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지역사회 위해 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 지역사회 위해 살고 싶습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3.04.29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인] 소완섭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4대 회장
"자유민주주의 수호 위해 함께 해야 할 일 너무 많아요"
소완섭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회장은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인생에 황혼기가 됐어요. 국가를 위해서 좀 필요한 사람이라고 와달라고 해서 취임을 했어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지난해 8월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책임자가 됐던 소완섭(70·SM개발 대표) 회장을 녹음이 짙어가는 27일, 세종시 연기면 공단로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룩백’(Look Back)에서 만났다.

현대식 건물에 예술작품으로 곳곳을 장식한 이 카페는 소 회장이 아들 제민씨(45)와 함께 경영하는 두 번째 사업체였다. 1300㎡가 넘는 넉넉한 공간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배려한 데코레이션이 돋보이는 그런 장소였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라며 사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자세로 자유총연맹을 맡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안보를 지키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해야 할 일”이라고 단체의 특성을 설명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곧 북한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사회적 가치가 되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골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73년이 지나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소위 어의전성(語義轉成)으로 ‘꼰대’ 같은 얘기가 되다시피 했다. 그걸 아쉬워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더 나이를 먹기 전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난해 8월 시작했어요, 막상 회장에 취임해 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우리가 쉽게 얘기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안보를 지키는 일만큼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요.”

취임식에서 소 회장이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와 평화통일 달성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생각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젊은 세대 영입을 위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시민 교육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신도시 모든 동에 분회 창단”을 약속하기도 했다.

커피숍 ‘Look Back’에서 조용한 대화는 잔잔한 음악소리가 방해를 했다. 녹음도 필요하고 집중해야 제대로 된 인터뷰가 될 것 같아 바로 뒤켠에 있는 소 회장의 집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딸과 아들, 그리고 손주 5명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이 가정의 화목을 알려주었고 곳곳에 손때가 묻은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회장은 17년 교직을 떠나 1996년 조치원으로 오면서 사업을 시작, 지금은 아들과 함께 브런치 카페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소 회장은 17년 교직을 떠나 1996년 조치원으로 오면서 사업을 시작, 지금은 아들과 함께 브런치 카페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 세종시에는 언제 오셨나요.

“1996년에 아이들 교육문제때문에 조치원으로 이사왔어요. 제 고향이 부강이어서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결과적으로 고향에 다시 온 셈이지요.”

- 원래 체육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충남대 체육학과를 나와 당진 신평중학교에서 17년간 육상선수들을 지도했어요.”

소 회장은 육상 명문인 대전 대성고교에서 중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다가 충남대학교 체육특기자로 입학했다. 국가대표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당시 전국 국립대학교 체육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평중에서 키운 제자들 이름을 얘기하면서 잘 한 선수들도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막상 교사를 그만두니까 살 길이 막막했어요. 열심히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뭐냐고 찾다가 고물상을 시작했어요.”

1996년에 조치원에 왔는데 바로 이듬해 외환위기가 닥쳤다. 공장이 문을 닫고 멀쩡하던 사업체들이 폐업에 들어갔다. 그게 고물상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육상 심판으로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88 고물상’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자신의 영문 첫 글자 ‘S’와 아들 제민씨의 뒷글자 ‘M’을 따 주식회사 SM개발로 회사명을 바꿔가면서 27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

고물상으로 경제적 안정을 찾은 소 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사회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2008년에 세종시 이업종교류회장을 맡아 서로 다른 직종 간에 연결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일에 앞장섰다. 이업종 교류회는 2011년 중소기업융합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2014년에는 세종시 골프연합회장을 맡은 데 이어 봉사단체인 라이온스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끔씩 되돌아보는 인생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Look Back'으로 이름을 지었다. 
가끔씩 되돌아보는 인생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Look Back'으로 이름을 지었다. 

2015년 대한 라이온스 356-F지구 7구역 부총재에 이어 2016년 국제라이온스협회 356-F지구 제1부총재,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에 6대 총재에 올랐다. 지구 총책임자가 된 것이다.

“캄보디아 씨엔립이라는 도시에 학교도 지어주고 주택도 건설해주고 그랬어요. 지금도 계속사업으로 교류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때 활동을 많이 했어요.”

라이온스 총재에 이어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참여 등으로 2019년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회장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고 살자’는 의미에서 브런치 카페 ‘Look Back’을 오픈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는 돌잔치에다 작은 결혼식도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평소 거짓말을 하지 말자를 생활신조로 살아온 소회장은 “제 개인의 명예나 권력보다는 나로 인해서 내 주변이 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이 70이 넘으니까 욕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든다”며 자유총연맹 일을 잘 마무리 짓고 싶다며 인터뷰를 끝냈다.

고려대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연구한 논문으로 2006년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1년에는 한국문화예술종합대상전 서예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회장 취임식에서 그는 신도시지역의 회원확보를 약속했다.
한국자유총연맹 세종시지부 회장 취임식에서 그는 신도시 지역의 회원 확보를 약속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회장 취임식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