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에서 배움의 대화는 시작된다
“모르겠어”에서 배움의 대화는 시작된다
  • 임혜진
  • 승인 2023.06.24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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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세종중 임혜진,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에서 얻은 팁
배움이 즐거운 수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곤소곤 말해요”
임혜진 교사
세종중 임혜진 교사

교사인 내가 꿈꾸는 수업은 무엇일까? 나는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느끼는 수업을 꿈꾼다. 이 꿈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이하 배공)’에 몸담고 수업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배공 연구회 회원으로서 올해 참관한 몇 편의 수업을 통해, 배움이 즐거운 수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깨달은 점 몇 가지를 기록하려 한다.

 “소곤소곤 말해요”

중학교 교사로서 초등 저학년 수업을 보며 가장 놀라운 것은 선생님의 질문에 한꺼번에 손을 들고 ‘저요’ ‘저요’ 하는 모습이다. 질문을 하면 눈부터 피하는 중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다만 그러기에 초등 저학년 수업에서 경청은 다소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교실에서 친구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연서초등학교 이예훈 선생님의 1학년 수업은 그 점에서 많이 배운 수업이다.

수업 주제는 ‘그림을 보며 문장으로 말하기’로, 선생님은 반 친구들 사진을 여러 장 제시하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먼저 짝에게 소곤소곤 말하고 짝의 말도 들어주세요.” 소곤소곤 짝과 함께 말하는 활동이 8분, 전체 공유가 10분, 총 18분의 긴 활동이었다.

“00은 마스크를 썼어요.” “00은 치마를 입었어요” 등의 사실을 표현한 문장에서부터 “00은 웃고 있는데 00은 아니에요”, “친구들이 아무도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아요” 등 사실을 분석한 문장들, “친구들이 냄새를 맡고 있어요”, “친구들이 풀 향기를 맡고 있어요”처럼 친구의 말을 듣고 그것을 힌트 삼아 더 정확한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말을 모두 수용해주셨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모든 말에 풍부하고도 적절한 반응을 해주셨다. “그것을 보았다니 놀랐어”, “얘들아, 00이가 말한 것 중 이런 점이 훌륭했어” 등.

경청은 듣는 것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반응도 해야 한다. 아무리 잘 듣고 있어도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경청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한 시간 수업 속에서 선생님의 경청하는 자세를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청을 통해 아이들은 함께 배우는 수업의 즐거움을 알았을 것이다.

 “모르겠어”

“나 이거 모르겠어”라는 질문은 교실 수업에서 사실 듣기 어렵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모자란 사람이다”라고 인증하게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안다.

하지만 배움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a journey from known word to unknown world)이라고 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배움이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에서는 수업에 관련 협의를 통해 학습의 질을 높이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에서는 수업에 관련 협의를 통해 학습의 질을 높이고 있다.

솔빛초등학교 김은영 선생님의 6학년 과학 공개 수업의 주제는 ‘빛의 굴절 현상’이었다. 사물이 물속에서 꺾여 보이거나 실제보다 떠서 보이는 현상을 학생들의 경험을 통해 확인하고, 그 원인을 탐구하게 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진 수업이었다.

자신들이 경험한 빛의 굴절 현상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그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원인을 입증해내는 활동에서 “모르겠어”, “어렵다….”라며 머뭇거리다가 “이건가?”, “오호~ 그런 것 같아” “아니, 내 생각은 달라”라며 실제 과학자들이 했을 법한 토론을 하며 수업에 빠져들고 있었다.

‘모르겠어’로 시작하는 배움의 대화,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고 정적이 흐르던 그 순간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가 폭발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교사의 품위

선배 선생님들의 수업 공개는 늘 그 자체로 존경스럽다. 학생들을 대하는 유연함과 교과 전문성을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수업에 도전하는 선배 선생님들의 수업은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진다.

보람고등학교 고상은 선생님의 일본어 수업 공개가 그랬다. 작년에 직무연수로 배공 기초 연수를 받고 올해 세종 배공연구회에 참여하며 5월에 수업 공개를 하셨다. 선택 교과이다 보니 일본어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아이들 구성도 반마다 차이가 크다고 한다.

수업 주제는 ‘일본 축제에서 음식 주문하기’였다. 음식 주문할 때 필요한 간단한 회화를 배우고 역할극을 하게 했다. 선생님은 일본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림막을 준비해오셨다.

수업 공개 사전 협의회에서 그 상황에 실제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주면 좋겠다는 의견에 선생님이 준비해오신 귀여운 수업 재료이다. 그런 선생님의 정성에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어했고 모둠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던 아이들이 앞에 나와서 역할극을 훌륭하게 해냈다.

배움공동체 연구회가 1시간 전체 수업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배움공동체 연구회가 1시간 전체 수업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그 와중에 처음부터 계속 엎드려있던 남학생, 수업이 시작되고 한참이나 지나서 들어온 학생(다른 선생님과 상담하느라고)도 역할극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냈다. 선생님은 이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시종일관 부드럽게 격려하셨다. “여기 조금만 해볼까?”, “음, 멋져!”, “늦게 왔지만, 충분히 잘했어!” 등. 교사의 품위 있는 보살핌이 종일 엎드려있던 아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을 본 수업이었다.

여러 수업을 참관하며 느낀 점은, 아이들은 배움 자체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의 설렘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해질 때가 많았다. 그 설렘을 내 수업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공식적인 연구자의 신분도 아닌 내게 기꺼이 수업을 열어주시고 글로 남길 수 있게 허락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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