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츠비가 도대체 왜 '위대한'걸까", 희망, 경이로움, 능력 때문(?)
"게츠비가 도대체 왜 '위대한'걸까", 희망, 경이로움, 능력 때문(?)
  • 세종의소리
  • 승인 2023.09.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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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칼럼] 스콧 피트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굴곡 심한 남녀 사랑 이야기
"자신의 환상을 유지하며 현실에 부적응하는 위대함" 보여준 쓸쓸한 사랑 소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게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가을을 훼방 놓는 갑작스런 빗소리에 서재 창문을 닫으며, 여러 번 만지 작 거린, F.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다시 읽으려 집어 들었다.

삶의 흐름과 궤적이 슬프고 아파, 갑자기 생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고 여겨질 때 우주 속 영혼의 동반자인 책 속으로 들어간다.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 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하나 해 주셨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되뇌이고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언제나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게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멀리 있어 사라질 것만 같기에 목마르게 온 몸으로 ‘아주 작고 희미한 초록색 빛’으로 반짝이는 유일한 존재와 대상에 함몰한 사람. 그 빛의 스펙트럼이 발사하는 삶의 변화무쌍한 차이와 의미를 자신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빛의 각도에 따라서 반응한 사람. 그 대상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그리움 자체가 ‘가장 나다운’ 정체성이 되어버린, 그렇지만 내 마음 안에서만 타오르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위태로운 환상의 빛을 향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던진 사람.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화자(話者)인 닉 캐러웨이의 나레이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을 거칠게 풀어내자면, 한 남자(개츠비)와 사랑하는 여자(데이지)의 사랑이야기다. 부정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부를 축적한 개츠비가 데이지와의 사랑을 다시 얻어냈지만, 결국 여자 남편(톰)의 정부(머틀)를 살해한 죄를 여자 대신 뒤집어쓰고 종국에는 정부의 남편(윌슨)에게 총을 맞아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위대한 개츠비'를 요약한 줄거리를 받는다면 이런 경솔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한편 작가는 아내와 편집자가 고른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은 꺼려하면서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와 ‘웨스트 에그의 트리말키오’를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웨스트의 트리말키오’에서 웨스트 에그(West Egg)는 벼락부자가 된 신흥 부자들이 거주하는 뉴욕 롱 아일랜드의 서쪽 개츠비의 저택이 있는 지명이고, 트리말키오는 로마시대의 소설 『사티리콘』에 등장하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돈 많고 천박한 벼락부자의 전형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고려는 앞으로 전개 될 소설의 줄거리를 짐작케 하고 그 제목이 품고 있는 ‘사유의 온도’를 높혀 준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이 있다. 과거의 여자를 잊지 못한 남자가 여자를 다시 찾아온다는 진부한 이야기 속 ‘개츠비가 도대체 왜 위대한 거지?’라는 의심. 왜 개츠비의 이름 앞의 붙은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그의 삶을 풍자하기 위한 수식어가 되기도 하고, 또 왜 개츠비의 ‘진정한 빛(Green Light)을 향한 열정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위대함’의 맨얼굴이 될 수 있는지? 과연 어떤 인간에게 ‘Great’란 즉 ‘위대한 ,멋진’이란 수식어를 말을 붙여주고자 할 때, 개츠비가 그에 온전히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탐색여행을 떠나보자.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올바른 길을 벋어나 나쁜 길로 빠진 인물들이다. 개츠비 역시 타락한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주의자이며 ‘문제적 투사’다. 동시에 그는 허영과 사치의 인형(데이지)을 잡으려는 순진한 사랑 속에서 낭만적 환(幻)을 추구하며 희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진계보다 예민한 낭만적 감각’과 ‘희망을 알아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역설의 비 순수’를 잡으려 불가능 속으로 더 깊이 투신하는 속물적 연애꾼이다. 오히려 그것이 타락한 낭만주의자 개츠비를 ‘위대한(Great)’ 서사의 숲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왜 위대할까? “희망을 가질 줄 아는 비상한 재능,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개츠비의 삶의 동력은 ‘희망’이었다. 인생을 불온함과 가혹함으로 가득한 한갓 꿈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좌절하거나 비관하든지. 혹은 ‘그냥’ 주어진 현실 상황에 맞춰 되는 대로 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을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위해 이용하고 변화시키며 감내한다. 그 ‘희망’의 대상은 돈, 물질에 집착하는 주변의 자본주의적 속물들과는 달리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꿈꾼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희망’과 ‘사랑’을 삶의 목표로 삼을 줄 아는 개츠비는 위대하다.

