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평화', '조용한 성탄 축복'이 필요하다
'조용한 평화', '조용한 성탄 축복'이 필요하다
  • 조한수
  • 승인 2023.12.25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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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조한수 목사가 성탄절에 보내온 메세지, 성탄절의미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지금 성탄절 모습 정상은 절대 아니다"

다사다난이 부족할만큼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일이 많았던 계묘년도 저물고 있다. 성탄절을 맞아 세종시 고운동에서 세종개혁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조한수 목사가 성탄의 의미와 지금의 모습, 그리고 사회가 예수 탄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등에 대해 기고를 보내왔다. '세종의소리' 독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제정 역사와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진정한 뜻을 조 목사의  기고를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씀

조한수 목사

어느덧 연말연시를 맞게 되면서 세월이 쏜살같다는 관념적인 표현을 의식 없이 자연스레 내뱉게 된다. 매년 12월 말이 되면 전 지구촌의 세계인들은 자신의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성탄절의 즐거움을 나누면서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면에서 성탄절은 어느새 기독교의 축제를 넘어서 모든 이들의 축제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산타선물을 기다릴 것이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사랑하는 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하고 상인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자 온갖 상술로 유혹한다.

그럼 이런 성탄절은 언제 시작이 되었고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필자는 고민하면서 지면을 통해 몇 글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성탄절이 기독교만의 축제가 아닌 전 세계의 축제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우리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서기력이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을 기점으로 삼아 세계 역사의 시간으로 정해졌기에 지구촌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예수님이라는 역사적 우산을 함께 쓰고 있는 셈이다.

역사의 시간을 역사가들은 예수께서 탄생했다고 추정한 해를 기원으로 예수탄생 전을 영어로 B.C (before Christ)라고 하고 예수 탄생 이후의 시간을 라틴어로 A.D (Anno Domini Nosrti Iesu Christi)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라고 부르며 사용하고 있다. 간혹 사람들은 A.D를 After Death(of Christ)로 오해하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오해이다.

물론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천지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믿는 기원전 3761년을 시작점으로 삼기에 지금을 5783년으로 계산하며 살 것이다. 또한 불교를 신앙하는 불자들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지금을 2567년의 해로 살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해를 원년으로 삼아 올해를 1445년으로 삼는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단군왕검이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삼아 고려시대부터 1962년까지 단기력을 사용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들은 특정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종교력으로 지구촌 모든 이들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모든 세계인들이 서기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BC46년에 율리우스 시저가 이집트식 달력을 사용했던 ‘율리우스역’이 사용된 지 한참 뒤인 AD 1582년 당시 로마의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서 지금의 달력이 만들어 사용되게 되었다.

이때 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로 달력에 기입하게 되었다.

그럼 예수께서는 과연 12월 25일에 탄생하셨을까? 성경에는 날짜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 다만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 왔다는 시기와 목동들이 밤에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기록과 당시 왕이었던 헤롯이 치세한 시기를 따져봄으로 그 시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천문학자들은 기원 전 7년경에 목성과 토성의 공전 주기 차이로 가장 가까워지는 ‘대접근’이 있었다고 본다. 기원 전 7년에 이 현상이 (5월, 9월, 12월 초)등 세 번의 이성성합을 이루면서 대단히 밝은 빛을 비추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천문학에서는 당시 목성과 토성의 만남을 세기적으로 중요한 천문적, 종교적, 정치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목성은 위대한 왕이 나타남을 상징하는 별이었고, 토성은 팔레스타인에 즉 이스라엘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아는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연구하다가 두 별이 만나는 ‘대접근’을 위대한 왕이 팔레스타인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로 믿고 예루살렘까지의 그 먼 여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리는 동방박사들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리는 동방박사들

그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온 시기가 아마도 5월이나 9월경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당시 베들레헴의 목동들이 유월절에 사용될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밤낮으로 들판에서 지내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추측해 보는 것이다. 또한 헤롯대왕이 죽은 시기가 기원전 4년이었으니까 얼추 이 사료가 맞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2023년이 아닌 2030년의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고대에는 사람이 태어난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행적이 종결되는 죽음이 어떻게 어떤 일을 하고 죽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였기에 생일보다는 사망일을 중요히 여겼다.

거기다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고백에 의해서 성경에는 탄생의 기사만 있지 날짜는 기록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시기를 추측만 해 보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탄생시기가 겨울이 아닌 봄철이나 가을이었을 텐데 그럼 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내고 있는 것인가?

기독교가 국가의 종교로 공인되기 전인 로마 전역에서는 매년 12월에 토성의 축제를 벌였고 태양신의 축제 역시 12월 25일 경에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교적인 풍습을 행하고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된 로마황실과 교회는 개종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축제를 벌일 수 있도록 축제의 의미를 태양신의 축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매년 12월 25일 성탄절로 지키게 된 기원이다. 그러나 이방적 풍습이 여전했던 사람들은 종교를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할지라도 축제에 즐기던 난잡한 행위를 버리지를 못했다. 심지어 중세에는 성직자들도 이날에는 자신들의 신분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온갖 음란한 행위를 하며 그동안 참아 왔던 욕정을 발산했던 것이다.

그러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종교개혁자들은 난잡한 크리스마스 축제를 경건한 예배로 개혁을 했거나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국회에서 성탄절 축제를 아예 폐지하는 법을 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은 성탄의 역사이다. 그러나 지금의 성탄절의 모습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상업주의에 의해서 예수께서 오신 참된 의미보다는 물질적으로 타락된 현대의 성탄절 문화를 보게 된다. 그러나 성탄의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께서 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계시해준 메시지가 있다.

이응다리에 만들어진 화려한 성탄 트리
이응다리에 만들어진 화려한 성탄 트리

그것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복음이다. 즉 하늘의 은총을 받은 이 땅에는 평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에게 평화가 있는가? 세대 간의 갈등,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부조화로 인한 갈등, 좌우이념 간의 갈등,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 등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여러 갈등으로 인한 충돌과 함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치르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그리고 여기 한반도 우리는 전쟁하는 지구촌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전쟁은 여기저기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조용한 평화가 필요하다. 서로가 미워하는 갈등이 아닌 서로를 품어주는 평화가 절실하다. 조용한 성탄의 축복이 정말 필요하다. 이 간절함이 속히 우리에게 이루어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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