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수산 산신제...마을과 국가 평안 기원
세종시 원수산 산신제...마을과 국가 평안 기원
  • 문지은 기자
  • 승인 2022.11.2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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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 제45호 지정 산제당서 열린 400년 지속된 산신제
임웅수 광명농악 인간문화재, 임창철 세종문화원장 등 참석
임웅수 광명농악 인간문화재가 굿판으로 산신제 시작을 알리고 있다.
임웅수 광명농악 인간문화재가 북과 꽹과리를 연주하며 산신제 시작을 알리고 있다.

세종시 원수산 향토유적 제45호인 산제당에서 25일 오랜만에 산신제가 열렸다.

1600년대부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빌기 위해 원수산자락에서 열렸던 산신제는 6.25전쟁 때도 빠지지 않고 제를 지냈던 유래 깊은 산신제다.

임웅수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 인간문화재가 북과 꽹과리로 오랜만에 열리는 산신제 굿판의 시작을 알렸다.

임창철 세종문화원 원장 및 세종시청 관계자와 마을주민 등이 참석해 국가와 마을의 안녕, 마을주민의 건강을 빌었다.

옛날 돌림병으로 주민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하루는 마을사람들이 ‘가래기(월령)’느티나무 아래 모여 한탄을 하고 있었다.

스님과 도인이 그곳을 지나며 마을사람들에게 “원수산을 바라보니 명산이니 이곳에 산제를 올리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 후 주민들이 제관을 선출해 산신제를 올리기 시작하자 마을의 돌림병이 사라지고 평화롭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적혀 있다.

원수산 산제당이 향토유적 제45호로 지정된 것은 이곳에 소장된 계문서에 ▲산제에 필요한 준비물과 ▲유사 ▲산제 참여자 ▲산제를 지낸후 마을을 위해 한해동안 선행을 한 사람들의 행동과 상 ▲불순한 사람에게 내린 벌 ▲산제 때 소를 못잡게 하자 소를 잡도록 청원한 청원서 등 우리나라 산제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전해져서다.

임영수 향토박물관장의 고증에 따르면 1900년대 초·중반에 오며 임장철씨 아버지가 원사골, 양화2구, 백동 100여 호에서 쌀 1되씩과 돈을 걷어 대신 산제를 올리다 아들인 임장철이 이어받았다는 것.

이후 원수산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산제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지역으로 묶여, 시에서 관리와 보전이 어려운 상태다.

임창철 세종문화원장은 “세종시는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진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유래가 깊은 지역이었다”며 “세종문화원은 오랜 전통과 지역의 역사를 발굴·보전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세종시 관계자도 “행복도시 곳곳에 제당과 서원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돼 있다”며 “시 차원에서도 세종시 지정문화재 및 향토문화유산을 발굴해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지난 9월 기준 보물 3점, 천연기념물 2점, 무형문화재 1명, 민속문화재 1점 등 국가지정 문화재를 비롯해 시지정 문화재 및 기념물 총 33점, 문화재자료 14점, 국가등록문화재 2점 향토문화유산 73점을 보유하고 있다.

25일 산신제에는 무속인이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마을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25일 산신제에는 무속인이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마을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임창철(가장 왼쪽)문화원장이 이 지역이 고향인 임웅수 인간문화재(가운데)와 산신제 유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창철(앞줄 왼쪽)문화원장이 이 지역이 고향인 임웅수 인간문화재(가운데)와 산신제 유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수산 중턱에 위치한 산제당
정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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