개츠비의 ‘희망과 사랑’에 대한 경사(傾斜)를 과거의 여자에 집착하는 ‘병적인 인간’이라 말하기 전에, 한번 선택한 자기 내면의 ‘이미지 혹은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겠는가? 그는 ‘내부성의 인간’으로 살면서도 ‘외부 현실’의 모든 것을 이용하면서도 끈질기게 현실에 저항한 소수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대의 다른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현실’이 아니라, ‘요정 위’에 세운 ‘자기 내면의 꿈’을 믿으며 오직 그에 따라 살고자 했다. 즉 “자신의 환상을 유지하며 현실에 부적응하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개츠비는 적응하지 않는다. 결코 적응하지 않는 능력.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번 선택한 결정을 포기하지 않고, 무수한 유혹에도 처음 자신이 품었던 이미지를 내려놓지 않고,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기준을 지켜 나가는 ‘부적응의 고집’이야말로 개츠비의 ‘역설의 위대한 능력’이다. (김진영, 전복적 소설읽기 참조) 그래서 평범하기도 쉽지 않다며 ‘평균적 삶’에 속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오늘도 내일도 그저 주어진 길을 가는 다수의 우리는 개츠비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 이름 앞에 붙여진 ‘위대함’이라는 라벨이 심히 불편하다. 개츠비는 잘 적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했다.

개츠비만이 홀로 이 소설을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사실 소설의 1인칭 관찰자이자 그의 친구 닉 캐러웨이의 독백만이 개츠비의 이야기를 펼쳐 놓을 뿐이다. 개츠비의 신분과 이력이 모두 허위라는 것을 알고도 개츠비를 의심하거나 못 믿겠다고 면박주지 않았던 닉, 타인의 비난으로부터 닉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개츠비의 아버지밖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쓸쓸한 장례식에서 홀로 개츠비의 마지막을 함께 한 닉. 이해받지 못하는 타인의 편에서, 끝없이 오해받는 이방인의 편에 서서 눈부신 용기를 보여준 “균형 잡힌 인간” 닉. 그가 바로 어두운 시대에 따뜻한 영감을 주면서 21세기인 지금까지 ‘위대한 개츠비’로 살아남게 한 또 다른 주인공이다.

개츠비는 고집스럽게 자기 안의 ‘환’을 지키며, 스스로 환상을 위한 노예가 될 만큼 강한 의지를 발휘하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로써 인간의 위대함이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들과 차단된 채 자기 내부에서부터 자기 삶의 개성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실제로 개츠비는 그러한 면에서 삶의 문법을 보여주었으나 우리 삶이 자기 안에서 시작되어 자기 안에서 완결된다는 믿음은 현대인을 ‘자기만의 우리’에 가두는 오만이자 착각이다. 내면의 길은 지평선까지 홀로 이어지는 영원한 오솔길이 아니다. 그 길은 무수한 타인들과 그 밖의 세계가 접속하며 만들어가는 삶의 새로운 생생함으로 탈주하는 여행의 또 다른 방식이 되어야한다.

김충일, 문학박사, 북-칼럼리스트, 호수돈여고 교장, 건양대, 한남대, 우송대 대우 교수 역임, 대전 시민대 인문학관련 특강강사, 중도일보 '춘하추동' 연재, 대전 연극제, 대전지역 베스트 작품상 심사위원 이메일 : mogwoo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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