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강에 바람부니 물거품이 일어나네"
"넓은 강에 바람부니 물거품이 일어나네"
  • 세종의소리
  • 승인 2023.12.0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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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태양십이경 돋아보기...제11경 합강풍류(合江淸風)
경상, 전라, 충청 등 3도 물 합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삼기강'(三岐江)
경상, 전라,충청 등 3도의 물이 합류하는 합강의 모습

합강에 부는 맑은 바람! 듣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다.

합강을 소개한 첫 역사 문헌은 조선시대 명문장의 보고라고 불리는 동문선인데, 그 중에서 세종조에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남수문이 지은 독락정기(獨樂亭記)라고 할 수 있다.

남수문은 이 기문에서 그의 부친이 독락정을 건립한 임목(林穆, 임난수의 차남, 양양도호부사)과 절친이었다고 소개한다. 때문에 남수문은 임목을 늘 아버지처럼 섬겼는데 언젠가 임목이 남수문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대대로 공주 금강 상류에서 살았는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강물이 이곳에서 합류하는 까닭에 그 땅을 삼기(三岐)라고 한다’고 술회하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다면 합강이야 말로 경상, 전라, 충청 등 3도의 물이 합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삼기강(三岐江)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합강부터 독락정까지 흐르는 금강을 일명 삼기강이라 했으며, 전월산 자락 ‘양화리’마을을 삼기리 또는 세거리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또 1934년에 발간된 연기지에는 동진강(미호강) 하류를 오강(吳江), 금강의 부강하류를 초강(楚江)이라고 부른다며 오강과 초강이 만나는 지점을 합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유래를 가지고 있는 합강은 주변 풍광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때문에 16세기 초 합강 동쪽 강안에 인천채씨 문중에서 합강정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금강 8정의 하나로 알려진 합강정에는 송준길 등 당대의 유명한 문객이 들렀으며 조지겸 등이 시를 읊었다는 기록이 있다.

합강정은 1800년 후반 무너졌다고 하는데 인천 채씨 문중에서 여러 번 복원을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기상 이변으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건물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려고 하면 큰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서 기왓장이 날아가고 건물이 휩쓸려 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곳에 도깨비가 사는데 이 아름다운 터전을 사람들에게 빼앗길까 봐 정자를 짓지 못하도록 조화를 부린 것’이라며 결국 복원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다가 2011년에 복원되었으니 이제는 도깨비들도 인간과 상생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합강정, 1800년대에 무너진 이 정자는 그 후학들이 복원하려 했으나 귀신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소문으로 유명해졌다. 

합강소개에 합호서원이 빠질 수 없다. 이 건축물은 숙종조에 순흥안씨 문중에서 안향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처음 짓기 시작하였다. 이후 순조 조에 서원으로 발전하여 인근 서생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나 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합호사로 개칭하고 안향 선생의 제향만 지내 왔다.

그러다가 1949년(기축년) 9월에 지금의 형태로 복원하였고 현재는 세종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마을 북쪽의 출동산 내맥이 뻗어와 응결된 터에 자리잡은 합호서원은 좌우로 황우산과 노적산이 감싸고 있으며 전방에는 금강과 동진강이 합수하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풍수상으로 손색이 없다고 하는데 행정구역상 합강동(5-1생활권)에 속해 있다.

맑은 가을 날 합강에 떠있는 조각배에서 한적하게 낚시하는 노인의 모습을 연상하며 시를 감상해 본다.

분기장강쌍미합(分圻長江雙尾合, 갈라진 데부터 장강이라, 두 꼬리 합치는 곳)

유풍호탕기포화(有風浩蕩起泡花, 넓은 강에 바람부니 물거품이 일어나네.)

성광만재시선도(聲光滿載詩仙棹, 바람 소리, 햇빛 가득한 배에 노젓는 저 시선은)

기미편다조수가(氣味偏多釣叟家, 취미도 유별난 늙은 낚시꾼이라네.)

곤곤양양류부진(滾滾洋洋流不盡, 넘실넘실 큰 물결 끊임없이 흐르고)

소소슬슬동개사(蕭蕭瑟瑟動皆賖, 소슬 바람불어 오매 이 모든 것 빌리려네.)

정주우치배회월(汀洲又値徘徊月, 백사장도 값 쳐주며 달 아래 배회하니)

수득쌍청송세화(誰得雙淸送歲華, 뉘시오? 쌍청을 얻으며 세월을 보내는 이!)

순흥 안씨 문중에서 안향선생을 모시는 합호서원

1, 2절 분기(分圻)는 동진강이 끝나는 지점을 일컫는 것이고, 쌍미합(雙尾合)은 제비꼬리처럼 두 강물이 만나는 합강을 일컫는 것이다. 호탕(浩蕩)은 ‘물이 한없이 넓게 흐르는 모양’을 의미한다. 금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넓은 곳에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이 연상된다.

3, 4절 바람소리와 햇빛만 가득한 배, 즉 빈 배에 올라타 노젓는 이를 시선이라고 추켜 세우며, 그 노인은 유별나게 낚시를 좋아하는 취미를 가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작가의 삶을 빗댄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편다(偏多)는 ‘특정한 것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로, 조수가(釣叟家)는 ‘나이든 낚시꾼’으로 의역하였다.

5, 6절 시인은 넘실넘실 흐르는 강물과 청량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퍽이나 좋았던 모양이다. 값없이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임에도 굳이 돈주고 빌리겠다고 하였으니 자연의 가치를 인정한 극찬이라 할만하다. 사(賖)는 ‘세를 낸다’는 의미가 있다.

7절 정주(汀洲)는 물가의 모래톱(백사장)이며 치(値)는 값을 뜻하니, 물가의 백사장도 값을 치르겠다고 한다.

8절 쌍청(雙淸)의 원전은 두보 시 병적(屛跡) 2수 중 마지막 구절 ‘장려종백수 심적희쌍청(杖藜從白首 心迹喜雙淸, 지팡이 짚고 흰머리 되어가니, 마음과 자취 둘 다 맑아 기쁘구려.)’이다. ‘마음과 행실에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상태’를 쌍청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쌍청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광풍(光風,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온 뒤 부는 상쾌한 바람)과 제월(霽月, 비 갠 뒤 비치는 밝은 달)이라고 한다.

시제가 합강청풍인 점에 방점을 두면 쌍청의 의미를 ‘광풍과 제월’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을 존중하는 작가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마음과 행실에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시가 전반적으로 청량하고 밝으며 상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후반부의 자연존중 의도가 돋보이며, 마지막 구절에서 쌍청을 강조한 대목은 욕심없는 작가의 정신적 내면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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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2023-12-17 17:32:15
노고에 감사합니다.
합강의 지리적 역사적 이야기를 잘 알았습니다.
반곡리 고향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1950년대 1960년대에 합강 옆 황우산을 넘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김형식 2023-12-10 10:37:43
윤철원 작가님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