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으로 기쁨주는 건 보람입니다"
"국수 한 그릇으로 기쁨주는 건 보람입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3.06.0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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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15년째 현충일 국수 봉사하는 구암사 주지 북천스님
현충원 묻힌 희생자들, 나라와 사회가 예우해주는 풍토 중요
북천스님은 현충일 국수봉사는 누군가가 해야할 일을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천스님은 현충일 국수봉사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는 것이라며 "보시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남편, 부모, 자식을 자랑스러워해야 하고 유가족분들에게 따스한 국수 한그릇으로 기쁨을 주는 게 보람입니다.”

15년째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국수 봉사를 하는 대전 유성구 안산동 구암사 주지 북천스님은 2023년 현충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바빴고 국수로 정을 전했다.

비워진 국수 그릇 씻기에 여념이 없는 북천스님을 현충일 하루 전인 5일 오전 10시 구암사 종무소에서 만나 국수 봉사에 얽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았다.

장식이 적으면서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진 스님의 방은 평소 즐기는 다기(茶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것과 어울리는 소박한 탁자가 전부였다.

그는 “30년 하다 보니 맛집이 됐다”고 조크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다음 국수가 맺어준 ‘인연’(因緣)을 털어놓으면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화두로 말문을 열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내가 보람을 가장 많이 먼저 느끼고 그런 다음 국수를 먹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기 때문에 혹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었다.

북천스님은 불교계는 말할 것도 없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지역사회에 두루두루 발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스님을 찾아 ‘고해성사’(告解聖事)하듯 상의를 하고 해법을 찾곤 한다.

구암사 국숫집은 올해 현충일에도 길게 늘어선 참배객들에게 정성어린 국수를 대접했다. 

장수를 상징하는 ‘국수’와는 참으로 깊고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현충일 국수봉사는 15년이 됐고 매일 경찰묘역 앞에서 국수 삶는 건 꼭 10년이 됐다.

뿐만이 아니다. 육군 제32보병사단의 배고픈 훈련병을 위해 잔치국수를 만든 건 무려 35년이 됐다. 이렇게 질기고 모진(?) 인연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그 날은 경건한 추념식이 되어야 하고 이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존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가족에게 따스한 국수 한끼라고 대접해야겠다며 시작한 게 이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구암사가 국수나눔을 시작하기 전 현충일에 대전국립묘지는 잡상인 세상이었다. 보훈가족을 대상으로 한 폭리는 이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선택한 게 국수봉사였다.

“국가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날, 상인들의 횡포는 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반발이 있었는데 2~3년 지나니까 싹 정리가 되더라고요.”

30년 단골집이 되다 보니 점심에 잔치국수는 참배객과의 ‘무언의 약속’이 됐다. 으레 현충원 경찰묘역 쪽에 점심때쯤 가면 구암사 봉사팀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현충원의 고정 자산이 됐다고나 할까.

그렇게 문을 연 ‘현충원 구암사 잔치국수 집’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2~3년 쉰 것을 제외하면 연중무휴였다. 메뉴도 늘었다. 이번 현충일에는 특식이 제공된다.

국수 1만 그릇, 주먹밥 5000개, 부침개 3000장, 떡볶이 5000명분, 아이스크림 1만개, 팝콘 1만개, 솜사탕 3000개 등 종류도 그렇지만 양도 어마어마하다.

북천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 쨤을 내어 살짝 기념사진을 찍었다. 
북천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 쨤을 내어 살짝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북천스님은 이 많은 양을 자원봉사자와 후원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해 보니까 되더라”는 말로 국민성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알음알음 입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다투어 신청했고 엄청난 비용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나누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국민세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말로 자급자족이 봉사의 격식을 높여 주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2009년 이었던가요. 위령제를 지내는 데 300명분을 준비했어요. 정말 자식을 보내고 정신줄이 나간 듯한 유가족에게 국수를 드렸는데 너무 고마워하는 겁니다. 그 감사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어요.”

매사가 그렇지만 시작은 우연이 계기가 됐다. 스님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가슴이 멍멍했다”, “그렇게 절절한 감사는 내 평생 처음”이란 말로 당시 감정을 퇴고(推敲)했다.

하루평균 현충원을 안식처로 삼는 희생자들은 12명, 한달이면 300~500명, 연간 10만~15만명이 참배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이들에게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려면 자원봉사자가 매월 300명, 1년이면 3600명이 있어야 한다. 예산도 최소한 억단위 이상은 들어간다. 그걸 기부와 자원봉사로 해결한다니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고 할 만도 했다.

현충원 국수봉사는 잠시 접어두고 훈련소 봉사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1975년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던 기억부터 소환했다. 배식은 정량을 주는 데 배는 늘 고팠다. 고된 훈련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밥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기억이 훈련병들에게 국수봉사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느님’이라고 했던가. 배가 고프면, 그것도 혈기왕성할 때 배고픔은 고문이다. 구암사 대웅전을 불사하던 1988년, 맨먼저 시작한 게 바로 훈련병들에게 잔치국수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설겆이를 하느라고 쉴틈이 없다. 

“‘보시’(布施)는 내가 좋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 보시를 하면 불만족이 있을 수 있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보시는 불만이 있을 수 없어요.”

나눔문화가 확산되고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도량으로 현충원 국수봉사가 자리매김하는 것도 불법(佛法)에서만 기원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닐게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병사의 시신에 경례를 하는 미국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는 정치이념이나 사회적 성향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분들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 둘러싸고 있고 동족이지만 원수같은 북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만큼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은 사회적으로 예우를 해야합니다.”

큰 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국가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민간인들이 뜻을 모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야 한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이 바로 ‘국수봉사’와 같은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는 북천스님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고 하는데까지 하겠다”며 “내가 못하면 또다른 누군가 인연이 맞는 사람이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외부에서 전화가 수시로 와 이런저런 결정을 하면서 틈틈이 말을 이어갔지만 한번도 끊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고 확인하면서 화제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분들에게 국수로 봉사하는 건 내가 더 즐겁다”는 ‘자리이타’를 재차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초여름 햇살이 가득한 구암사 경내는 ‘보시’하는 불심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날 솜사탕도 준비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됐다. 
충청지역 케이블텔레비전 방송인 CMB에서 취재를 나와 구암사의 국수공양을 카메라에 담았다. 
팝콘도 인기 메뉴 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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