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끼' 사는 달님 뜨니, 아스라한 '토봉령'
'옥토끼' 사는 달님 뜨니, 아스라한 '토봉령'
  • 윤철원
  • 승인 2022.10.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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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태양십이경 돋아보기...제2경 토치명월(兎峙明月)
토봉령에서 휘영청청 떠오른 달과 주변 풍경 한 시로 노래
햇무리교에서 바라다본 비학산

반곡마을은 괴화산이 두 팔을 벌려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뒤는 괴화산이 받치고 앞에는 금강이 흐르며, 내백호와 내청룡이 뚜렷하니 풍수가들이 말하는 배산임수와 좌청룡 우백호를 모두 갖춘 양택지라 할 만하다. 맹의섭 선생이 저술한 추운실기(鄒雲實記)에 의하면 괴화산 주변에 단봉포란형(丹鳳抱卵形, 붉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대길지가 있다고 했다는데 아마도 반곡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토치(兎峙)는 토끼 고개라는 뜻이니 이 시의 주제인 토치명월(兎峙明月)은 ‘토끼고개에서 떠오른 달’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작 반곡마을 현장을 가보면 ‘토끼고개’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솔빛 유치원에서 수루배마을 6단지로 넘어가는 작은 소로길, 즉 ‘여수배 고개’만 있을 뿐이다. 추측해 보건대, 옛날에는 이 길을 ‘토치고개’라고 불렀었으나 점차 ‘여수배 고개’로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곡리가 고향인 분들은 토봉령(兎峰嶺)을 기억한다. 반곡리를 오른팔로 감싸 안은 듯한 능선, 즉 괴화산 정상에서 동편으로 뻗은 능선을 토봉령이라고 하는데 그 끝자락에 안산이 있다. 그러므로 토치명월은 이 능선에서 떠오른 달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시상을 떠 올린 장소는 어디였을까? 반곡리 마을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곡마을에서 바라보면 토봉령에서 떠오르는 달은 볼 수 있었겠지만, 좌우에서 감싼 산줄기 때문에 용당이나 비학산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곡리가 고향인 여양진씨 대종회 진영은 회장은 “토봉령, 용댕이, 비학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햇무리교 주변, 즉 반곡나루 길가에 있었던 주막이었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또 제7경 금강소우(錦江疎雨)에 주막이 등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시상이 떠오른 장소는 반곡 나루터 주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실제 햇무리교에서 바라보면 용댕이산과 비학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기도 하다.

산들바람 부는 어느 해 가을, 강가를 산책하던 작가는 무심코 주막에 이르렀는데 그때 마침 토봉령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반해서 밤늦도록 감상하다가 도도해진 시흥에 달님과 친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시를 감상해 본다.

용대산 위치

제2경 토치명월(兎峙明月)

벽천여해계의장(碧天如海桂宜檣, 바다처럼 푸른 하늘에, 계수나무 돛대 삼고)

옥토환신치묘망(玉兎幻身峙杳茫, 옥토끼 사는 달님 뜨니, 아스라한 토봉령.)

아자영침용대수(俄者影沈龍垈水, 달그림자 문득 용대수에 어리더니)

소언광사학산양(少焉光射鶴山陽, 잠시 뒤 비치는 곳 학산 남쪽일세.)

금반의수추상냉(金盤依峀秋常冷, 쟁반 같은 달, 산마루에 닿으매 서늘한 가을 기온)

교촉현림야갱장(皎燭懸林夜更長, 휘황한 달빛, 숲속 비칠 때 밤 더욱 깊어 간다.)

완대량붕정미후(宛對良朋情味厚, 좋은 친구 마주하니 정겨움 두터워라.)

기언오부차무상(寄言吳斧且無傷, 부탁하노니 오부여! 다시는 계수나무에 생채기 내지 마오.)

1, 2구절, 명월(明月)이 생략되었다. 푸른 밤하늘에 토봉령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 그리고 그 속에 선명한 계수나무와 옥토끼 모습이 연상된다.

3, 4구절, 그렇게 떠오른 달이 동편에 저쪽에 있는 용대수(龍垈水, 용당)에 얼핏 잠긴 듯하더니, 어느새 반곡리 서편에 있는 비학산 마루로 흘러가는 광경을 그렸다.

용대수(龍垈水)는 용당의 다른 명칭이다. 용당은 과거에 금강물이 휘돌았다가 흘러나가던 호소(湖沼)를 말하는 것이다. 그 속이 얼마나 깊었던지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용당(龍塘)이라고 불렀는데 1946년 병술년 대홍수에 물길이 바뀌며 점차 모래가 쌓여오다가 수십 년 전부터는 물흐름마저 끊겼다. 지금은 그 깊었다는 용당이 모래 둔치로 변했고 그 위에 ‘금강 자전거 데크길’이 조성되어 라이딩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학산(鶴山)은 비학산(飛鶴山)의 줄임 말로 금남면 호탄리 뒷산을 말하는 것이다. 양(陽)은 ‘산의 남쪽 면’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니, 흘러가던 보름달이 어느새 비학산 남쪽에 떠 있는 광경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용당, 괴화산, 비학산 위치

5, 6구절, 금빛 쟁반처럼 둥근 달과 서늘한 가을 기온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음력 8, 9월 보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름달의 기세등등한 휘황함이 숲속까지 비치는 모습, 그럴수록 밤은 더욱 깊어 간다는 표현을 대조적으로 하였다.

7, 8구절, 작자와 달은 어느덧 우정을 나누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월궁에 갇혀 계수나무에 도끼질하는 오부에게 “달이 내 친구이니 계수나무 찍는 일을 멈춰 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다.

오부(吳斧)는 전설 속의 오강(吳剛)을 이르는 것이다. 오강은 중국 서하 사람으로 천성이 게으른 나무꾼이었다고 한다. 그는 선도에 심취하여 신선이 되고 싶었으나 공부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그를 월궁이 가두며 말하기를 “선술을 얻으려면 월궁에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오강은 신선이 되고픈 욕심에 도끼로 계수나무를 열심히 찍다가도 반 쯤 베고 나면 게으름 병이 도져서 빈둥거리곤 하였다. 오강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계수나무에 찍혔던 상처는 원상으로 회복되고, 그러면 또 도끼질하고.... 그런 일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오강은 신선이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달님과의 우정이 얼마나 두터웠으면 달 속의 계수나무를 베어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오강에게 계수나무에 상처도 내지 말라고 했을까?

자연과의 교감능력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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