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항진
상수리나무 항진
  • 강신갑
  • 승인 2023.10.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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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갑의 시로 읽는 세종] 찍는 도끼나 베는 톱날은...

상수리나무 항진

 

두들긴다

찍는 도끼나 베는 톱날은 아니어도

부딪는 해머는 여지없이 줄기를 벗긴다

 

휘두른다

함마질에 잎은 울부짖으며 정신을 잃고

바르르 떠는 가지는 상수리를 내놓는다

 

밤이 오면서 산비둘기가 둥지에 들고

서글프게 담긴 울음을 구슬피 쏟는다

별은 달빛 멀리 목이 멘다

 

강풍에도 호우에도 폭염에도 대설에도

아무 말 없이 좋이 참고 견뎠다

때가 되면 세상에 던져질 견실이기에

 

산비둘기도 더 이상 곡하지 못하고

몸서리치던 주위 동류도 숨죽인다

달빛이 어루만지고 별빛이 무위한다

 

질겁한 뿌리는 몸통으로 수액을 올린다

묵이랴 술통이랴 가구가 전부랴

이대로 숯이 된들 난타는 한량없을 터

 

움푹 파인 심중을 쓸며 결기를 다진다

광란의 쇳덩이가 멸하는 순간까지

뿜어 분출해야겠다고 의연히 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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