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통해 20개 가운데 고심 끝에 작명한 '세종'...정체성 구현 필요
앞으로의 칼럼에서는 문화도시로서 세종시가 왜 ‘한글’문화도시로 비전을 설정하고, 지향해야 했는지에 관해 말씀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한글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우리의 이름이다.
과거 연기·공주·청원이라 불리던 곳이 이제는 ‘세종’으로 불리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도 독일의 구조주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호명 효과를 예로 들면서 누군가를 부르고 불리는 행위의 의미에 관한 얘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름부르기의 의미에 관해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그는 ‘우리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이름은 파괴될 수 없는 실체, 즉 최후의 존재’라고도 했다. 이처럼 에리히 프롬은 우리의 이름이 사람을 구성하는 단순한 요소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는 본질적 존재조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은 고전문학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우리가 모두 다 알고 있듯이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원통한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제주도의 토속 무가인 〈원천강본풀이〉는 주인공인 오늘이가 원천강으로 부모찾기 여행을 떠나고, 옥황의 신녀가 되어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동네사람들은 주인공 오늘이의 이름을 오늘 만났기 때문에 오늘 낳은 날로 하고, 그 소녀의 이름을 ‘오늘이’라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도 이름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되고 있다. 먼저 김춘수의 〈꽃〉에서는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몸짓’이 ‘꽃’이 되고, 서로의 이름 부르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되며, 나아가서는 ‘눈짓’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나태주는 〈이름 부르기〉라는 시에서 ‘순이야’라는 이름을 부름으로써 따뜻해지고, 튼튼해지며, 순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즉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인격적으로 성숙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이름 부르기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우리의 이름은 ’행복시‘였다. ’행정복합도시‘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이 말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인 ‘happiness’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임시로 쓰기에는 매우 적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쓰기에는 다소 명분이 부족했을 터, 새로운 이름을 위해 국민 공모와 전문가 논의를 진행하였다. 1차 국민 공모를 통해 2,163개의 명칭이 접수되었으며, 전문가 위원회의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이 스무 개의 명칭을 선정하였다.
①금강 ②연두 ③세종 ④한울 ⑤가온 ⑥삼기 ⑦중경 ⑧중도 ⑨장남 ⑩대동 ⑪새서울 ⑫한마루 ⑬동권 ⑭대평 ⑮평화 ⑯대원 ⑰한벌 ⑱금남 ⑲새벌 ⑳한누리
스무 개의 명칭은 이 지역의 자연 자원을 의미하거나, 좋은 의미를 가진 우리말, 부르기 쉽거나 아름다운 소리로 구성된 단어로 구성되었다. 우리 국민의 선택은 ①한울 ②금강 ③세종 순이었으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의미·외래어 번역의 용이성·지시적 명확성 등의 이유로 ‘한울’과 ‘금강’은 선정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이름을 ‘세종’으로 불리는 순간을 맞게 되었다.
국민 공모 가운데 최우수작으로는 당시 청주에 사는 22세 장효정씨의 제안서가 뽑혔다. 장효정씨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비전과 세종대왕이 가진 이미지의 조화로움을 강조하면서 지역의 역사성·지리적 특성·상징성·대중성 등을 기준으로 삼아 세종으로 선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였다.
이제 우리의 이름은 ‘세종’으로 선정되었지만, 몇몇 신문 기사에서는 정부가 졸속 작명을 했느니, 이 이름이 어처구니가 없느니 등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이 또한 도시 지명이 부여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다사다난한 과정의 끝에 이제 우리는 ‘세종’으로 부르고, ‘세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쨌든 세종은 대한민국 최고 위인의 묘호에서 도시 지명이 부여되었으며, 이는 나라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은 물론, 행정중심 복합도시 및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현실적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세종으로 부르면서 ‘세종’이라는 정체성이 구현되기 시작하고, 그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한글’을 활용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문화도시에서 한글을 활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세종’으로 부르고 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재민,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영남대(석사), 국립안동대(박사),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연구교수, 세종시 세종학진흥위원회 위원, 세종시 도서관정보서비스위원회 위원, 충북 무형문화재 위원회 전문위원, 콘텐츠문화학회 편집위원장, 이메일 : jaymi@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