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동체가 교육 활동 보호 주체되고 조화 속에 특별해지는 교육 가능
“너는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거니?”
2023년 뜨거운 여름 전국각지에서 광화문으로 모인 교사들의 검은 물결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알려졌다. 타 시도에 있던 교사 친구들도,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도 페이스북 메신저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잘 있는지 걱정이 오고 갔다.
얼마 전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교육활동보호센터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교육활동보호센터 교권 담당 장학사 유현경입니다.”
말이 없었다. 아니, 수화기 너머에 있는 누군가는 조용히 흐느낀 채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소리만으로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나는 나대로 울음소리를 가둔 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필요한 내용을 설명해드렸다. 이 시간에 이곳에 전화해야만 했던 힘겨운 상황이 있었고, 그 절박함을 누구라도 듣고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니 다행한 일이었다.
매일 교육활동보호센터에는 다양한 전화가 걸려 온다. 학교에서 일어난 교육활동 침해 피해 교사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려는 상담을 받기 위해서, 교권 담당 교사들이 행정 절차 컨설팅과 법률 자문을 얻기 위해서, 또는 교원 마음 회복 힐링 프로그램을 안내받고자 문의 전화를 한다.
가끔 이곳은 영화 ‘다음 소희’에 나오는 콜센터처럼 모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다. 교육활동 침해를 받아 전화한 선생님들은 대부분 상처받고 지쳐 있거나, 보호해 주지 못한 현실에 화가 나 있다.
누군가 전지적 시점으로 사무실에 드론을 띄워 한 바퀴 휘~ 돌아가는 장면을 찍는다면 이곳이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맞힐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2023년 3월부터 교육청 업무를 시작하였다. 교직 경력으로 치자면 20년이 훌쩍 넘은 경력자지만 교육청 업무는 이제 첫걸음마를 뗀 초짜다. 3월, 열정은 넘쳤지만, 확신은 부족했고, 실수를 줄여가며 일하느라 늘 초조했으며, 효율적이지 못한 업무 운영 탓인지 매일 밥 먹듯 초과근무를 해도 아니 점심을 걸러 가며 일을 해도 일이 쌓여갔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마음은 조금씩 보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학교 변호사가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민원 응대가 가능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든든하더라. 정성껏 공감해주어 위로되었다. 상담받고 나니 마음이 회복되었다”라는 등 이야기를 들으면 소진된 내 마음의 에너지도 채워졌다.
교육활동보호센터로 오는 전화들에 정성껏 응대하다 보면 일은 늘 남아서 해야 했지만, 내가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했다.
그런데, 7월에 안타까운 그 일이 일어났다.
국회 의원 요구자료들이 쏟아졌다. 국민 신문고, 정보공개 청구까지 어마어마한 자료요구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학교의 현실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연일 기사가 터졌고, 다양한 채널에서 같은 주제를 가진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악성 민원 녹취록 제보가 이어지고 공개되었다.
정쟁의 소스로 이용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빠르게 법률이 개정되고 있었다. 모두 함께 학교 교육활동을 보호하겠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 교육청에서도 법률 지원을 즉각적으로 해보고자 학교 변호사를 연초부터 준비하여 바로 시행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의 마음 건강을 책임지겠다며 야간상담까지 운영하겠다는 전문상담사님들의 노력이 더해졌으며,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하면 언제든 행정, 법률, 상담 등 입체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비하고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이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이 제대로 투입되어야 한다. 좋은 제도가 있었다면 그것을 보완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조금 느려도 되었다.
우린 너무 급하다. 우린 너무 보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렇게 빠르게 한마음이 되어 법률이 개정될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여야 이견 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개정된 법이 학교 안에서 실질적으로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세심한 별도의 지원도 필요하다.
세종시교육청은 다른 시도와 다른 단층 구조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다. 장학사로서 교육부 정책을 현장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하고 만들어진 법률 개정, 제도개선을 통한 현장 지원에 최선을 다해보지만, 실무자로서 좀 더 세심하고 실제적인 시도상황과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해진 정책이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지적하는 일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의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법이 바뀌었으니 이제 다 괜찮아질까? 더 이상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법으로 해결되지 않던 수많은 일, 이제 다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시점 우리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교육활동을 보호해야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왜 교육활동이 보호되어야 하는지, 교육활동이 보호되면 학교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서 학교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잠시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교육공동체 모두는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주체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원, 시민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아나려면 서로를 존중하며 돌보는 사회적인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많지도 않은 우리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기에, 그런 아이들을 더욱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발을 맞추어 가야 한다. 가정에서도 소중한 내 자녀가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려면 내 아이에게만 맞춰져 있던 애정의 눈길을 우리 아이들과 주변 사람으로 확장 시키는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
타자를 따뜻하고 귀하게 바라봄으로써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교육, 인간에 대한 품위를 생각하는 모두가 특별해지는 교육은 학교와 가정, 사회가 함께하는 바탕 위에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