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 김충일
  • 승인 2024.01.10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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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칼럼] Orhan Pamuk의 '새로운 인생(Yeni Hayat)', 인생을 바꾼 책
공학도가 마주한 한 권의 책, 이상적인 세계 탐구위해 열망하는 순간됐다

튀르키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 로드 소설(road novel) 『새로운 인생』은 “어느 날 한 권의 책(‘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뀌다니.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에 ‘그 책’을 만난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을 느끼는 꿈을 꾼 후에, 일이 풀리지 않거나 위안을 얻고 싶을 때에, 삶을 뒤흔드는 마법 같은 자극과 영감, 그리고 명쾌한 답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 기대는 으레 무너지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 책’의 세계는 발을 들인 이상 멀어질 수 없고, 우주보다 넓고 거대하다고. ‘그 책’은 각자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지만, 각자의 존재를 견디게끔 해주며 적어도 덜 외롭게 만들고 삶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 책’을 만지작거리며, 책의 말과 책의 눈을 따라 새로운 여행을 떠나보자.

『새로운 인생』은 이렇게 읽혀진다. 오스만이라는 한 젊은 공학도는 ‘그 책’을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책에서 알게 된 이상적인 세계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여인 자난이 그 책을 읽고 있는 걸 알았고, 그녀를 만난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집을 떠나 버스로 몇 개월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자난은 오스만을 그녀의 연인인 메흐메트와 만나게 한다. 메흐메트 역시 ‘그 책’을 읽었고 그것에 의해 변화되었다.

그러나 메흐메트는 이미 ‘그 책’의 세계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오스만에게 그것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또한 오스만에게 ‘그 책’을 읽는 모두가 위험할 거라고 경고한다. 그 후 오스만은 메흐메트가 저격당하는 것을 멀리서 목격한다. 그가 그 장소에 달려갔을 때, 메흐메트는 이미 자난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진 후였다...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오르한 파묵의 상상 속 이야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 책‘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새로운 인생‘을 실현할 어떤 실마리를 찾기 위한 몇 년 동안의 노력이 끝나 갈 즈음.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쓸쓸한 자각을 갖게 된다. ‘새로운 인생이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행복’이라고. 그리고 절규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물론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도정은 결코 쉽지 않다. 죽음까지 동반할 수 있는 온갖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그리로 향한 의지와 욕망이 그 어려움을 견디게 한다. 새로운 인생의 결과보다는 그것을 향한 과정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 상상력이 집중된다. “새로운 욕망으로 흔들릴 때, 어느 때보다 많이 내가 존재 한다”거나 “아무리 잘 읽은 저 포도라도 결연한 의지와 단호함이 없으면 그 맛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 누구의 것에 대한 모방도 아닌 진짜 인생의 본질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의식과 욕망”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나의 욕망만 두드러진다면 세상은 “거대음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터이므로, 남을 위한 사랑의 덕목도 배려한다. “먼 곳의 세계를 이 세계로 가져오는 유일한 길은 사랑”이라며, 그것을 위해서 바라보는 시선(視線)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는다. “내게 웃어 줘. 그래서 내가 그 세계의 빛을 한 번이라도 네 얼굴을 볼 수 있게끔.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손에 책가방을 들고 과자를 사기 위해 들어갔던 빵집의 따뜻함을 기억하게 해 줘.”

그렇다면 주인공 오스만의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이었을까? 전염병처럼 퍼지는 책의 위력이 새로운 인생이라는 거창한 주제와 함께 계속 꼬리를 물며 읽는 이의 마음을 빨아들인다. 책이 이어준 한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은 새로운 인생을 찾아 버스 여행을 떠난다. 버스 여행은 사고와 사건의 연속이고 심지어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여행이 된다.

그 여행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운 인생을 찾아 방황하고 떠돌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순간들의 점철이다. 결국 새로운 인생이란 도달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서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이다. 책을 만나고 자난을 사랑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게 된 그것 자체가 주인공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주인공으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찾아 헤매게 한 ‘그 책’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인생이 한 권의 책으로 바뀔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책’ 한 권 때문에 생각의 바늘이 엄청나게 다른 방향으로 이미 전환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서 결국엔 사고를 바꾸고 신념을 바꾸고 인생의 궤도를 이탈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책’ 한 권이 커다란 인생을 바꾸는 힘으로 어마어마하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책은 적어도 우리를 꿈꾸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Orhan Pamuk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갈망하게 된다. 결국,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갈지도 모를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또 남은 생이 점점 줄어들수록 안정적이고 안전한 삶에 안주할 줄로만 알았는데, 자꾸 모험적인 삶에 자석처럼 끌리는 것은 우리가 이제껏 읽고 있는 ‘그 책’들 덕분 아닐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버린 평범한 물건, 한 권의 ‘그 책’은 내 세계를 휘젓고, 내 계절을 다른 색으로 채색해 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영혼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몸이 녹아 없어지고,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이 책이 뿜어내는 빛과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책이 던진 화두를 풀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인생은 전범도 없고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 영혼이 타오르는 대로 나아가서 깨닫고 또 나아갈 따름이다. ‘책 읽기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던 파스칼 키냐르의 말이 생각난다.

책을 읽는 행위란 사람의 뜻이나 마음, 상황을 알아차리는 행위다. 적극적으로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곧 다른 사람으로 거듭 다시 태어나는 타자가 되어버리는 경험이다.

새해다. 새로운 인생을 위한 새로운 항해를 떠날 때다. 기대와 흥분 속에서 새롭게 출발하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과 불안감과 동반하기 마련이다. 새해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 하지만 늘 그렇다.

‘그 책’을 읽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와 게을러지고 안일해지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이었는지 모를 오스만은 ‘새로운 타자’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은 타고난 수수께끼 해결사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희망처럼 새 출발을 하면 어떨까.

새해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려 노력하며 삶의 다양한 방향과 질을 바꿔줄 소원을 빌어본다. 아울러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 책’이 혹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기를 바라면서.

김충일, 문학박사, 북-칼럼리스트, 호수돈여고 교장, 건양대, 한남대, 우송대 대우 교수 역임, 대전 시민대 인문학관련 특강강사, 중도일보 '춘하추동' 연재, 대전 연극제, 대전지역 베스트 작품상 심사위원 이메일 : mogwoo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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