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밍웨이, '내가 없는 사회'에 경종 울렸다
훼밍웨이, '내가 없는 사회'에 경종 울렸다
  • 김충일
  • 승인 2023.10.14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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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칼럼] 노인과 바다, "삶을 살아내는 길’이 나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길"
인간은 망망대해에 조각배 홀로타고가는 존재..."별보다는 현실 생업이 중요"

“그래도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최고의 이야기로 꼽히는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1952). 주인공 산티아고(Santiago) 노인은 매일 바다로 나가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마을에선 힐난의 대상인 그는 85일째 되는 날 아침 혼자서 큰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간다. 산티아고는 2박 3일 동안 목숨 건 싸움 끝에 대형 청새치(marlin)를 잡는다. 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상어 떼를 만나, 최선을 다했으나 긴 싸움 끝에 뼈만 남은 청새치를 배 옆에 묶고 항구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자(獅子) 꿈을 꾸며 잠든다는 얘기로 소설은 끝난다.

이 스토리만 보면 언뜻 일상의 삶 속에서 실패한 늙은이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고, 산꼭대기를 향해 커다란 바윗덩이를 쉴 새 없이 밀어 올리며 고역(苦役)을 반복하는 신화 속 시지푸스(Sisyphus)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혹 행복과 기쁨은 잠시 허락된 것일 뿐, 또 다시 무언가에 쫓기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 그 끝없는 반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순응을 의미할까, 아니면 저항을 의미할까를 묻는 사유의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왜 이런 소설을 매일 만지작거리며 읽지? 물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망망대해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저어간다. 끝없는 바다에 던져진 존재다. 이 바다는 인간을 덮치는 해일이 되기도 하지만, 어머니처럼 푸근하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기고 하고 때로는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기도 하다. 혹 체념으로 인해 희망을 잃은 상태의 무료함을 품어 안거나, 아니면 새로운 의지를 구축해 다시 한번 노력의 고취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풍랑이 치거나 때혼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바다 위에 던져진 소설 속 주인공 산티아고.

그는 여전히 출렁이는 바다의 갖가지 생명체들과 함께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응시(凝視)의 힘’을 키운다. 그래도 괜찮다며 ‘바다 색깔처럼 푸르고 원기왕성하고 패배를 모르는 눈(undefeated eyes)’으로 그 대단한 놈(청새치)과 수 일간 밤과 낮을 맞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쟁투를 벌인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라 불리 운 살라오(Salao)로 변신한다. 그러나 온 종일 쟁투의 시간을 지난 저녁의 강한 햇빛에 고통스러워진 두 눈 부릅뜨며 다시 아침 해를 맞이한다. 급기야 셔츠는 수없이 꿰매 닻처럼 헤져 지고, 머리는 많이 하얗게 변하고, 눈을 감은 얼굴에 생기라곤 없지만 불패(不敗)의 산티아고로 부활한다.

그는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면서 정확하게 운(lucky)이 다가올 때 준비돼 있도록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임을 다짐하고, 청새치를 ‘친구’라 부르며 바다와 하나가 되며 그 속에서 진정성 있는 나를 통해 변모하는 나를 찾는다. 그는 ’별을 잡는 것(kill the stars)’같은, 화려하지만 분수 넘치는 일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자기 생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한다. ‘너는 물고기가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 모두 물고기를 사랑했어. 그를 사랑했다면 잡은 건 죄가 아니야’라며 자신의 일에 대한 경외감과 몰입, 자존감으로 충만한 산티아고.

그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 바다에 가서 깊이 낚싯줄을 드리운다. 예상을 훌쩍 넘어선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대단한 놈’과의 무모한 사흘간의 쟁투는 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노인은 상대인 청새치를 죽이려 한다. 생계는 부차적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라는 게 그의 결심이다. 즉, 그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 생사를 건 이 투쟁에서 비켜서거나 패배를 자인하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며 매번 새롭게 자기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마침내 수면으로까지 올라온 거대한 청새치를 작살로 꽂아 ‘내 형제 물고기’를 죽인 후, 나머지 뒤치다꺼리를 위해 ‘노예의 일(slave work)’을 해야 한다. 이어지는 그 일은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와의 싸움이 그것이다. 이 행위는 자기의 소유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다. 즉 상어 떼와의 싸움을 통해 산티아고는 자신의 어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우리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사는 노예일 수는 없다는 걸 노인은 온몸의 고투를 통해 보여준다. 고기 잡는 일을 자기의 존재 이유이자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자존감을 인정받는 공간이 된다.

사력을 다한 상어 떼와의 싸움에서 결국 뼈만 남은 앙상한 청새치와 항구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오랜만에 평화롭게 잠들어 비로소 단꿈을 꾸기 시작한다. 초원을 달리는 거대한 사자의 꿈. 그것은 세상의 온갖 멸시 속에서도 간직해 온 ‘진정한 자기 이미지(self image)’인 것이다. 겉보기엔 초라한 노인이지만 그 진정한 내면의 초상은 자존감을 여전히 지닌 채 초월을 달리는 거대한 사자가 된다. 산티아고는 만선의 꿈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지만, 영혼의 젊음을 잃지 않고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내 마음속의 사자 한 마리’를 ‘지금, 여기’에서 키우고 있는 내면의 진정한 성공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다(the Sea)는 노인(The Old Man)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도 한다. ‘하기야 저 고기도 내 친구이긴 하지. 하지만 나는 저 놈을 죽여야 해. 하지만 별들은 죽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지 뭐야.’ 바닷가에서 살기 위해서 진정한 형제들을 죽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죽어가는 고기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밤바다에서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는 별도 친구지만 어부이기 때문에 죽여야 하는 고기가 진정한 친구인 것이다. 3일 밤낮을 거대한 청새치와 씨름하며 노인은 날치와 작은 새와 태양과 별을 “형제”나 “친구”로 여긴다. 이와 같은 행동은 우리를 살아가면서 생명(자연)은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며 정서적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모두 친구라는 깨달음 속으로 이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걷는 길에 자기 자신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 자기 자신을 알려면 몇 가지 질문이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을 매우 절박하고 적극적으로 제기해 나가면서 자기만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찾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 좋게 보이는 것, 부모님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좇으려고 한다. 내가 없다. 물론 이것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일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지는 단계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산티아고를 만나는 ‘지혜의 알곡’이다.

, 아니 왜 산티아고는 상처뿐인 상어와 싸우고도 자기만족에 어린아이 같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을까? 그것은 “그래도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destroyed)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아(undefeated).”라며 그는 지금 걷고 있는 어부라는 일이 온전히 자신의 길이며 자기 자신임을 깨달은 성(Saint) 야고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이라는 바다에 살면서 큰 고기를 낚아 보려고 ‘열심히’애를 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길’이 나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온몸과 맘’을 다하게 된다. 그게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않는 삶 일게다.

김충일, 문학박사, 북-칼럼리스트, 호수돈여고 교장, 건양대, 한남대, 우송대 대우 교수 역임, 대전 시민대 인문학관련 특강강사, 중도일보 '춘하추동' 연재, 대전 연극제, 대전지역 베스트 작품상 심사위원 이메일 : mogwoo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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