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자욱한 금강, 보슬비는 소리없이 내린다
안개 자욱한 금강, 보슬비는 소리없이 내린다
  • 윤철원
  • 승인 2023.03.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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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 태양십이경 돋아보기... 제7경 금강소우(錦江疎雨)
"보슬비는 소리없이 금강에 내리고, 돛대 밖엔 무심한 제비가..."
8경 '금강소우(錦江疎雨)'는 흐린 날 금강위로 자욱하게 내리는 보슬비를 그렸다. 

금강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아득한 옛날 한 총각이 공주 연미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그곳에는 사람으로 변신한 처녀 곰이 살고 있었는데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곰 처녀는 맛있는 음식으로 총각을 살뜰하게 챙기기도 하였으나, 워낙 의심 많은 본성 때문에 사냥하러 갈 때마다 총각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 놓곤 하였다.

처음엔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랑에 빠졌던 총각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고향 집에 돌아가고픈 생각에 병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곰의 감시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게 되자 곰은 ‘설마 자식을 두고 도망가랴’ 하며 사냥을 가더라도 굴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던가! 나무꾼은 곰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굴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고 말았다. 뒤늦게 남편의 떠나는 모습을 발견한 곰은 강가에 이르러 ‘돌아오라’고 애원하며 소리쳤지만 나무꾼은 못 들은 체하고 고향 집을 향해 달렸다.

이에 크게 상심한 곰은 한을 품고 두 자식을 껴안은 채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였고, 그 후로 서해를 왕래하는 배가 근처를 지날 때마다 풍랑이 휘몰아쳐서 침몰하는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두려움에 빠진 뱃사공들이 힘을 합쳐 사당을 짓고 매년 죽은 곰의 영혼을 위로하고부터 풍랑이 잠잠해졌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곰의 강’ 즉 고마나루(곰나루, 熊津)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고마나루는 백제 시대에 웅천(熊川)이라고도 기록되어있는데, 금강이라는 지명의 등장은 고려시대인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지리지 공주 편에 곰사당 격인 웅진연소(熊津衍所)를 소개하면서 ‘웅진연소의 상류는 금강이다’라고 부기한 것으로 볼 때, 곰강을 한자화 하면서 금강(錦江)이라고 표기했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금강은 일명 호강(湖江)이라고도 부른다. 그 때문에 금강 이남을 호남(湖南)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으나, 벽골제(碧骨堤) 남쪽을 호남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기에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금강은 전북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서해까지 약 400㎞를 흐른다. 한강, 낙동강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강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시 지역에서는 「부강면 노호리∼장군면 금암리」까지 약 26㎞를 휘돌아 흐르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시제인 금강소우(錦江疎雨)는 ‘금강에 내리는 보슬비’라는 뜻이다. 여름날 보슬비 내리는 옛 시절 금강의 저녁 풍경을 상상하면서 시를 감상해 보자.

요요강점반개비(寥寥江店半開扉, 쓸쓸한 주막, 반쯤 열린 사립문)

소우무성수상미(疎雨無聲水上微, 보슬비 소리 없이 강물 위에 내린다.)

장외무우현조거(檣外無憂玄鳥去, 돛대 밖엔 무심한 제비가 날고)

사변유희백구귀(沙邊有喜白鷗歸, 모래톱엔 즐거운 듯 흰갈매기 날아든다.)

반공요양우사세(半空搖揚雨絲細, 허공에 흩날리는 실낱같은 빗줄기)

고도안한기랑희(古渡安閑起浪稀, 옛 나루 한가하매 잔물결이 일렁인다.)

시유어인혼망반(時有漁人渾忘反, 때가 되었어도 고기 잡는 이는 돌아갈 줄 모르고)

사풍진일좌태기(斜風盡日坐苔磯, 비끼는 바람에 진종일, 이끼 낀 물가에 앉아있네.)

겸제 정선의 '조어도', 보슬비내리는 금강 위에 낚시꾼이 있었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1, 2절, 잔뜩 흐린 하늘과 드믓드믓 떨어지는 빗방울, 그리고 행인이 뜸한 강주막의 쓸쓸한 풍경이 연상된다. 요요(寥寥)는 ‘고요하고 쓸쓸한 상태’를 의미하며, 소우(疎雨)는 여기저기 ‘성글게 떨어지는 비’를 일컫는 데 편의상 보슬비라고 의역하였다.

3, 4절, 돛단배 위를 날아가는 제비와 모래톱에 사뿐히 내려앉는 흰 갈매기를 그려냈다. 현조(玄鳥)는 제비, 사변(沙邊)은 강가에 퇴적된 모래톱을 의미한다.

5, 6절, 강 위에 흩날리는 빗방울과 나루턱에 일렁이는 잔물결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요양(搖揚)은 ‘공중에 흩날리는 모습’의 표현이다. 고도(古渡, 옛 나루)는 작가 진세현 선생 생존 당시의 반곡리 앵청이 나루를 지칭한 듯하다.

7, 8절, 이끼 낀 강가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며 온종일 낚시에 집중하고 있는 선비의 느긋한 모습이 연상된다. 혼망(渾忘)은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은 상태’, 태기(苔磯)는 ‘이끼 낀 바위나 자갈’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할 듯하다.

전반적으로 보슬비 내리는 금강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7, 8구절은 작가 자신을 낚시꾼에 빗댄 듯한데, 속세를 떠난 강태공이 반계(磻溪)에서 낚시로 세월을 낚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동진강 일출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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