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 금강, 횃불 만들어 물고기 잡았네"
"한여름밤 금강, 횃불 만들어 물고기 잡았네"
  • 세종의소리
  • 승인 2023.04.08 06: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철원칼럼] 태양십이경 돋아보기... 제8경 잠서어화(蠶嶼漁火)
퇴적된 모래 땅 '누에섬'의 밤, 물고기 잡이 횃불은 타오르고...
횃불 고기잡이 사진 출처 : 백제뉴스

잠서(蠶嶼)는 누에섬이라는 뜻인데 현재 연동면 합강정∼오토캠핑장 일원에 있었던 섬을 일컫는다. 금강과 동진강(구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 지점에 퇴적된 모래섬으로써 세종시 출범 이전에는 땅콩과 수박을 재배하던 개인 소유의 경작지였다.

지리적으로는 연동면 합강리에 연접해 있었으면서도 행정구역은 금남면 봉기리(현 집현동) 산 1번지였는데 세종시 출범 이후 세종리에 편입되었다.

과거 세종시 지역을 흐르는 금강의 관할권은 공주목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합강섬이 연기현 동면 합강리와 연접해 있었음에도 공주목 명탄(금남)면 봉기리였던 것은 공주목에서 관할하던 금강의 하중도(河中島, 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조선시대 부강장, 조치원장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변에서 밤 물고기를 잡는 풍경은 요즘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추억이다. 그러나 세종시 지역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여름밤 하천에서 횃불을 들고 물고기 잡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 대여섯 명이 모여 1m 정도 되는 막대기 끝에 솜을 붙들어 맨 횃대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드는 밤 10시쯤 냇가로 나가 기름 적신 솜 뭉치에 불을 붙이면 활활 타는 횃불이 물속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물고기들이 불빛에 모여들곤 했는데, 그때 잽싸게 작살이나 톱으로 내리쳐 잡기도 하고 투망을 던져 잡기도 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강변의 밤공기는 시원했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으로 즐겼던 여름 풍속의 하나였다.

그렇게 바케스에 반쯤 잡으면 강변으로 들고나와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하고,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는 날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던 추억이 아련하다.

잠서어화(蠶嶼漁火)는 ‘누에섬의 물고기잡이 횃불’이라는 뜻이다.

합강섬 주변에서 횃불을 들고 물고기를 잡던 여름밤 풍경을 상상하면서 시를 감상해 본다.

어피한인역유관(漁彼閑人亦有官, 물고기 잡는 저 한가한 이, 그도 벼슬살이했었는데)

주겸복야족위환(晝兼卜夜足爲歡, 낮처럼 밤에도 만족하며 즐겁다네.)

근간화기홍홍난(近看花氣紅紅暖, 가까이서 볼 땐 불꽃 기운 벌겋고 따뜻하더니)

원대성문점점한(遠對星文點點寒, 멀리서 바라보니 별처럼 흩어져 차갑구나.)

설망나변기심교(設網那邊機甚巧, 그물 치는 곳마다 그 솜씨 뛰어난데)

추종저리사비난(追蹤這裡事非難, 그 정도야 이곳에선 어렵잖은 일이지.)

서두좌사관호객(嶼頭坐似觀濠客, 섬 머리에 앉아 호량의 장자처럼 물고기 살피는 나그네)

불귀공문치곡안(不貴公門侈穀鞍, 벼슬이나 사치도 귀한 게 아니라네.)

합강섬의 추억 

1, 2절, 작가 자신을 지칭한 듯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선비가 세상근심을 잊고 물고기 잡는 데에 정신을 쏟으며 유유자적하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3, 4절, 화기(花氣)는 횃불의 불꽃, 성문(星文)은 별무늬에 대한 표현이다. 횃불을 들고 여름밤 강가를 오가는 광경이 눈앞에서 보이는 듯 잘 묘사하였다.

5, 6절, 나변(那邊)은 ‘그곳, 거기’등과 같이 장소를 의미하며, 저리(這裡)는 ‘여기’라는 뜻이다. 투망이나 그물을 치는 일이 강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취미임을 강조하였다.

7, 8절, 주인공이 섬 머리에서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피는 모습을 호량지변(濠梁之辯)에 빗대었다. 세상의 공명이나 부귀가 삶의 목표가 아님을 암시한 표현에서 시인의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다.

관호(觀濠)는 관어호량(觀魚濠梁, 호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관찰한다)의 줄임말이다. 장자 추수편에 실려 있는 일종의 우화로서 호량지변(濠梁之辯)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말장난하는 듯한 내용이 흥미롭기에 소개한다.

어느 날 장자와 혜자가 호량(濠粱, 호수 위의 다리)에서 노닐다가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장자가 먼저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혜자가 “자네는 물고기도 아니면서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고 물었다.

이에 장자가 “자네는 나도 아니면서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라고 되물었고, 혜자는 “내가 자네가 아니라서 자네를 모르는 것처럼,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기 때문에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네.”라며 논쟁을 이어 갔다는 내용이다.

여하튼, 태양 12경 중 제8경인 잠서어화는 낙향한 선비가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했던 일상의 한 단면을 잘 그려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동윤 2023-04-21 18:36:26
감상 잘했습니다.
옛날 한학자가 쓰신 어려운 한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신 노고에 감사합니다.
어릴 적 누에섬에 가서 땅콩을 캐고 날로 먹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이제는 도시 개발이 된 옛 고향 산천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