들을 위한 충남 유일의 인문계 고등보통학교(공주고보, 현 공주고등학교)가 세워졌고, 1933년에는 공주공립농업학교(현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와 1938년에는 초등학교 양성기관인 공주여자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관립대전중학교(1918년, 현 대전고등학교)와 대전공립실과고등여학교(1921년, 현 대전여자중학교)가 공주공립고등학교보다 빨리 개교했지만, 일제의 관립으로 인가된 일본인 자녀를 위한 학교인데 비해, 공주공립고등학교는 인문계고등학교로는 충남・대전 최초로 개설된 한국인을 위한 학교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된다.

1906년 우리암선교사가 설립한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유관순 열사가 졸업한 학교<br>
1906년 우리암선교사가 설립한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유관순 열사가 졸업한 학교

공주도립사범학교 역시 공주군민들의 상급학교 유치운동에 의해 1922년에 설립되어 1929년에 폐교될 때까지 공주에 소재하였던 한국인 초등교사 양성기관이었다.

공주에 위치한 충남도청의 대전이전 대가로 1933년 공주공립농업학교를 설립하였다. 공주공립농업학교는 5년제로 설립 당시 옛 충남도청 강당에서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으나, 1934년 3월 공주도립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 부설 초등학교)에서 개교한 공주공립고등여학교와 교사를 바꾸었다.

1938년 2월에는 장기면 신관리 530번지에 새로운 교사 신축공사에 착공하여 이듬해 5월 5일 완공 이전하였다, 1951년 공주농업고등학교로 승격•개편하였으며, 2006년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로 변경하였다.

1938년 4월에는 경성, 대구, 평양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로 공주여자사범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 역시 도청이전 보상책으로 설립된 초등교원 양성기관이었다. 공주여자사범학교 설립은 교육도시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초등학교 여자교사 양성기관을 공주에 설립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공주여자사범학교는 1950년 국립으로 전환되었고, 1962년 2월 2년제 공주교육대학으로 승격 개편되었으며, 1982년 3월 4년제 교육대학, 1993년 3월 공주교육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8년에는 충남도립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1951년에는 공주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 1963년에는 공주간호고등기술학교(현, 공주대학교 간호보건대학), 1989년 11월에는 웅진전문대학(현 한국영상대학교, 세종시로 변경) 등이 설립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주는 백제,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정치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다른 도시들보다는 일찍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교육도시라는 명성을 누려왔다.

개화기 이후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설치하여 교육중심지로서 충남•대전지역의 교육을 선도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공주사대부설고등학교, 한일고등학교, 충남과학고등학교 등과 같은 소위 명문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교육도시의 명성을 높인 측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초등교원 양성의 요람 공주교육대학교 전경<br>
초등교원 양성의 요람 공주교육대학교 전경

그러나 이와 다른 시각도 있다. 충남감영, 공주지방법원 등으로 행정도시의 지위를 유지하다 충남도청과 공주지방법원의 대전 이전으로 더 이상 행정도시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하자 ‘교육도시 공주’를 공주의 도시정체성, 도시브랜드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후 공주는 해방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교육도시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교육도시의 표방이 공주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교육본래의 의미에서 공주가 교육도시라는 도시정체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송두범, 행정학박사. 전 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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