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반곡동 수루배마을 6단지 인근 산자락에 위치한 여수바위
호암목적(狐巖牧笛)은 ‘여수(여우) 바위에서 부는 목동의 피리 소리’라는 뜻이다.
여수바위는 여수배 들녘(세종시 반곡동 수루배마을 6단지)에 연접한 산자락 길가에 있었다. 그 형상이 여우와 같이 생겨서 여수바위라고 불렀다는 것인데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산에 나무가 우거져 그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여수바위 위쪽 숲에는 사시사철 솟아오르는 약샘이 있었는데 물맛이 좋고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는 송아지와 염소를 모는 목동의 모습과 여수바위에서 울려 퍼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느낀 소감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거암공초사연(狐去巖空草似煙, 여우 떠난 빈 바위에 아지랑이 같은 풀 돋으매)
목동무수답림천(牧童無數踏林泉, 목동은 수도 없이 숲속 샘 찾는구나.)
부후대립후선지(負餱帶笠後先地, 먹을 것 둘러메고 초립 쓴 목동, 뒤서거니 앞서거니)
장독구양조모천(將犢驅羊朝暮天, 아침저녁으로 송아지 잡아끌며 양 떼를 모는구나.)
예우매탄장월리(霓羽每嘆藏月裡, 월궁 고운 옷엔 매번 감탄터니)
죽사기소괄풍전(竹絲幾笑聒風前, 패랭이 쓴 모습엔 얼마나 비웃었나? 요란한 바람처럼.)
수가목적고성출(誰家牧笛高聲出, 뉘 집 목동의 피리 소리 울려 퍼지니)
척파장진적천년(滌罷腸塵積千年, 천년 묶은 뱃속 때가 씻겨 나가네.)
1, 2구절, 여수바위 위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풀이 자라고, 목동이 숲속 약샘을 무수히 찾는다고 하였으니 늦봄이거나 초여름인 듯하다.
3, 4구절, 후(餱)는 간식이며, 입(笠)은 삿갓을 뜻한다. 먹을 것 둘러멘 초립 쓴 소년이 송아지와 염소를 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5, 6구절, 예우(霓羽)는 예상우의(霓裳羽衣)의 줄임말로서 아름답고 빼어난 옷을 일컫는다. 옛날 당나라 현종이 천상의 월궁을 구경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곳에서 선녀들이 무지개색 치마와 새털처럼 가벼운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깨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작곡한 음악이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고, 춤은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가 되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괄풍(聒風)은 시끄럽게 부는 바람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이 구절에서는 아름다운 옷을 보면 예우(霓雨) 보듯 멋지다며 칭찬과 부러움을 아끼지 않던 세상 사람들이 초립을 쓴 허술한 옷차림의 목동에겐 깔깔거리고 비웃는다며, 외모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7, 8구절,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처럼 초라한 목동이 여수바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던 모양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청아했던지 그동안 선비의 가슴속에 쌓였던 울분과 답답함을 말끔하게 씻겨 낸 것이다.
화려함보다 일상의 소박함에서 감사를 찾으며 유유자적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