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장에 짙은 저녁노을 펼쳐졌다
부강장에 짙은 저녁노을 펼쳐졌다
  • 윤철원
  • 승인 2023.12.26 08:5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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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태양십이경 돋아보기...제12경 부시낙하(芙市落霞)
금강 8대포구로 명성 날렸던 향시(鄕市)... 돛단배 200여 척 왕래
1960년도 부강 전경

부시낙하는 ‘부강장(芙市)의 저녁노을(落霞)’이라는 뜻이다.

부강면의 연혁은 이러하다. 조선시대에는 문의군 삼도면이었다가,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청주군 부용면으로 관할관청과 명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면서 명칭도 부강면으로 변경되었다.

부강장에 대한 기록은 1899년에 발간된 호서읍지와 충청남도읍지 공주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문헌들의 강역 및 읍시편에 ‘부강리는 공주관아로부터 동북 50리에 있다’, ‘부강장은 공주에서 동쪽 50리에 있으며 1, 6일 장이 열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초 부강장터는 부강면와 금남면 부용리 사이를 흐르는 금강의 중간 하중도(河中島, 섬), 즉 공주목 명탄면 부강리(금남면 부용리)지내에 있었다. 그러다가 홍수로 몇 차례 물줄기가 바뀌면서 딴만들로, 구들기(鳩平, 구평)로, 현재 위치로 이전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부강장과 관련하여 1912년 일제가 조사한 ‘이생포락에 관한 조사 청취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사단이 주민에게 “부강장은 문의군에 붙어 있는데 왜 공주군에서 관할하는가?”라고 물으니 “원래 부강장은 강 가운데 공주목 지내의 섬에서 열렸었는데, 홍수 때문에 섬이 삼도면(부강면)에 붙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공주에서 관할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부강장터와 관할 관청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때 부강장이 열렸던 딴만들은 부강면에 연접해 있었으면서도 2012년 6월 30일까지 연기군 금남면 부용리에 속했다가, 세종시가 출범하던 7월 1일 부강면에 편입되었다.

부강장은 서해의 큰 배가 오갔던 금강 상류의 마지막 포구였다. 금강 8대포구의 하나로 명성을 날렸던 향시(鄕市)로서, 번창기에는 장날마다 강어귀에 100∼200척의 돛단배가 정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시절 ‘부강장에 가면 김으로 불쏘시개를 하고, 명태로 부지깽이를 한다.’, ‘부강장에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으니 이곳에 얼마나 많은 해륙물산이 넘쳐났을지 짐작이 간다.

이렇게 번창하던 부강장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경부철도가 부설되고 부강역이 개설되면서 물류 수송의 주도권을 철도에 빼앗기고부터였다. 그래도 일제 강점기까지는 금강 뱃길이 주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남면 대평리를 휩쓸어간 1946년(병술년) 수해에 부강장도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당했다. 홍수가 운반해온 모래 때문에 부강포구가 기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구들기 장터로 물이 들어와 폐허가 되는 바람에 현 장터로 이전한 것인데, 그 후 부강장의 명성도 점차 빛바랜 전설로 남게 된 것이다.

다행히 1966년 부강장터였던 구들기에 대한프라스틱 공장(현. 한화L&C)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부강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으나, 번창했던 부강장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부강장 위치
부강장 위치

이제 황포돛배와 해륙물산으로 활기가 넘쳤던 부강포구와 장터(구들기) 마을의 어느 여름날, 저녁노을에 비친 풍경을 그려보며 이 시를 감상한다.

몽몽만시습조휘(濛濛晩市濕朝暉, 몽몽한 저녁 장터, 촉촉한 아침같이 휘황하기에 )

의시운연내각비(疑是雲煙乃覺非, 구름인가 연기인가 했더니 아니로구나.)

고목제비평야수(孤鶩齊飛平野樹, 외로운 강오리는 노을따라 날아가 들녘 나무에 깃들고)

유선응불박예의(遊仙應拂薄霓衣, 노닐던 신선은 옅은 무지개로 값을 치르네.)

경경검소진두산(輕輕黔沼津頭散, 빠르게 흐르던 물은 검소나루에서 흩어지고)

점점황우령상귀(點點黃牛嶺上歸, 점점이 흩어진 구름은 황우산으로 돌아가누나.)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畫工模此景, 만약 화공에게 이 풍경 그리라 하면)

명사기내로망기(明沙其奈鷺忘機, 백사장의 기심 잊은 해오라기는 어떻게 그릴까?)

