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짐승이 왜군 화살 끈 끊어 승리 거뒀다
산짐승이 왜군 화살 끈 끊어 승리 거뒀다
  • 윤철원
  • 승인 2022.12.2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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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태양십이경 돋아보기...제5경 화산귀운(華山歸雲)
‘괴화산으로 돌아오는 구름’...오가는 구름의 변화무쌍한 모습
화산귀운은 괴화산을 둘러싸고 떠내려오는 구름의 모습을 그렸다. 

화산은 괴화산의 줄임말이다. 괴화산은 세종시 반곡동에 위치한 해발 약 201m의 아담한 산이다. 괴화산은 원수산, 전월산과 더불어 정족(鼎足)을 이루며 세종시 신도심을 떠받치는 대표적인 산이다.

1995년 발간된 금남면지에 의하면 괴화산은 인근 주민을 보호하는 신령한 산이라며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 석교리(현재 세종자이e편한세상)에 전해 오던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에 왜군이 쳐들어와서 괴화산에 진을 쳤고, 강 건너 전월산에는 아군이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그런데 괴화산에 사는 짐승들이 밤에 나와 왜군의 화살 끈을 모두 끊어 놓는 바람에 아군이 승리하였다. 그 후로 석교·석삼·반곡리(반곡동) 주민들이 매년 음력 10월 1일 각각 마을별로 산신제를 지내왔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시 왜군이 침범했다는 역사적 근거가 없음에도 전해오는 전설이지만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고려 충렬왕 시절 연기현 정좌산 전투에서 대패한 합단적이 여원 연합군의 추격을 피해 금강을 건너 주둔했던 곳이 괴화산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합단적은 다시 강을 건너 원수산에 주둔하던 한희유 장군 휘하의 고려군과 일전을 벌였으나 궤멸되어 그 아들 노적과 함께 도망쳤다는 기록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하고 있는데, 이때 합단적 군대의 주 무기가 활이었던 것이니 고려시대 이야기가 조선시대로 와전된 것은 아닐까?

근대에 있었던 사건에서도 영험한 괴화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 때 금강 방어를 위해 미 24사단 19연대 1대대 C중대가 괴화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막대한 타격을 입고 후퇴하였다. 그때 양측에서 각각 수십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나 전쟁통에 미처 수습하지 못해서 방치되었던 시신을 주민들이 수습해서 안장하였다가 나중에 모두 발굴하여 이장하였다고 한다.

그처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전장의 한 가운데에 반곡리가 있었으나 마을주민은 한 사람도 사상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월남전에 파병된 괴화산 주변 석교, 석삼, 반곡리 마을 청년들이 한 사람도 다치거나 전사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괴화산 신령이 보살펴 준 덕분이라며 매년 산신제의 전통을 이어나갔으나 행정도시 건설로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그 전통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반곡리 역사 보존회’에서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그리고 이주민과 입주민의 화합을 위해 최근에 산신제를 재현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산귀운’은 ‘괴화산으로 돌아오는 구름’이라는 뜻으로, 이 시는 괴화산을 스치며 오가는 구름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며 느낀 감상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 전 반곡리 모습,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무사연쇄취미(似霧似煙鎖翠微, 안개인 듯 연기인 듯 푸른 산 감싸더니)

사시다변밀환희(四時多變密還稀, 사시사철 변화무쌍 짙었다가 다시 희미.)

현현거작신령우(玄玄去作神靈雨, 먹구름 흘러갈 땐 신령한 비 되더니만)

백백래위사자의(白白來爲士子衣, 흰 구름되어 올 땐 선비 옷 같아라.)

조문태백제등거(早聞太白梯登去, 이태백이 구름 속 천모산을 사다리로 올랐다더니)

혹설도남선화비(或設圖南仙化飛, 어떤 이는 도남 도사가 신선되어 날아가는 것이라네.)

유형무적천년재(有形無跡千年在, 모습은 있으나 흔적 없이 천년을 떠돌면서)

애애용용처처귀(靄靄溶溶處處歸, 구름되어 흐르다가 사방에서 돌아오네.)

1, 2구절, 푸른 괴화산을 구름이 감싼 모습, 그리고 사계절 변화무쌍한 구름이 연상된다.

3, 4구절, 현현(玄玄)은 검은 구름으로, 백백(白白)은 흰 구름으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흰 구름을 선비가 입는 하얀 옷 같다고 빗댄 표현에서 시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

5구절, 이태백(李太白)의 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이라는 시에 등장한 청운제(靑雲梯)를 인용하였다. 이 시는 이백이 꿈속에 천모산에서 노닌 것을 읊은 시라고 한다. 청운제는 구름으로 뒤덮인 험한 산에 오르는 좁은 길을 말하는데, 구름이 걸려 있는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푸른 구름 속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괴화산에 있는 화곡정

6구절, 도남(圖南)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자미두수라는 점괘를 창제한 진박(陳搏)의 자(字)이다. 진박은 송태종이 희이(希夷)선생으로 부를 만큼 당대 도교의 대가였으며 자칭 부요자라 칭했다고 한다. 무당산에서 은거하다가 말년은 화산(華山)에서 지냈다고 한다. 하늘의 구름을 ‘신선이 된 도남 도사가 날아가는 것’이라며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7, 8구절,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의 모습을 애애(靄靄)와 용용(溶溶)으로, 이곳저곳은 처처(處處)라는 중복 한자로 표현함으로써 시에 대한 풍미를 더 해주고 있다.

괴화산에 대한 사랑을 시로 표현한 작가의 능력이 참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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