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가 쉬어간 황새바위, 순교자 안식처 됐다
황새가 쉬어간 황새바위, 순교자 안식처 됐다
  • 송두범
  • 승인 2024.01.13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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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 천주교 순교자 337명 희생된 성지 '황새바위'
"사형 당한 시신, 매장되지 않고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황새바위 순교탑

충남 공주 연문광장 무령대왕 동상에서 무령왕릉으로 가는 왕릉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식회랑을 한 왕릉교를 만난다. 왕릉교를 지나자마자 왼쪽에는 ‘황새바위’라는 큰 표석이 서 있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사에서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황새바위순교성지’이다.

황새바위는 이전에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일부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죄인(邪學罪人)’의 죄목으로 목에 항쇄(項鎖)라는 형구(刑具)를 두르고 끌려나와 처형당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도 한다.

신유박해 당시 황새바위에서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이존창이 1801년 3월에 체포되어 4월 9일 참수형으로 순교한 이래, 1894년 7월 27일 프랑스 죠조(M.Jozeau) 신부와 그의 시종 정보록 바오로가 장깃대 나루(현재 옥룡동 공주대교 아래)에서 청군에 의해 순교할 때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1,000여 명이 넘는 이들이 공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황새바위 아래는 금강과 제민천이 만나는 곳으로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어 맞은편 공산성에 올라서면 처형하는 장면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프랑스의 클로드샤를 달레(Claude-Charles Dallet) 신부가 1874년 집필한 ‘조선교회사’에서는 ‘황새바위에서 공개 처형이 있는 날은 처형장이 내려다보이는 공산성에서 흰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처형장을 바라보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황새바위 형장에서 내려다본 참수된 사람들의 무덤(노르베르트 베버 신부)<br>
황새바위 형장에서 내려다본 참수된 사람들의 무덤(노르베르트 베버 신부)

황새바위, 향옥 등 공주에서 이렇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이유는 당시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충청감영과 함께 죄인의 체포와 신문, 형벌을 담당하던 우진영(右鎭營)이 공주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새바위에서 얼마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황새바위성지 맨 위쪽 부활광장 야외 제대를 둘러싸고 있는 12개의 거석 뒤편으로 공주에서 순교한 분들의 이름만 337명이 적혀있다.

10세의 어린아이부터 70세의 어른에 이르기 까지 어떤 이는 이름이 적혀있으나, 이름이 없어 이 서방, 박 서방, 누구의 친구 등으로도 적혀있다.

1911년 4월 25일 성지순례를 위해 외국인으로는 처음 황새바위 순교성지에 찾아온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신부 일행은 순교자의 무덤이 뒤덮인 황새바위를 돌아보았다. 그는 독일로 돌아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을 통하여 공주의 순교터에 대해 언급한다.

“장마기간에 개울의 물이 불어 강변 모래로 덮일 때까지, 아니면 강물에 휩쓸릴 때까지 사형 당한 자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은 채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순교자들은 온통 무덤으로 덮인 이 언덕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순교자들의 무덤을 범죄자들의 무덤과 구별할 수 없었다”.

순교자 337위의 이름이 새겨진 거석<br>
순교자 337위의 이름이 새겨진 거석

베버 신부는 참수된 사람들의 무덤 전경을 스케치해 수록하여 이해를 도왔다. 이로써 황새바위 참수터에서 순교한 많은 신자들이 온통 무덤으로 덮인 언덕에 대충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황새바위의 아픈 역사와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 공주 중동본당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후원을 받아 1980년 황새바위 인근 성지 조성대지 7,953㎡를 매입했다.

1982년 공주 교동본당으로 성지 관할권이 이관되었으며, 1984년 3월에는 황새바위성지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85년 11월 순교탑과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벽면에 새긴 무덤경당을 완공하였고,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빛돌과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실 등을 조성하였다.

순교자 248위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경당 지하<br>
순교자 248위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경당 지하

2008년에는 교동본당에서도 독립하여 독립성지가 되었고, 해미성지, 성거산성지, 여사울성지, 신리성지 등과 함께 충청남도 기념물 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주 순교의 상징이면서 순교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황새바위에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좋다.

황새가 쉬어갔던 작은 동산, 종교적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순교자들로부터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한다면 황새바위를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고단한 인생길을 걷다 마음이 뒤숭숭해질 때면 황새바위 한 바퀴 돌며 안식을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새바위순교성지<br>
황새바위순교성지

 

송두범, 행정학박사. 전 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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