1, 2절 몽몽(濛濛)은 대기가 촉촉한 상태를 말한다. 안개 낀 듯 희뿌옇게 보이는 석양의 부강장터 풍경이 연상된다. 의시(疑是)는 ‘마치∼같다.’라고 해석한다.

3절 고목제비(孤鶩齊飛)는 명문장으로 유명한 등왕각서(騰王閣序)의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노을 따라 외로운 강 오리가 나란히 나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4절 박예(薄霓)는 희미한 무지개를 뜻한다. 부강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면 비 내리는 계절이었을 것이다. 비 갠 하늘에 태양을 등져야 무지개를 볼 수 있으니, 작가가 시상을 떠올린 장소는 아마도 강 건너 빙이(금남면 부용리)나 용댕이 나루였을 것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시원한 소낙비가 한줄금 지나간 뒤 옅은 무지개가 부강 하늘에 걸린 모습이 연상된다.

충청남도 읍지에 실린 부강시

5절 6절, 검소진(黔沼津)은 오래전에 유성 구죽동의 녹골나루와 이어지던 뱃턱이다.

검소(검시 또는 검담)는 금호1리를 휘감아 돌던 강물이 만든 물웅덩이로서 수심이 깊고 검푸르다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유적인 검담서원(黔潭書院)도 검소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황우령(黃牛嶺)은 연동면 명학리 황우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금강 상류에서 빠르게 흘러오던 강물이 검소나루 근처의 깊은 호소(湖沼)에서 멈추듯 천천히 흐르는 모습과 저녁노을에 조각구름이 황우산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그렸다. 강과 산, 물과 구름, 빠름과 느림을 대조하는 기법으로 시흥을 한층 돋우어 주고 있다.

7, 8절 약사(若使)는 ‘만약∼하게 한다면’이라고 해석한다.

속세의 벼슬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가의 심경을 「기심 잊은 해오라기(로망기, 鷺忘機)」로 표현한 듯하다. 망기(忘機)는 구로망기(鷗鷺忘機, 갈매기와 해오라기와 놀며 세상일을 잊음)라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옛날에 갈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침마다 바닷가에서 100여 마리의 갈매기와 함께 놀곤 하였다. 그 아버지가 말하기를 “네가 갈매기와 더불어 논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 갈매기를 잡아 오너라. 나도 그렇게 놀고 싶구나”라고 했다. 다음날 그 사람이 바닷가로 나갔는데 그동안 함께 춤추던 갈매기들이 내려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계교와 사심이 없으면 새도 의심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도 멀리한다.’라는 우화로, 인간에게 사악한 마음이 없을 때만이 자연과 벗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저녁노을에 물드는 부강장의 한적한 풍경, 금강과 황우산의 평화로운 모습, 그리고 부귀영화에 뜻이 없는 작가의 심경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할만하다.

부시낙하를 끝으로 화잠소창에 수록된 한시 『태양십이경』에 대한 해설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화잠 선생의 해박하고 수준 높은 학문적 경지에 비추어 볼 때 필자의 역량으로 작가의 시작(詩作) 의도를 헤아려 보겠노라 달려든 것이 무모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태양십이경을 소개한 것은 빼어난 12수의 시에 녹아 있는 금강 주변의 지리, 역사와 이야기를 곁들임으로써 수준 높은 작품과 세종시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충정 때문이었다. 혹여 해설에 오류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일러주시기 바라마지 않는다.

1900년대 부강의 황포돛대

끝으로 매회 연재될 때마다 자료제공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반곡 역사문화보존회’ 김동윤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훌륭한 지면을 할애하여 게재해 주신 ‘세종의 소리’ 김중규 대표님께도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송구영신의 계절에 독자 여러분 가정마다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드린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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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2024-01-06 07:51:45
태양십이경시비의 마지막 시구 해설을 잘 읽었습니다.
옛 반곡리 주민은 부강장을 이용했습니다.
이 시비를 건립하는 일을 하면서 '부시는 금남면 부용리에 있었다'는 역사를 새롭게 알았습니다.

태양십이경 시비를 건립하고, 그 자상한 해설을 통해서 조선 시대의 반곡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훌륭하신 노고는 후대에 영원히 빛나 기록이 남을 것입니다.

2024년 새해에 건강하시고 만사 형통의 길운을 비옵니다.
고양시에서 김동윤 올림

안완근 2023-12-26 11:25:25
부강에대해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김형식 2023-12-26 10:21:25
세종시 부강면 포구에 큰배가 들어올 정도로 금강 수량이 풍부했군요.
부강면 역사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원묵 2023-12-26 09:32:25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